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달리면서 머릿속에 직장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by 행북

쉬고 싶은 주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물었다.


“러닝하러 갈래?”


한 달 뒤면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10km도 겨우 완주했는데,

즉흥적으로 하프 마라톤에 신청한 것이다.


오후 5시, 해가 아직 지지 않은 시간.

집 밖으로 나서며 나는 말했다.


“선선한 밤에 해도 되는 거잖아.”


“더울 때도 해봐야 훈련이 되는 거지!”


하지만 이날은 29도나 되는 더운 날씨였다.

그늘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흡흡’, ‘후후’

호흡법을 연구해 보려 애썼지만

점점 숨이 차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마치 비커에 물이 90% 차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옆에서 괜히 말을 걸었다.

말을 걸지 말았으면 했다.

말할 힘조차 없었으니까.


남편은 사람이 다가오면

나를 안쪽으로 배려하며 달렸지만,

나는 남편이 옆에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만 생각하며 달렸다.


“힘들 때야말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사라진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직장에서 자기만 생각하고

주변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힘든 사람들이구나 하고.


웃으며 즐겁게 살면 되지,

왜 예민하게 사는 걸까 궁금했다.


러닝 중 힘들고 지쳐

남편이 말을 걸면,

나는 괜히 말도 곱게 나가지 않았다.

힘들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구나.


또 하나.

힘들게 달리고 있는데

남편이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마저도 싫었다.


나는 힘든데

웃으며 친절한 모습을 보니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그때도 ‘탁’ 무릎을 쳤다.


직장에서 늘 의아했다.

친절하게 인사하고 다가가면

반갑게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러닝에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드디어 이해했다.

자기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웃고 친절한 상대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구나 하고.


마라톤은 인생과 같다던데,

정말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


일상에서 이해되지 않던 사람들이

조금씩 이해가 가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힘들어서 그랬구나.

몸소 깨달았다.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남을 위한 공간이 없다.”

-루이자 메이 올콧


러닝을 마치고

남편에게 신나게

방금 느낀 감정들을 재잘거리며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운동도 하고

또 많은 것을 느낀 순간이라 감사하다.


조금 더 상대를 이해하려고 해야겠다.

여유가 없을 땐

상대의 친절도

좋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깨달았다.


세상의 배움은 끝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장을 멈출 수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복은 결국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