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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Feb 28. 2022

겨울에 먹으면 든든했던 소고깃국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즈음, 엄마는 소고깃국을 끓이셨다. 우리 집의 소고깃국에는 소고기, 삐져서 썬 무와 콩나물이 듬뿍 들어 있었고, 고춧가루를 넣어 칼칼한 맛이 났다. 학교 가기 전 소고깃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먹고 길을 나서면 찬 바람에도 움추러들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자란 나에게 소고기 뭇국은 이 주황색의 소고깃국이다. 무는 정갈하게 나박 썰지 않고 삐져서 썰어 넣는다. 얇아서 뭉그러진 부분은 양념이 쏙 배어 맛있고, 가운데의 두툼한 부분은 달콤한 무의 맛이 느껴져 맛있다. 듬뿍 넣은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이 좋았고, 고기의 기름진 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고명으로 넣은 파와 마늘은 향긋했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게 되면서, 엄마가 소고깃국 한 그릇을 퍼서 주시면 후추를 듬뿍 뿌려서 먹기도 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처음 식탁을 차리던 날, 남편에게 '오늘 저녁은 소고깃국이야'라고 문자를 보냈다. 소고기 뭇국을 좋아한다는 말을 스치듯이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큰 무를 열심히 썰고 콩나물을 다듬고 참기름에 고기를 볶아 열심히 국을 끓였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저녁 상을 보더니 "어? 장터국밥이야?"라고 물었다. 남편이 생각한 소고기 뭇국은 무를 얇게 나박 썰어 끓인 맑은 국물이고, 그 국은 나에게 명절이나 제사 때나 먹는 '탕수국'이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소고깃국은 육개장과 비슷할 것 같지만 육개장과는 완전히 다른 국이다. 육개장 숙주, 토란대, 고사리 등의 채소와 양지머리를 삶은 국물에 결대로 찢은 고기를 넣고 끓인 묵직한 국이라면, 소고깃국은 고기를 참기름에 볶아 국간장과, 무, 콩나물, 고춧가루 한 스푼을 넣고 끓인 맑은 국물이다. 선짓국 혹은 해장국과 좀 더 비슷한 모양새이다.


작년 초 장거리 겨울 이사를 하느라, 집 근처의 콘도를 잡고, 이삿짐을 받는 동안 부모님께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경상도에서 충청도까지 먼 길을 오신 부모님의 차에는 각종 반찬은 물론, 소고깃국 한 냄비까지 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향의 음식은 이삿짐을 싸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해서 온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매운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여섯 살 난 아들도 밥을 말아 맛있게도 먹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난 주말은 아이와 함께 친정에서 보내기로 했었는데,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아이의 밥을 준비하다 이 소고깃국이 생각나 친정 엄마와 한참 전화를 했다. 추석 이후로 한 번도 못 본 딸과 손자를 엄마와 아빠도 한참 기다리셨을 텐데 "우리 딸 힘든데, 친정 와서 쉬지도 못하고 속상하네"라며 딸 걱정을 먼저 해 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또 아프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만큼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



경상도식 얼큰한 소고깃국



재료; 소고기 국거리, 무, 콩나물, 파,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국간장, 후춧가루


1. 한 입 크기로 썬 소고기 국거리를 참기름에 볶는다.

2. 고기의 겉면이 익으면 삐져서 썬 무와 고춧가루, 국간장을 넣고, 무가 익을 때까지 끓인다. (고춧가루는 중간 크기 냄비 기준 한 스정도만 넣어야 한다.)

3. 2에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파와 마늘을 넣어 마무리한다.

4. 먹기 직전 취향에 따라 후춧가루를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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