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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Feb 26. 2022

부추전에 들어 간 방아잎의 향을 아시나요?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 가던 무렵, 중학교 입학 준비를 하면서, 정들었던 초등학교 근처의 피아노와 미술 학원을 떠나, 새로운 학교 아래에 있는 보습학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내가 다니던 보습학원을 가려면 반월시장을 지나쳐야 했다.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곳의 재래시장은 아파트 상가만 보고 자랐던 나에게 창동의 팬시점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같은 학원에서 안면을 터 왔던 친구들 몇과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 애들과 함께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가는 길에는 꼭 무언가를 사 먹곤 했다. 학교 아래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시장의 치킨집에서 닭 한 마리를 4등분으로 자른 치킨 한 조각을 사 먹거나, 부추전을 팔던 집에서 부추전을 사 먹기도 했다.


사실 친구들을 따라 부추전을 먹으러 간 것이지, 그전까지 나는 부추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집의 부추전(사실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정구지 찌짐이라고 부르시는)에는 항상 다진 조개와 홍합이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개를 싫어해서, 당연히 부추전도 싫어했다.


그런데 반월시장의 부추전은 홍합과 조개는 조금 들었고 오징어가 많이 들어 있었다. 지금처럼 오징어가 비싸지 않던 시절이었다. 친구들이 부추전 위의 조개를 쏙쏙 빼먹어서 나는 조개를 골라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땡초 몇 조각이 들었고 방아잎도 적당히 들어가 있어 향긋했다. 밀가루 대신 양념이 가미된 부침가루를 넣고 기름을 넉넉히 두른 센 불에 부쳐내어 짭조름하고 바삭했다.


한 장에 천 원씩 하던 그 부추전을 각자 한 장씩 먹고 있으면 시장 어른들이 또 왔니? 하며 인사를 해 주기도 했다. 이제 갓 초등학생 티를 벗은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면서, 학교 앞 분식점 떡볶이 대신 시장의 부추전을 한 장씩 해치우고 가는 것이 신기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부추전을 먹기 시작하면서, 학교 급식으로 나온 부추전도 싫어하지 않고 잘 먹기 시작했다. 이 부추전은 고등학교 시절 특히 즐겨 먹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수학학원은 교습 방식이 약간 특이했다. 정해진 시간이 없이,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으로 가서 개인별 교습을 잠시 받고, 정해진 양의 문제집을 풀고 학원 차를 타고 12시가 다 되어 집으로 갔다.


항상 강의를 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선생님은 가끔 우리가 문제를 푸는 동안 창동으로 가서 떡볶이를 사 오시거나 닭꼬치를 잔뜩 사와 우리에게 나눠주시거나 하셨다. 가끔 문제 풀이가 일찍 끝나는 날이면, 학원 차에 우리를 태우고 떡볶이집이며 닭꼬치 집으로 우리를 데려가 야식을 사 주시기도 하셨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갔던 날, 떡볶이 사장님이 선생님에게 알은체를 하시며, 제자들을 처음 데리고 온 날이라 부추전을 주셨다. 그 떡볶이 리어카의 부추전은 토스트를 굽는 철판에 한 국자씩 반죽을 올려 부치다가, 다 익었을 때쯤엔 철판 위에서 뒤집개로 달걀 스크램블을 만들 듯이 부추전을 한 입 크기로 찢은 다음 시뻘건 떡볶이 양념을 넉넉히 뿌려 나왔다.


