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복잡하다.
그 자체로도 복잡한데,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성격과 외모에
살아오는 기간동안 얼마나 다른 환경과 상황에 형상이 다른 모습을 띄고 있을까.
로또 1등이 될 확률 보다 낮을 것 같은 각각의 비정형의 사람들.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다.
이런 감정들을 남들에게 보이기 두려울 때가 있다.
듣는이도 나와 같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까.
그래서 내 솔직한 감정을 말할때에도 포장이 섞인다.
행복한 모습이 미워보이지 않도록 슬픈 모습이 지겨워 보이지 않도록.
슬픔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할말이 많다.
슬플을 유발하는 상황이나 그 정도가 재각각 이기 때문에.
행복은 명확하게 규정 짓지 않는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니까.
왜 행복은 오래가지 않고, 슬픔은 끈질기게 남을까.
행복은 그 감정이 하나이지만, 슬픔은 내 많은 감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 자책, 자괴감, 질책 등 수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행복은 행복외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표현할 방법이 없자 행복은 남들처럼 / 남들만큼 / 무난하게 / 별일없이 등의 단어로 평균화 시켜버린다.
그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슬픈일이 없는게 행복 아닌가.
다들 인생이 무미건조해서 행복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게 아니라 슬픈일이 반복되서 너무 힘들어서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를 고민하고.
결국에는 답을 찾기 전에 새로운 슬픔이 찾아와서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는 않는가.
행복과 슬픔 두 감정의 가장 큰 차이는 시작점이 다르다가 아닐까.
슬픔은 대부분 나를 제외한 다른부분에서 시작이 된다.
나를 두고 주변의 상황, 시기와 질투 등등.
행복도 시작점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보았을때,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쉴 때 등등
하지만 이러한 행복을 오래 가지 않는다.
파도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해변 안으로 길게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끝이다.
생각하기에 진정한 행복은.
혼자 있을때도 지킬 수 있는 행복이다.
나를 위로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에 의해 얻어지는게 아닌, 행복 그 자체.
스스로를 행복이라 여기고
오는 슬픔에 방향을 내 안에서 유턴 시키지 말자.
밖에서 시작된 슬픔의 주체와 원인을 나로 둔갑시키지 말자.
내가 힘들기 때문에 슬픈거지 슬프기 위해 나를 힘들게 만들지 말자.
정당화는 오직 나를 행복하게 만들때에만 사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