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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유민 Oct 07. 2024

우주의 끝, 그리고 시작

<우주의 삼차원> 1부 제1우주. 6장

 털썩. 나는 조종석에서 일어나 우주선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의 첫 조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토미야, 어때? 재밌지 않아?"


 카이가 내게 와 쪼그리고 앉았다.


 "응, 내가 우주선을 조종해 보다니..."


 팔다리에 잔뜩 힘을 준 탓에 정신이 없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야의 모서리에서 카이의 얼굴이 조그맣게 등장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걸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카이도 따라서 일어났다.


 "토미 씨, 제법인데요! 앞으로 우리 센터에서 전문적으로 조종을 배워봐도 되겠어요."

 "부럽다! 센터장님, 저도 배우면 안 될까요? 제발요!"


 카이가 리나 센터장의 팔을 잡고 애교 가득한 말투로 부탁했다.

 

 "아쉽지만 토미 씨가 카이보다 더 잘하는걸요? 하루 만에 이 정도면... 앞으로 정말 기대됩니다."


 리나 센터장은 피식 웃으며 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이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자, 이제 배고프죠? 모두들 따라오세요."


 조종실을 벗어나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리나 센터장은 발을 멈췄다. 그녀가 위를 바라보니 벽이 위로 열리며 갈색빛의 문이 등장했다. 문 앞의 인공지능이 리나 센터장의 얼굴을 인식하자 문이 열렸다.


 "와..."

 

 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조종실의 열 배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방에는 우드 톤의 대형 식탁과 그를 둘러싸는 고급 의자들이 있었다. 벽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그 외에도 방구석에 있는 높은 황금색 스피커, 천장의 샹들리에, 식탁으로 가는 길에 깔려 있는 와인색 카펫, 그리고 은빛의 식기들까지. 궤도 센터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이곳은 우리 센터의 비밀 공간입니다. 제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죠. 아, 물론 제리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식탁 모서리 쪽 의자에는 이미 제리가 앉아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며 가볍게 끄덕였다.


 "여기서 우리는 밥을 먹고 비밀회의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제가 이 방에 힘을 좀 썼더니 이렇게 아름다워졌어요. 토미 씨도 이 공간에 자주 오게 될 겁니다."


 리나 센터장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장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카이와 나는 제리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얼마 후, 인공지능이 음식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코스 요리였다.


 모두가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던 중, 제리가 입을 열었다.


 "토미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그가 질문을 한 상대는 다름 아닌 나였다. 그의 동굴 같은 목소리에 순간 겁이 났다.


 "네, 당연하죠."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카이와 리나 센터장은 끊임없이 먹고 있었다.


 "어떻게 겨울 센터로 오게 된 건가요?"

 

 아, 이런. 내가 가장 창피하게 여기는 일에 대해 물어보다니. 공부를 못해서 쫓겨났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다, 그냥 이런저런 일로 인해 겨울 센터의 사람과 교환되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옆에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리나 센터장이 맛있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제가 공부에 흥미가 없다 보니 가을 센터장께서 겨울 센터의 사람과 저를 교환할 수 있게 하셨어요. 그분이 워낙 학업에 관심이 많으셨거든요."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그럼 몇 살 때 처음 궤도 센터로 온 건가요?"


 끝난 줄 알았던 제리의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제리가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경계를 풀었다.


 "10살 때 처음 가을 궤도 센터로 가게 되었어요. 그때는 너무 어렸어서 잘 기억나지 않네요."

 "제리 형, 토미는 나와 동갑이라니까. 나도 10살에 여기 처음 왔잖아. 설마 기억 안 나는 건 아니겠지?"


 카이가 스테이크를 씹으며 말했다. 제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그때 가족들과 함께 가을 센터로 갔겠군요. 너무 어리면 보호자가 발령받은 곳으로 가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왜죠?"


 제리는 스테이크를 썰던 나이프를 멈추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조금씩 내려와 내 손목의 목걸이로 향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책상 아래로 팔을 내렸다.


 "저는 가족이 없거든요. 어릴 때부터 혼자였어요."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던 리나 센터장과 카이 행동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군요. 어린 나이에 외로웠겠어요."

 "뭐, 딱히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카이와 리나 센터장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제리는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한입 먹고 입을 닦았다.


 "그럼 전 이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만든 채 홀로 빠져나가다니. 참 희한한 인간인 건 틀림없다.

