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유민 Oct 24. 2024

고향

<우주의 삼차원> 2부 제2우주. 4장

 "메이그린 님, 지금 빨리 일어나셔야 합니다.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


 방문 넘어 들린 켄의 다급한 외침에 잠에서 깼다. 나는 벌떡 일어나 씻지도 않고 갑옷을 어깨에 걸쳤다.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 탓에 늦잠을 자 버렸다.


 어제의 저녁 식사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미지의 제3우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마지막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자 리나와 카이가 꽤나 큰 절망감에 빠졌다. 그들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쏘아댔다. 제3우주는 안전한지, 가 본 적은 있는지, 어떻게 갈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확실한 대답은 없었다. 제3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3우주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하지만 제3우주도 제1우주와 제2우주처럼 똑같이 멸망하고 있다면요? 그러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리나 센터장님, 저는 평행우주만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어요. 우리 그렇게 믿었잖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죠? 어떡하지, 토미야?"


 카이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앉아있는 토미에게 물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제리가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제3우주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아니, 제리 씨. 정말 제3우주로 갈 생각이에요?"

 "제가 가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도 갇혀 있는 주제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방법을 찾아서 나쁠 건 없죠."


 리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제리가 내게 물었다.


 "특수인류라고 했나요? 차원문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네, 그렇습니다."


 불길했다. 제리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리나와 카이는 말과 행동에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어 그들의 마음을 파악하기 쉽다. 그들에 비해 제리는 시종일관 과묵하고 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존재감이 사라질 때쯤 한 번씩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는 사람.


 "아무도 제3우주의 물질을 갖고 있지 않은 지금, 제2우주에서 제3우주로의 차원문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특수인류뿐이죠."


 제리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토미였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돌아봤다.


 "토미야, 하지만 특수인류는 몇 명 없잖아..."

 "알아. 나와 메이그린 님. 두 명이지."


 나를 '엄마'가 아닌 '메이그린 님'이라고 한 것이 씁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토미의 기억 속 '엄마'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은 세 개의 우주를 통틀어서 오직 나에게만 존재한다.


 지난주부터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문제를 토미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자신을 희생하여 제3우주로 가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까. 제3우주에 어떤 생명체가 사는지, 그곳의 환경은 어떠한지, 어느 정도 발전이 되어 있는지, 제2우주처럼 뒤늦게 문제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걱정과 궁금증에만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면 진전되는 건 전혀 없다. 사건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우회하는 수밖에.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그 해결 방법이 토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은 막고 싶다.


 특수인류. 나를 지독하게 괴롭혀온 존재. 그들은 두 명이다. 그들만이 우주의 삼차원을 지나갈 수 있다. 메이그린과 토미. 토미와 메이그린. 이들이 두 우주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주체가 메이그린의 딸이 될 수는 없다. 이미 수년간 아픔을 준 엄마는 이를 반복해서는 안 되었다.


 제리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됐네요. 토미 씨 또는 메이그린 님이 제3우주로..."

 "안 됩니다. 토미는 안 돼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나의 본능이 내 입을 빌린 걸까.


 "토미는... 토미는 안 됩니다. 토미를 제3우주로 보낼 수 없어요."

 "그럼, 메이그린 님이 가겠다는 말씀이군요."


 제리는 또 한 번 정곡을 찔렀다. 그의 말이 옳은 건 알고 있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버리고 말겠다. 그렇다면 제2우주는? 캡틴인 내가 사라지면 제2우주는 어떻게 될까. 제1우주 인류에 잡아먹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만 믿고 따라온 이 약한 인류가 정말 생존력이 있을까.


 인간은 잔인한 경쟁의 동물이다. 그들 특유의 매정한 욕심으로 지금껏 모든 종을 짓밟고 세계를 군림하였다. 이는 모순적으로 인간의 참혹한 죽음을 초래했다. 남은 극소수의 인간은 생명의 환경을 절망적으로 수색하고 있다. 그들이 지구가 아닌 생명을 알게 된 순간, 제2의 죽음의 시대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비인간적 인간. 과연 이들이 어느 한 곳을 이기적으로 점령하지 않고 평화를 이끌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기에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였다. 나 또한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고향을 찾기 위해 인생을 살아왔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제2우주에서 나의 고향, 제1우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은 사람. 그 비인간은 바로 나다.


 특수인류가 나의 지독한 운명이라고 핑계 대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 핑계로 나의 마지막 고향을 뒤로한 채 홀로 안전하고 낯선 세상에서 지배자가 되고 싶었는 줄 모른다.


 비인간은 영원할 줄 알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십오 년 동안 이 공간은 나에게 '인간'에 대해 가르친 걸까. 더 이상 비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제2우주는 어느새 나의 또 다른 고향이 되어 있었다.


 "저는 여기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제2우주의 캡틴이다. 이곳은 나의 고향이다.


 "제3우주로 가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제리가 물었다.


 "그럼 누가 가란 말인가요?"


 카이가 말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토미를 다시 만난 날, 평생 내 몸을 감고 있었던 죄책감과 미안함이 모두 씻겨 내려갈 줄 알았다. 그것들이 내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와 허리를 거쳐 발끝에 도달하는 순간만을 기다려왔는데. 내려온 길을 되돌아 올라가고 있다.


 "제가 갈게요."

 

 토미였다.




 어제의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추억의 형태로 남아있던 네 살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아닌, 스무 살을 앞둔 열아홉 소녀의 목소리로.


 12월 말이다. 어느덧 새로운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우리. 얼마 전 꿈처럼 찾아온 딸. 그리고 이에 맞춰 거짓말처럼 닥친 새로운 고난.


 나는 방에서 나와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일주일 사이 극명하게 차가워진 공기가 갑옷을 뚫고 들어왔다.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추위로 온몸이 얼어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쯤, 회의실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언쟁을 펼쳤다.


 "또 기온이 하락했습니다. 이제 영하 20도입니다. 새해 전에 영하 30도를 찍겠어요!"

 "일주일 동안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겁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정말 참담합니다. 이제 어떡할 겁니까?"

 "저는 더 이상 이 일 못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이 알아서 하십시오."


 수많은 대화 중 하나가 귀에 꽂혔다.


 "메이그린 님이 대책을 생각해 오신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언성을 높였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닫고 나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메이그린 님, 대책이 무엇인가요?"


 모두가 나를 향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토미였다. 갑작스러운 낯선 소녀의 등장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가 제3우주로 가겠습니다."


이전 09화 온난과 한랭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