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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혼자여도 괜찮을까?

by 엘라리

50 이 넘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언지 모른다. 아니, 알고 있다!

다만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모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왜냐면, 내 성격은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만큼 분명하니까. 그리고 옷을 고를 때도 나는 내 스타일을 안다. 근데, 그것 빼고는 아는 게 없다. 늘 일만 하고 즐길 줄 모르던 나는, 가끔 가는 여행이 전부 일 뿐, 집 근처에 맛있는 곳이나 좋은 장소를 아는 곳이 없다. 누가 묻는 다면, 그저 프렌치 음식을 좋아한다고 할 뿐, 어디에 맛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이 있는지 모른다. 여기저기 가보고, 경험해 봤어야 내가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알 것 아닌가? 한국에서도 인스타그램에 쏟아지는 수많은 맛집들을 저장해 두었지만, 누가 ‘뭐 먹으러 갈래? ’라고 물으면 정작 대답할 수가 없다.


미국에 있을 땐, 늘 일만 하느라 그저 한 끼를 뭘로 든, 허기진 배에 채우면 되었다. 나가서 먹을 시간이 없어, 늘 사가지고 올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혼자서 유명한 식당들을 혼자 먹으러 돌아다니는 게 쑥스러워 '언젠가 누가 생기면 같이 가자고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손에 가지고 있는 리스트는 길지만, 어디가 맛있는지는 안 가봐서 모른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쑥스럽고 익숙하지 않아서 버려둔 희망 사항들을 늘 나열만 하고 있었다.

오늘 헤어컷을 예약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미용사가 곱게 만들어 준 머리를 하고 그냥 집으로 올 생각을 하니 한심했다. 떡볶이나 김밥 집에 대강 들러 먹는 한 끼가 아닌, 미용실에서 예쁘게 머리를 하고, 나를 위해 식당 테이블을 예약하고, 비를 맞으며 발레 파킹을 하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잔과 그전에 맛본 적 없는 우니 크림 관자 파스타를 주문하고, 트러플 오일이 뿌려진 버터로 갓 구워져 나온 빵에 발라 먹는걸 나는 오늘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나를 위해 해 주었다.

대화 없이 먹는 혼자만의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을 외롭지 않게 즐겼다.

다른 때 같으면, 누군가와 같이 가야지 한다고, 접어서 서랍에 넣어 버릴 생각들을, 혼자인 모습이 두려워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오늘 혼자 해내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아.. 혼자 즐길 수 있구나’ ‘맛있는 걸 먹기 위해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구나’ ‘비 오는 날 식당주위에 발레 주차 해 버리면 되는구나’

물론 좋은 사람과 같이 먹으면 즐겁겠지만, 그것도 그 사람이 나 와 같은 마음일 때 즐길 수 있다..


스팅의 공연 모습 (Wolftrap in Virginia)


나는 미국에 살면서 가끔씩 Sting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들으며, 외로운 이방인으로 서의 삶을 달랬었다. 키 크고 잘 생긴, 영어도 잘하는 백인 남자 (Sting)와 함께, 미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느끼는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게 나에게 는 위로가 되었다. ‘저런 남자도 미국에서 외롭구나.. 하물며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스팅의 공연을 보러 혼자 가기 싫어, 딸을 데리고 갔던 나는, 공연을 100% 즐기지 못했다. 딸이 재미있어하지 않는데 신경 쓰느라.. 온전히 즐기지 를 못했다. 70 이 넘은 그의 모습은 여전히 멋있고, 노래는 감동이었지만, 20대 초반의 딸이 즐기기 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모든 관객의 평균 나이는 나보다 많아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차라리 혼자 올걸..’



모든 걸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는 없다. 혼자 좋아도 된다.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혼자 즐겁다고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물론, 스팅을 좋아하는 사람과 갔다면, 그 즐거움은 두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찾을 것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어디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할 친구는 어디 있는지.. 그때까지 나는 나의 리스트를 서랍 속에만 넣어 두지 않고, 혼자서도 용감하게, 그 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 나갈 것이다. 오늘은 미국에 가있을 동안에 관람할 Hauser 공연의 티켓을 샀다. 늘 그랬듯이, 딸에게 ‘같이 갈래?' 하고 물어보던 나는 속으로 아차! 했다. 다행히 , 딸이 “아니”라고 해서, 혼자 즐겁 게, 앞에서 세 번째 줄에 하나 남은 티켓을 건질 수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Hauser의 공연을 혼자 즐길 것이다.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춤추는 시간이 오면 나도 같이 그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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