 

 마침 그때 디저트가 나왔다. 카이는 일부러 크게 반응했다.


 "오, 디저트다, 디저트! 맛있겠다!"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읍시다!"


 리나 센터장도 카이를 따라 허겁지겁 디저트를 먹었다.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미안했다.




 식사 후, 우리는 각자의 휴식 공간으로 향했다. 작은 방에 혼자 있으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일까.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사람들로 북적이던 주위가 고요해지니 내 특유의 어두운 감정의 골로 빠질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간 더 피곤해질 것 같아 방 나다.


 공용 공간으로 가니 카이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는 내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토미네! 피곤할 텐데 좀 쉬지."

 "아냐, 잠이 안 와서. 너는 여기 있어?"


 나는 카이 옆에 앉았다. 카이가 쿠션을 건네주었다.


 "나는 여기서 창 밖의 별들을 보는 것을 좋아해. 저기 봐봐."


 그는 창문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푸른 별들이 가득했다.


 "아름답네."


 그 광경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별들을 바라보았다.


 "토미야."

 "응?"

 "너는 뭘 좋아해?"

 

 카이가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나는 사람들과 있는 걸 좋아해. 혼자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해져. 하지만 사람이 옆에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항상 즐거운 일이 일어나지."

 "응, 맞아. 나도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긴 해."

 

 카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네가 내 옆에 와서 좋아."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친구끼리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가? 여태까지 친구가 없어봐서 모르겠다.


 "네가 첫 동갑내기 친구야. 나와 동갑인 사람을 본 게 정말 처음이거든."


 나는 말을 돌렸다. 아무 말이나 뱉었다.


 "나도야! 그래서 처음 봤을 때 엄청 반가웠어. 이 힘든 시기에 지구에서 동갑 친구를 보는 게 얼마나 귀중한데."

 "맞아."

 "물론 우리는 지구가 아닌 지구의 궤도 센터에 있긴 하지만. 마음만은 지구에 있어."

 "너는 지구에 있던 때가 기억나?"


 카이에게 물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는 내가 라웠다.


 "응, 당연하지.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매일 내게 노래를 불러주셨어. 그때 정말 행복했는데."

 "그렇구나."


 그때 카이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괜히 이 얘기를 해서..."

 "아니야. 난 정말 신경 안 써. 괜찮아."


 내가 괜찮다고 했지만 카이는 계속 어쩔 줄 몰라했다.


 "어릴 때 나는 기숙학교에서 지냈어. 거기는 나처럼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전 기억은 없어. 그리고 10살 때 지구 밖으로 나게 된 거야."

 "그렇구나. 가을 센터에서는 어떻게 지냈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 친구도 없고, 딱히 친구를 만들 생각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쫓겨났지 뭐야."


 내 말에 카이가 살짝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거잖아."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불편하지 않은 평화를 느꼈다.




 "어?"


 카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저거야. 저 녀석들이야!"


 창 밖에는 저 멀리 이상한 생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카이가 말했던 외계인이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가야 돼!"


 카이는 조종실로 빠르게 뛰어갔다. 나도 뒤따라갔다. 그는 조종석에 앉아 능숙하게 우주선을 몰기 시작했다.


 "우리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도 되는 거야?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외계인을 실제로 보니 무서웠다.


 "아냐, 괜찮아. 어차피 이 우주선은 어느 정도밖에 다가갈 수 없어. 이상하게도 어느 거리부터는 조종이 안 되더라고."


  카이의 말이 끝나자 우주선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리나 센터장과 제리가 조종실로 뛰어왔다.


 제리는 오자마자 조종실의 컴퓨터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리나 센터장은 확대된 화면을 보며 외계인의 주위를 탐색했다.


 카이 말대로 어느 정도부터는 우주선이 멈추는 것 같았다.


 "저기 외계인들이 어떤 곳으로 들어갑니다!"


 리나 센터장이 외쳤다. 외계인들이 희미 원형의 문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우주선이 갑자기 그 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카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조종기는 응답하지 않았다.


 우주선은 점점 빨라졌다. 리나 센터장이 소리를 질렀다.


 "우주선이 갑자기 왜 이러죠?"


 나는 너무 빠른 속도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감은 두 눈을 강하게 쏘는 빛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내 손목에서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목걸이였다.


 점점 더 강한 빛이 날수록 우주선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이내 강력한 백색 빛이 까만 우주를 가득 채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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