백석 (또) 다시 읽기

by 김간목
촌에서 와서 오늘 아츰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여
너는 분명히 하눌이 사랑하는 시인이나 농사군이 될 것이로다


나는 백석 전집을 세 번인가 샀다. 아끼다보니 잃어버린 적은 없지만, 누구에게 빌려줬다 돌려받지 못한 적이 두 번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백석 전집은 보통 그가 20에서 30 중반에 쓴 시를 모아놓은 경우가 많다. 위의, "촌에서 온 아이"에서 빌려온 구절 또한 그 나이 때쯤 쓰여진 시라고 한다. 내 스물 중반에 저 시를 처음 접했을 때엔, 이광수의 잔상이 여즉 남았어서 꽤나 비장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이제 나는 백석의 그 나이가 되었다. 오늘 저 시를 꺼내어 다시 읽으며, 도리어 나는 백석이 머리를 쓰다듬는 "촌에서 온 아이"가 된 느낌이다. "무엇에 놀라서", "마음에 분해서", "삼가면서" 우는 아이는 아직 "하눌이 사랑하는 시인"이나 "농사군"이 될 수도 있다니, 그것 참 어찌나 "마음이 반끗히 밝어오고 또 호끈히 더워"오는 일인지.


네 소리에 나는 촌 농삿집의 저녁을 짓는 때


시점을 바꾸면 백석의 시에는 오래 전 잃은 정경들이 있다. 돼지와 닭을 치던 경남 김해 촌구석의 복작이는 친가, 다 쓰러지던 집에는 아주 오래 전 아궁이가 있었다. 한편 의주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오셨던 외갓댁에선 구정이면 숙주와 두부와 씻은 김치로 손만두를 팽팽하게 빚어 대여섯 개쯤 놋쇠 대접에 가득이 담곤, 뜨거운 고깃국물을 찰랑하게 부어주셨다. 스무 살 무렵에 한국을 떠나 십여 년, 이제 친가엔 돼지나 닭, 아궁이는 더는 없고, 번듯한 양옥집에 가스레인지와 보일러가 들었다. 외갓댁에선 명절이면 어디 뷔페에 방을 빌려 일가친척이 한식, 양식, 중식, 일식을 골라먹는다. 내가 스무여 해를 넘게 살았던 동네는 뒷산들도 이제 주상복합에 전부 가리웠고, 청둥오리 잡고 놀던 하천들은 공구리를 전부 뜯어 물풀과 우레탄 트랙이 울긋불긋 아름다워졌다.


바람직하고 합리적으로 삼천리 강산이 저를 굴려가는 십여 년, 나는 미국 서부에 있었다. 백석 시집을 빌려갔던 누군가가 당나귀는 왜 응앙 응앙 우는 것이겠냐고 놀려오면 얼굴을 붉히던, "세괏은 가시하나" 없는 어린 이였는데, "날이 챙챙 좋기도 좋은" 그런 날씨는 잘 모르고 오로지 골방과 도서관을 오가며 서른이 되기 전에 반드시 죽을 셈으로 공부하며 지냈다. 그러던 하루는 친구들이 나를 책상에서 뜯어내 차 뒷자리에 던져 싣고는 내륙으로 관광을 갔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선잠에서 깨면 광야가 나타났고 대자연에들 감탄하는 동안 나는 그 황량한 광경에 마음이 안온해지는 걸 느꼈다. 덤불과 돌멩이들이 모랫바람에 버석거려, 천년 뒤 내 묫자리를 미리 보러 온 것 같았던 그 날의 친교는 대체 김동인이었을까, 북관이었을까, 아니면 민둥했다고 아버지께 말로만 전해들었던 60년대의 김해 까치산이었을까.


아무튼 주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니 뉴욕이니 보스턴이니 하여간 사람 많고 형편 좋은 곳에서 붉은 문 안쪽의 여가나 미학을 성숙한 연구로 갈고 닦는 동안, 나는 골방과 도서관을 오가다 서른을 넘겨버리고 취미도 점점 유치해져서, 도리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나 "시껌언 맨모밀국수" 마저 궁금해하는 양이 되었다. 그런 불순한 이유로 뉴저지 촌구석 허름한 파머스 마켓을 빈번하게 "낫대들엇다" 나오며 나는 이제 카-라가 목아지에 빳빳한 그런 송구한 취급보단, 저 언날의 광야처럼 허름하고 누추한 무위에나 맘이 꼭 들어맞게 된 것이다. 그러니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 아직도 "쥔을" 붙이어 살며 이케아에서 만든 나조반에 붙어 앉아서 나는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호밀빵에 정어리 통조림과 양배추라는, 이국에서 보기엔 북관의 양식이라 할 만한 그런 것들을 손으로 대충 뜯어먹다 말고는 "자리에 누어서 /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백석의 말들 그 뒤를 길게 생각하다 그의 시를 꺼내어 읽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백석이여, 나와 십여 년의 시대를 같이 살었는지조차 당신이 영영 가고 난 뒤에야 내가 알게 된 나의 가장 아끼는 시인이여, 당신이 "이못된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하는 소리들이 나는 해가 가며 점점 더 그리워진다. 살아보면 세상은 말이 말 같지 않은 곳인데, 당신 닮은 목소리들은 자꾸만 줄어드는 것이 못내 서운한 나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중략)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는" 당신 글월들을 거듭 꺼내어 읽다가, 어느덧 해정한 강가에서 당신과 팔매질이라도 놀듯 사부작사부작 당신 "녯투"를 따라가고야 만다. 그러다 퍼뜩 깨닫기로는 촌에서 온 아이처럼 툴툴대기만 하는 꼬락서니가 서른 넘은 나이에는 마땅히 어색하고 부끄러울 일이겠거니와, 내 뜻 없는 소릴랑 이만 가라앉히고 당신이 좋아 이런 글이라도 여태 읽어준 고마운 사람들과 우리는 마치며, 당신 싯귀로 "서로 믿없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아지기로 하자.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없다
그리고 누구하나 부럽지도않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같은건 밖에나도 좋을것같다

- 백석, "선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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