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아이가 손목에 찬 작은 목걸이를 본 순간 지구에서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 온몸의 영혼이 그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달려들었지만 정작 내 입을 모두 피해 갔다.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들입니다, 메이그린 님. 차원문 앞에서 기절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제1우주 인류로 추정됩니다."
"차원문이라고요? 제1우주는 또 무슨 말이죠?"
켄의 말에 노란 원피스의 여자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가 도대체 어디입니까? 당신들은 누구죠?"
"센터장님! 이거 꿈이죠?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
그 옆의 남자아이는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센터장? 저 원피스 여자가 높은 사람이라도 되나 보다. 어이가 없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모두 진정하세요. 여기는 위험한 곳이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일단..."
"그러니까 우리가 왜 여기로 빨려 들어오게 된 거냐고요!
원피스 여자가 내 말을 끊고 앞으로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 켄이 재빠르게 막았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었던 우리 경호팀들이 그들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 입을 막았다. 모두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는 가운데 그 여자아이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순순히 몸을 맡겼다. 내가 그 아이를 내내 쳐다보는 것을 느꼈는지 순간 내 눈을 노려보았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메이그린 님, 아직은 위험한 것 같습니다. 이들이 진정될 때까지 보안 컨테이너에 가두겠습니다."
"네, 그렇게 합시다."
켄과 경호팀은 그들을 끌고 사라졌다. 원피스 여자, 갈색 정장의 남자,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를 따라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는 여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멀어지는 그 아이를 보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서 천천히 끓어올랐다.
다시 조용해진 방. 하지만 그 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그 아이는 나를 기억할까? 내가 없는 지구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그동안 잘 지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목걸이에 대해서도.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갈 수 없다. 아니, 다가가지 못하겠다. 십오 년 간 나를 천천히 갉아먹던 죄책감, 슬픔, 외로움, 미안함보다 더 큰 짐을 하루아침에 맞닥뜨린 그 아이의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애써 잊으려고 했던 지난날의 내가 후회되었다.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2우주의 캡틴 자리에서 뛰쳐나와 제1우주로 되돌아갔을까. 나의 고향, 지구로 돌아가 그 아이와 함께였을까.
정답이 없는 수많은 질문의 끝은 결국 목걸이로 향했다. 제2우주로 넘어와 캡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우주로 보낸 탐사선 안에 몰래 넣었던 작은 목걸이였다. 제2우주의 광물로 만든 목걸이에 그 아이의 생일 날짜를 새겼다. 생일을 보고 '혹시라도 목걸이가 그 아이의 손에 들어가 무사히 제2우주로 넘어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것이 실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가웠다.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두려웠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는 날을 수도 없이 상상했었다. 지금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심장이 그 아이를 강렬히 원했다. 나는 켄을 불렀다.
"네, 부르셨습니까."
"켄, 그 아이를 여기로 데려와요."
"어떤 아이 말씀하시나요?"
"여자 아이요. 아까 보았던 제1우주의 여자 아이 말이에요."
"네?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접촉했다가 메이그린 님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일단 그들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지금 당장 불러와요. 당장."
나의 강력한 명령에 켄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필요합니다. 그 아이가."
"아, 네. 알겠습니다. 데려오겠습니다."
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언제나 나를 위해주는 그의 마음을 잘 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빨리 그 아이를 보고 싶었다.
얼마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네!"
나의 외침에 문이 천천히 열렸다. 켄과 함께 그 아이가 들어왔다.
"켄, 잠시 나가 있어요."
켄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방에는 오로지 그 아이와 나만 존재했다.
막상 그 아이를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아이가 먼저 입을 뗐다.
"누구시죠."
아이의 목소리는 십오 년 전과 똑같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어린 네 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눈앞을 적셨다가 마르기를 반복했다.
"목걸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뜬금없는 세 글자가 나왔다. 그래, 일단 목걸이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이는 손목의 목걸이를 감췄다.
"어디서 찾았나요?"
내가 탐사선에 넣어 보낸 목걸이가 어떻게 그 아이의 손에 들어갔을까.
"당신이에요?"
"네?"
"당신이 목걸이를 보냈군요."
"아니, 어떻게..."
아이는 손목을 감추던 손을 내려놓고 목걸이를 손목에서 풀었다. 굉장히 침착했다.
"손목에 두른 목걸이를 보고 팔찌라고 하지 않았잖아요. 목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단 거죠."
"아, 그건 그냥 목걸이처럼 보여서 그런 겁니다. 팔찌였나요?"
괜히 둘러댔다.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침착했다.
"내 생일은 어떻게 알았죠?"
"생일이라니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끝까지 모른 척하려면 저를 왜 부르신 거죠?"
그렇다. 사실대로 말하려고, 모든 걸 말하려고 그 아이를 불렀는데 나는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가.
"말할 준비가 될 때 다시 부르세요."
아이는 뒤를 돌았다. 그녀가 방문을 열려고 하는 그때, 내가 외쳤다.
"미안해! 그때 널 떠나려는 건 절대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
"십오 년 전에 우주여행을 하던 중 여기로 빨려 들어오게 된 거야.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아이가 발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나 기억나? 아냐, 기억 못 해도 돼. 내가 너를 기억하니까. 어떻게 지냈어, 토미야?"
내 딸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뚝 떨어졌다. 토미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지 마세요. 혼란스러우니까."
"아, 미안해. 너도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서, 당신이 나의 부모란 말인가요?"
'부모'라는 단어에서 왠지 냉담한 기운이 흘렀다. 토미는 불편하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아, 맞아. 내가 너의 엄마야. 너는 기억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았어. 정말이야."
"그렇군요."
돌아오는 대답은 그뿐이었다.
"그래, 토미야!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 줄 알아? 너를 어떻게 잊니, 내가.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잘 있어 줘서."
"그래서, 여기가 어딥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토미를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녀의 반응은 어떨까.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십오 년 동안 보지 못했다면 토미에게 나는 그저 낯선 사람일 것이다. 받아들이기 무서웠지만 지금 그녀의 반응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토미를 다시 만난 나의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춰야 했다.
"토미야..."
"여기가 어디냐고요."
"여기는 제2우주야."
"..."
"우리가 원래 살았던 우주가 제1우주고, 여기는 새로운 우주인 제2우주라고 해. 네가 여기로 오게 된 이유는..."
"평행우주란 말인가요?"
토미가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 일종의 평행우주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조금 달라. 여러 별들의 집합체인 제1우주와는 달리, 여기 제2우주는 스스로 빛을 내는 이 별 그 자체야."
"말도 안 돼. 정말 평행우주가 존재했다니."
토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동안 내가 없는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모르니 그녀의 감정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