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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유민 Oct 26. 2024

제3우주로

<우주의 삼차원> 2부 제2우주. 5장

 그날 회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 소녀는 누구인지, 제3우주로 어떻게 가려고 하는지, 그녀를 믿어도 되는지, 누구의 의견인지. 토미의 선언 이후 온갖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 정도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토미는 당황해서 회의실 밖을 뛰쳐나갔다. 나는 모든 상황을 수습하고 토미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특수인류가 한 명 더 존재한다는 사실에 모두 환호하였다. 토미가 나의 딸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다수는 그녀를 받들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의식을 치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토미를 회의실로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몹시 심란할 테니까.


 제3우주로 가겠다는 결심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나의 생각을 읽었을까? 아니면 제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넘어간 것일까. 이를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는 나는 참 부족한 엄마다.


 나는 정말 이러한 엄마밖에 될 수 없는 건가. 십오 년 전 토미를 떠나 원치 않게 제2우주에 갇혔지만 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계속 남아 있겠다는 결심은 나 스스로 하였다. 결국 내가 토미를 떠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토미가 나를 떠나려고 한다.


 그녀의 생각은 알 수 없다. 딸의 인생도 모르는 엄마가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분명한 한 가지를 느꼈다. 그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그 아이의 두 눈동자 속에서 담담함과 과묵함 사이 조그맣게 빛나는 열정의 씨앗을 보았다. 며칠 동안 지켜본 토미의 모습은 나를 꽤나 닮아있었다. 운명 같은 우연일까, 우연 같은 운명일까. 후자를 믿고 싶다.


 그 후 회의를 한 번 더 열었다. 제3우주로 갈 계획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토미 혼자 가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토미와 함께 갈 제2우주 인류 2명과 제1우주에서 여기로 나와 같이 빨려 들어왔던 연구원 2명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토미를 우선적으로 지키라고 신신당부했다. 특수인류인 토미가 위험해지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제3우주 출발팀은 며칠 동안 준비를 하였다. 그 사이 제2우주 기온은 끝없이 내려갔다. 그들은 새해 시작과 함께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토미의 특수인류 능력이 발휘되는 1월 1일에 맞춘 것이다.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한 순간이라도 토미를 눈에 넣기 위해 출발팀을 감시한다는 핑계로 내내 따라다녔다. 다행히 토미도 나에게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토미가 떠나면 끝을 모르는 기다림이 찾아올 것이다. 십오 년 전 내가 어린 토미에게 던졌던 기약 없는 기다림과 같을까. 토미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나의 머리가 미울 뿐이다.


 그때까지 한 번이라도 더 토미와 눈을 마주 보고 싶었다. 그 아이의 눈동자 안에 들어있는 세상이 궁금했다. 고맙게도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 그녀의 세상을 소심하게 비추어 보였다.




 2999년 12월 31일 밤, 나는 차원문 앞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우주선 한 대와 제3우주 출발팀이 있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 토미가 보였다.


 밀레니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3000년 1월 1일이네, 토미야.


 "생일 축하해."

 

 나는 토미를 바라본다. 그녀도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본다.


 "스무 살 된 것도 축하해."

 "잠시였지만 행복했어."

 "온 우주를 가진 것처럼."

 "그리고 미안해."


 마음에 고인 말을 내뱉는다.


 "토미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네. 고마웠어요."


 토미는 우주선에 오르기 전 작게 속삭인다.


 "엄마."


 남이 듣지 못할 만큼 나지막이 말한 그 말은 밀레니엄 종과 함께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별똥별 같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눈물이 땅을 적신 그 순간 우주선이 출발한다.


 우주의 삼차원, 바로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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