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를 다시 만난 날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그날, 나는 토미에게 모든 걸 말했다. 세 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과 두 개의 차원문을 통과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특수인류 '그린즈'에 대한 것까지. 토미의 반응은 담담했다. 조금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지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약 두 시간 동안 모든 걸 털어놓는 동안 토미는 내내 무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가끔 작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특수인류 '그린즈'에 대해 말할 때 토미는 의심의 눈빛으로 나를 대했다. 하지만 내가 최초의 특수인류이기 때문에 제2우주의 캡틴이 되었다는 점은 나에 대한 조금의 신뢰를 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내가 특수인류가 아니었으면 제2우주 사람들이 나를 캡틴으로 세우지도 않았을 테니. 그럼 나는 제1우주로 돌아가 지구에 있는 토미와 다시 행복하게 살았겠지. 하지만 특수인류라는 나의 지독한 운명은 이를 철저히 막아버렸다.
"메이그린 님, 내일은 각 부서 캡틴들과 긴급 대책 회의가 있습니다. 준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난 회의 결과를 애써 모른 척했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여 오는 막중한 책임감은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내가 생각해 내기로 했었던 급격한 기후 한랭화에 맞설 대책은 전혀 없었다. 과학 기술 정책으로도 막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제2우주도 제1우주처럼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까.
나는 켄에게 토미의 정체에 대해 말했다. 아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몇 시간 동안 단둘이서 대화를 하는 토미를 수상하게 보는 눈빛이 너무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나와 토미가 다시 만나게 된 스토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하나만 귀에 들어오는 듯했다. 토미가 특수인류의 혈통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만 말이다.
켄은 곧바로 토미를 보안 컨테이너에서 꺼내 여기서 나와 함께 생활하도록 제안했지만 토미가 이를 거절했다. 제2우주에서 특수인류라는 것을 알리는 순간 앞으로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나를 보고 바로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토미에게 내가 겪었던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제1우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절망스러운 외로움.
토미는 보안 컨테이너에 갇혀 있는 나머지 세 사람에 대해서 말했다. 리나, 카이, 그리고 제리와 함께 지구 궤도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아예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그녀와 어떻게든 다시 가까워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어느덧 열아홉 살이 되어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는 것이 왠지 슬펐다. 아직도 내 눈에는 나 없이 못 사는 네 살의 어린아이일 뿐인데.
나는 더 이상 토미와 함께 해 준 사람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켄에게 그들과 함께 할 저녁 식사를 준비하도록 말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항상 나 혼자 먹었던 방에 다섯 사람이 앉았다.
그들은 나와 토미의 이야기를 토미에게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수인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특수인류라고요?"
카이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네, 토미와 저는 특수인류입니다. 두 개의 차원문을 모두 통과할 수 있죠."
"토미야, 너 정말 굉장한 친구구나!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과 친구라니."
토미는 카이의 말에 조그만 미소를 보였다.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를 그때 처음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1우주에서 제2우주로 넘어오게 된 이유는 특수인류인 토미 씨 때문인가요?"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던 제리가 내게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특수인류의 능력은 태어나고 19년이 완전히 지나야 발현됩니다. 토미는 스무 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빨려 들어오게 된 건가요?"
"이 목걸이 때문이에요."
토미가 자신의 손목을 보여주며 말했다. 목걸이는 토미의 가느다란 손목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십오 년 전에 제2우주 광물로 만든 목걸이를 탐사선에 넣어 제1우주로 보냈습니다. 그 탐사선이 제 역할을 다하고 붕괴되었을 때 나온 이 목걸이가 우주를 떠다니다가 제1우주 인류에게 발견된 겁니다."
내가 목걸이에 대해 설명하자 카이가 뭔가 깨달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어쩐지. 그 팔찌, 아니 목걸이가 독특하게 빛나더라고요."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이던 중, 리나가 내게 불만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를 언제 풀어주실 거죠?"
"아, 그 일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도 회의가 필요해서 지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리나는 테이블에 주먹을 내리쳤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구 본부장의 딸입니다. 여기 이렇게 갇혀있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내가 없으면 우리 겨울 센터는 돌아가지 않을 거고요. 평행우주를 찾기 위해 십 년 간 노력했던 프로젝트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습니다. 빨리 지구로 돌아가 제2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요. 제가 일주일 동안 참았습니다. 이대로 여기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빨리 풀어주십시오!"
"안 됩니다."
"왜요?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당신들이 제1우주로 돌아가면 그쪽의 모든 사람들을 여기로 끌고 오겠죠. 여기 제2우주 사람들은 제1우주 사람들보다 힘도, 기술도 없습니다. 제1우주 사람들이 여기로 오면 이쪽은 모두 전멸하고 말 겁니다. 저는 제2우주의 캡틴입니다. 여기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와 같은 지구 사람이잖아요!"
나는 리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구. 나의 고향이다. 지금 이 방에 있는 모든 이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더 이상 지구의 미래가 보이지 않자, 나는 같은 고향 사람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 하나만 바라보며 우주 연구를 했었다. 그리고 우연히, 아니 특수인류라는 지독한 운명으로 인해 들어오게 된 제2우주에서 캡틴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제2우주를 지키려고 한다. 언제부터 내 무의식 속에서 지구라는 고향이 사라진 걸까. 나는 어느 우주 사람인가.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나는 누굴까.
"우리 지구의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하죠? 그냥 그렇게 불길 속에서 죽게 만들 겁니까? 당신은 그걸 원한 거예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빨리 사람들을 여기로 오게 하자고요!"
리나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내 심장을 수없이 휘감았다. 나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특수인류는 아무런 힘이 없다.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축복받은 존재라고 여겨지는 특수인류가 자신의 고향조차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이 미웠다.
"여기는 살 만합니까?"
제리였다. 그는 태연하게 와인을 마시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리나가 물었다. 한껏 상기된 채 소리를 질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기후 온난화로 상태가 심각해진 지구와는 반대로, 여기 제2우주는 기후 한랭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후 한랭화라니. 말도 안 돼."
리나는 힘없이 쓰러졌다.
"몇 개월 전부터 급속한 기후 한랭화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여러 대책을 찾고 있지만 모두 소용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도 사실..."
나는 말끝을 흐렸다. 또다시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 어쩌면 나는 십오 년 전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애써 감췄던 새로운 현실이 코 앞까지 닥치고 말았다. 언제까지고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 내 앞에는 나와 같은 고향을 가진 네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나의 딸, 토미가 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낼 때가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