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뭐 해요?”
자주 듣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안부에 가까운 질문인데,
나는 늘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예전에는
퇴근 후에 내가 뭘 하는지
있는 그대로 말하곤 했다.
“이것도 하고요, 저것도 해요.”
그렇게 말하면
대화가 길어졌다.
설명이 필요해졌고,
취향이 다르면
괜히 기운을 더 쓰게 됐다.
책을 읽는다거나
학원을 다닌다고 말하면
순간 공기가 달라질 때도 있었다.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렇게 깨닫는다.
나는 임기응변이 빠른 편도 아니라
늘 솔직한 쪽을 택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대답을 해봤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요.”
그 말 한마디로
대화는 가볍게 끝났고,
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별일 없는 하루라도.
하지만
그저 인사처럼 던져진 질문에
나를 전부 꺼내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가볍게 넘기는 법을
배운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지만,
그래도 나는
한정된 에너지를
아무에게나 쓰기보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침묵이
때로는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한 선택일 수도 있다.
“침묵은 지혜의 세례이다.
그것은 영혼을 보호하는 성벽과 같다.”
-프란시스 베이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