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한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피자, 햄버거, 치킨 같은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입맛에서 나물, 샐러드 같은 산뜻하고 가벼운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거나, 한식 위주로 변해가는 음식에 대한 선호도 등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전엔 싫어하던 음식들이 이제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말 좋아하던 음식인데 이제는 시큰둥할 때가 있다. 사실 이러한 입맛의 변화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오는 것 같다.
어릴 적 먹보였지만 은근 편식을 하던 나는 채소도 싫어했고, 새우도 싫어했다. 내가 좋아하는 카레를 엄마가 만들어 주셨는데, 하필 그날의 카레에는 당근도 많고 새우도 들어있어서 먹기에 무척 고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우 요리를 즐겨 먹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우리 집은 외갓집 근처의 아파트를 떠나 새로 생긴 신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이제 나와 동생이 혼자서도 앞가림을 할 만큼 컸으니, 외할머니의 보살핌도 크게 필요하지 않을 시기였다. 나는 우리 학교 근처 고등학교 선생님이던 아빠와 함께 등교를 했고, 학교 근처 과외 선생님이었던 막내 이모의 차나 시내 버스를 타고 하교를 했다. 마산에 새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라 같은 반 친구 중에서도 나와 같은 여정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괜찮았다. 이사 초기에는 10년 넘게 살던 집을 떠나 새 집으로 이사를 해서 엄마가 무척 바쁘셨던 기억이 난다. 정신없이 장을 봐 와서 막내 이모와 함께 점심 준비를 하던 주말, 예전 살던 집과 관련된 문제로 엄마의 통화는 길어졌고, 점심시간은 늦어지고 있었다. 새우를 까고 있는 이모를 보며, 배도 고픈데 오늘 점심은 새우 반찬이라 먹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식사 준비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맛있는 냄새가 나 부엌으로 갔다. 뭔진 모르겠지만 노오란 부침개가 상에 있었다. 지나가며 하나 집어먹으니 너무 맛이 좋다. 자리 잡고 앉아 한 개 두 개 먹다 보니 한 접시를 혼자서 다 먹어버렸다. 굵게 썬 새우는 탱글탱글해서 씹히는 맛이 좋았고, 달걀을 넣고 만든 반죽은 폭신폭신했다. 새우를 안 먹는 딸이 새우전 한 접시를 홀랑 먹은 것을 뒤늦게 발견한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셨다. "네가 새우 안 먹는 줄 알고, 얼마 안 만들었는데.. 네가 먹은 새우전이 전부인데"
그 뒤로 나의 편식 카테고리에서 새우는 사라졌다. 오히려 새우가 든 음식을 찾아서 먹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새우 껍질을 먹거나 만지면 알레르기 반응이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새우를 좋아해서, 냉동실에는 항상 Law-tail-off새우가 구비되어 있다. 초대받은 집에서 새우 소금구이를 대접받는 날에는 남편이 새우 껍질을 벗겨 내 접시 위에 올려준다. 본인 먹기도 바쁠 텐데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새우를 좋아하는 내 접시에 새우가 수북이 쌓일 때면 새삼 그의 사랑이 느껴진다. 요즘 야근에 힘든 남편을 위해 오늘 밤에는 새우와 마늘 듬뿍 들어간 새우 감바스와 맥주를 야식으로 준비해 놓고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