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가 필요한 시간
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또 끼니때가 되었다. 얼마나 주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조금 있으니 방에서 따님이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옥아 반지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휴지와 먼지 속에서 반지를 찾아 닦고 있었다. 할머니는 반지를 찾고도 내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은 망설였다고 했다. 오해를 해서 미안한 마음에 이번에는 할머니가 어떻게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걱정을 했고 따님이 얼른 말을 하라고 할머님께 다그치고 그 소리에 할머니는 나는 못하니 대신 네가 하라고 따님한테 미루고 그렇게 티격태격거리는 소리에 시끄러워서 주방에서 나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반지를 휴지에 꽁꽁 싸서 경대바닥에 넣어 둔 것이 맞았다. 그것뿐 아니고 다른 것도 넣어두고 넣어서 먼저 넣어 둔 반지는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아무리 손으로 막대기로 끄집어내어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경대를 들어내고 나니 다른 위치에 휴지가 있어서 쓰레기통에 버릴 뻔했는데 그것이 반지였던 것이다.
나는 반지가 나온 것에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이제 잃어버린 물건도 찾고 오늘은 늦어서 못 가니 하룻밤 더 자고 내일 가겠다고 말을 했다. 따님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어디 가냐고 나는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는 집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반지가 아니라 다른 것도 없어지면 무조건 나를 의심하고 또 소지품을 뒤지고 할게 뻔 한데 어떻게 서로 믿고 살 수 있냐고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를 시험하고 떠보는 것처럼 이 소란을 피우셨는데 앞으로 어떤 의심을 받을지 모르는데 이런 곳에서 마음 편히 일하면서 오래 있을 수 있냐고 나는 갈 때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따님이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안 뒤지려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안 그러면 계속 의심할 테니 그 의구심을 풀어서 확실하게 해야 다시는 안 그러실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엄마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른 엄마도 옥이한테 미안하다고 하라고 할머님께 눈치를 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엄마가 잘 못했으니까 옥이한테 맛있는 저녁도 사줘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따님은 나는 모르니까 엄마가 알아서 하라고 둘이 해결하라고 하면서 침대방으로 가버렸다. 나도 안방에 있기가 뭐해서 뒤따라 부엌으로 나왔다. 그러고 한참 지나서 할머님이 부엌으로 나오시더니 이것저것 뭘 하시는 척하면서 망설이던 끝에 할머님은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괜히 내가 잘 찾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테니까 우리 집에서 나랑 오랫동안 같이 잘 지내보자"라고 하셨다.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할머님 얼굴을 살짝 보고 있으니 할머니눈에서 눈물이 보였다. 할머님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간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네가 안 간다고 해야 저녁을 드시겠다고 했고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님 앞에서 더 이상 간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그러시니 나도 따라서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또 내가 간다고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안 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녁 드시라고 했더니 어느새 나와서 그런 할머니와 나를 보고 있던 따님이 참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할머니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며 뭐 벌써 정도 들고 친해진 거야 하는 눈빛으로 알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님은 오랫동안 혼자서 생활을 하셨다. 자녀분들이 있어도 같이 살지 않고 이렇게 도우미를 두고 생활을 해 오신 것이다. 내가 오기 훨씬 전에도 그렇게 사셨고 그동안 몇몇 사람이 왔다 갔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할머니가 까다롭고 일이 많고 이런저런 핑계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 돌아갔다고 했다. 나이가 많으면 일이 능숙하고 더 잘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해달라고 하는 데로 안 해주고 본인 마음대로 하려고 했고 적은 사람은 할 줄도 모르면서 일러주는 데로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못살게 괴롭히고 일이 많다고 하면서 하루도 못 버티고 간사람도 있다고 했었다. 그러다 내가 왔고 반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가고 나면 할머니는 다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셨고 그동안 많은 사람을 겪으면서 할머니처럼 나이 드신 분하고 누가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고 어쩌면 사시는 동안에 내가 마지막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나만 할머니가 낯설고 믿음이 안 간 것이 아니라 할머니 역시 내가 낯설고 믿을 수 없고 어떻게 살림을 맡기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나보다도 오히려 할머니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은 어려서 알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