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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날은 하늘이 주는 공휴일이다

오십이 넘고보니..

by 엘라리

이틀째 눈이 내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다. 다행히 눈송이가 작아 통행에 큰 불편을 주지는 않는다. 딱 즐길 수 있을 만큼만 오고 있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못 만들어 불평할 수도 있겠다.


눈이 오는 날은 언제나 즐겁고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런 날은 꼭 하늘이 나에게 숨 막히는 일상생활 들에서 좀 쉬어가라고 느닷없이 던져 주시는 공짜로 받는 선물 같았다. 눈이 오면 학교를 닫고 아이들은 집에 있게 되고 그 핑계로 나도 직장에 통보를 하고 집에 아이들이랑 있게 된다. 아이들과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영화도 보고.. 마음에 많은 여유가 갑자기 생겨나는 날이었다. 나는 3명의 약사가 파트너로 일하는 요양병원 약사로 근무하던 때가 있었다. 집이 멀리 산다는 이유로, 도로가 미끄러워 차가 너무 막힌다고..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들을 맡길 때가 없다는 이유로 늘 눈이 오는 날이면 집에 있겠다고 직장에 통보를 했다. 같이 일하던 유태인 할아버지 약사는 이해해준다고 아이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운 분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들이 걸리기는 했지만.

뒷마당에 내린눈위로 강아지 코코가 보인다


늘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준비시켜 학교로 보내고, 교통체증으로 편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직장을 다녀오고 주말이면 또 아이들 라이드 스케줄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갈 스케줄로 짜여 있던 다람쥐 채바퀴 돌아가듯 정신없는 헉헉 거리는 생활에 들어온 여유 그게 눈 오는 날이다. 갑자기 할 일 없이 어슬렁어슬렁 집안을 잠옷만 입고 다니며 눈 놀이를 하고 들어온 아이들과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그리고 계속 쌓이는 하얀 눈을 보면서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까맣게 타들어가던 내 맘을 하얀 카스텔라 가루가 상처를 달래주듯 덮어 주는 날이면 그렇게 그날 하루가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일 년 중에는 365일 plus 눈 오는 날이 있다. 보살필 아이도 없고, 직장도 없는 혼자인 지금도 눈은 포근한 이불을 내 마음에 덮어준다 그리고 하얀 가루가 온 세상을 덮고 세상의 모든 것이 하얀 코트를 걸친 동화 속의 나라로 변한다. 잠시 우리는 오늘과 내일의 빡빡한 삶을 잊고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이들과 타던 눈썰매, 스키장을 가던 중에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만 났던 사슴들, 아이들을 보모랑 맡기고 남편과 둘이서만 갔던 인공으로 만들어진 눈이 아닌 펑펑 내리던 천연의 눈을 맞으며 타던 스키. 강아지가 쌓인 눈에 만드는 발자국을 보며 같이 걷던 눈길.. 갑자기 내리는 눈으로 일을 마치고 3 시간 넘게 걸려 집에 도착했던 날도, 눈은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잊어버렸던 나의 즐거웠던 시간들.. 그리고 나를 아직도 아이 같이 들뜨게 만들어 주는 마약 같은 흰 눈이 다. 아이들과 같이 빛나던 그 시절의 눈.. 지금 혼자인 나의 삶을 외롭게 하지 않는 눈..


왠지 누군가 눈 온다고 연락 올 것 같은 날, 아니면 내가 연락해서 이쁜 눈이 온다고 연락하게 만들어 주는 날이다. 그때 그렇게 아이들과 즐겁게 쉬어 가게 해준 눈에게 고맙다. 그리고 아이들과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라고 눈을 보내주신 자연에게 감사한다. 살다 보면 그렇게 내가 알지 못하게 선뜻 주어지는 이상 한 선물들이 있다. 절대로 안 풀릴 것 같던 실타래가 그냥 스러럭 하면서 풀려 버리는 그런 때 같은, 과외해줄 돈이 없던 부모님을 가진 나는 ‘과외 금지’라는 나라 정책이 바뀌면서 좀 더 공정하게 돈 많은 집안의 아이들과 정당한 실력승부로 대학을 갈 수 있었던 자연이 준 선물. 전혀 앞길이 보이 지 않던 힘들었던 코비드 시대에 찾아왔던 눈 같은 선물은 마치 숨을 못 쉬고 있다가 턱 하고 숨이 열리던 경험이었다. 이렇듯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상황을 우리 자연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움직일 때가 있다. 나는 그럴때 마다 내가 아주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고 나를 보살펴 주시는 그 힘에 감사하며, 그분에게 고마워 서라도 내가 부끄럽지 않은 잘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자연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학비가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아이를 도와주면 그 아이가 나중에 나에게 그 돈을 갚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알지 못하게 그 빚을 다른 곳에서 돌려받을수도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베풀었다면 그 사람은 나를 잊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가 아닌 또 다른 사람에게 서 베풂을 받는다… 이것이 KARMA..라고

자연이 주시는 시험이고 선물이다. 나는 곧 자연이고 나무와 다른 생명체들처럼 자연에 의해서 보살펴진다. 그리고 오늘처럼 자연은 늘 예기치 않은 선물을 주신다.


그런 선물이 우리 인생에 늘 내가 모르는 곳에 복병처럼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좋지 않냐? 우리 인생? 아마 혼자인 나와 같이 꽁냥 꽁냥 해줄 좋은 벗도 자연이 인도해줄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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