부추전에 뿌려진 떡볶이 국물이 조금 이상해 보였지만, 한 입 맛보니 너무 맛있었다. 철판 위에서 찢어진 부추전은 가장자리에 기름을 먹어서, 어느 조각을 먹어도 바삭했다. 느끼하다 느낄 수도 있는 기름의 맛을 매콤한 떡볶이 양념이 잡아주었다. 그렇게 먹는 부추전을 알게 되고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친구들을 꼬드겨 창동까지 걸어가서 그 떡볶이집에서 떡볶이와 부추전을 먹고 학원으로 가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체육 대회를 하던 날 선배들이 커다란 대야에 부추전 반죽을 만들어 구워 주면 새내기들막걸리와 함께 그 부추전을 먹었다. 진주에서 구하기 힘든 조개 대신 오징어와 땡초를 넉넉히 넣어 만든 부추전은 맛있기도 했다. 부추전이 질릴 때쯤이면 그 반죽에 김치를 넣어 김치전으로 구워 먹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산골에 있는 지역으로 농활을 가게 되었는데 농활기간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크게 도와드릴 농사일이 없었다. 마을 회관에서 동기들과 선배들과 모여 하릴없이 TV를 보고 있는데, 이장님이 노인정으로 다들 오라고 부르신다. 노인정에 가니 할머니들이 모여 계셨고 비도 오니 부추전을 부쳐 먹자 하신다.


김치를 담글 때나 쓰는 커다란 대야에 부추와 땡초와 양파 쏟아져 들어오고,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한 봉지씩 부어 주시더니 섞고 있으라고 하신다. 열심히 가루들을 풀고 있는데, 조개 다시다 한 봉지를 가져오신 할머니가 부침개 반죽에 후루룩 다시다를 쏟아 넣으신다. 처음 보는 조개 다시다도 신기한데, 이걸 부침개 반죽에 넣는다고? 하지만 할머니들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열심히 부추전을 섞고 부치고 했다. 다 같이 모여 먹은 그날의 부추전은 중학교 1학년, 시장에서 먹던 그 부추전 맛이 났다. 엄마의 부추전과 가게의 부추전 맛의 차이는 밀가루를 사용한 부추전이냐 부침가루를 사용한 부추전이냐의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개 다시다를 넣은 맛이라니. 어쩐지 허무하기도 했고 비기를 얻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봄과 여름이 되면 이 부추전들에는 방아잎이 들어가곤 했다. 어릴 때 살던 아파트의 화단에는 방아가 지천으로 자랐는데, 뜯어다 부추전에도 넣고 장어국에도 넣어서 먹곤 했다. 맛있는 부추전은 많이 맛봤지만 가끔은 방아 잎사귀 잔뜩 다져 넣은 부추전의 향이 그리울 때가 있다.


먹보 편식 왕이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아이는 먹는 양이 적을 뿐 골고루 먹는 식습관을 지녔다. 특히 이 부추전을 좋아해서 "엄마 초록색 부침개 해 주세요"라고 하기도 한다. 봄에 초벌 부추가 나올 때면 아이의 주문이 없어도, 꼭 부추전을 해 준다. 여름엔 영양부추로 부추전을 해 주고, 겨울엔 비싼 부추 대신 제철 시금치로 전을 부쳐 주면 맛나게도 먹는다. 가끔씩은 해물 가루를 한 스푼씩 반죽에 넣기도 하는데, 참 맛이 좋다. 내가 만드는 부추전은 내 입맛에 맞춰 굵직하게 다진 새우도 함께 넣어 만들고, 당근을 채 썰어 조금 넣기도 한다. 이제 조금씩 바깥의 자극적이고 강한 맛의 음식들을 먹기 시작한 아이가 엄마의 부추전을 오래오래 좋아해 주면 좋겠다.



부추전


재료;  부추, 부침가루, 취향에 따라  새우, 오징어, 홍합 등의 해물 및 청양고추, 당근, 양파, 애호박, 방아잎 등의 각종 채소, 식용유


 1. 부추는 잘 씻어 한 입 크기로 썬다.

 2. 해산물은 잘게 썰고, 채소들은 채썬다.

 3. 1과 2에 부침가루를 넣어 가루를 골고루 묻힌다.

 4. 3에 물을 적당량 넣어 반죽을 만든 후, 기름을 넣어 달군 프라이팬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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