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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유민 Sep 30. 2024

겨울의 시작

<우주의 삼차원> 1부 제1우주. 4장

 "평행 우주?"

 "응, 평행 우주."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평행 우주를 말한 것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 또 다른 우주가 있다…."

 "맞아. 옛날부터 이에 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밥을 먹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고 어느덧 카이와 나만 남았다.


 "그래서? 평행 우주가 여기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


 궁금했다. 가설로만 듣던 평행 우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카이는 이에 대해 왜 바로 말해 주지 않는 건지. 무언가 알고 있을까.


 "아, 그냥 말해줘야겠다. 그전에, 리나 센터장님께서 너한테 무슨 얘기하신 거 있어?"


 카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프로젝트 말이야? 같이 하자는 이야기만 하시고 무슨 프로젝트인지 말씀은 안 해주셨어. 너는 뭔지 알아?"


 마침 궁금했는데, 카이는 왠지 말해줄 것 같았다.


 "오, 너한테 말씀하셨구나. 다행이다. 그럼 나도 편하게 말해 줄 수 있겠네."


 카이는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오후에 처음 봤을 때처럼.


 "사실은 말이지. 우리 센터가 얼마 전에 엄청난 것을 발견했어. 말로만 듣던 평행 우주가 있을 것 같다는 증거를."

 "평행 우주가 실제로 있는 거라고?"

 "응. 아직은 더 알아봐야 하지만 새로운 세계가 있는 것은 분명해."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카이는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예전부터 우리 센터는 생명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계를 찾는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했었어. 너도 알다시피 태양계수명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확실하지 않잖아. 리나 센터장님은 인류의 멸종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셨어. 나도 그렇고."

 "그렇긴 하지."

 "그래서 우리 센터는 주기적으로 태양계 밖으로 나가 연구를 시작했지. 물론 비밀리에. 우리가 찾고 있는 그 행성이 아무리 멀어도 전혀 상관없었어. 태양계에서 지구 궤도만 지키다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태양계 밖으로 우주선을 타고 나가면 지구 본부한테 걸리지 않아? 내가 가을 센터에 있었을 때는 센터장이 꼼짝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는데."


 궤도 센터에서 태양계 밖으로 탐사를 나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태양계 안에 수많은 우주 정거장이 있는데 분명히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 그 궤도 센터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물론 위기는 있었어. 당연히 걸렸지."

 "진짜 걸렸다고? 어떻게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거야?"


 카이는 전혀 심각해하지 않았다. 아주 당당한 표정이었다.


 "리나 센터장님 덕분이야."


 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리나 센터장님은 지구 궤도 센터를 총괄하는 본부장님의 딸이거든."


 나는 너무 놀라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놀랐지? 나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많이 놀랐어."


 리나 센터장이 젊은 나이에 센터장이 된 것과 항상 자신만만한 미소를 품고 있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본부장님의 딸이면 두려울 게 하나도 없겠다.


 "리나 센터장님은 우주여행을 정말 좋아하시거든. 거의 매일 여행하셨어."


 "어이, 학생. 식당 문 닫으니까 빨리 먹어요!"

 식당 직원이 멀리서 외쳤다. 우리는 얼른 치우고 식당을 나갔다.

 

 까만 우주가 보이는 창으로 둘러싸인 복도를 걸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루는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리나 센터장님께 여쭤봤지. 아무리 본부장님의 딸이어도 매일 우주여행을 하시면 본부로부터 경고를 받을 것 같았거든. 실제로 본부장님도 우주여행하는 리나 센터장님을 못마땅해 하셨대."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어?"

 "같이 우주여행 갈래요?"

 "네?"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을 해버렸다. 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리나 센터장님이 그러셨어. 같이 우주여행 가자고. 놀랍지? 참 대단하신 분이야."

 "그래서 같이 갔어?"


 센터장과 께 하는 여행이라니. 어제까지의 나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가을 센터장 아저씨와 우주여행을 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응, 당연하지! 몇 년째 사방이 막혀있는 궤도 센터에만 있었는데 ‘우주여행’이라는 말에 누가 ‘아니요’하겠어?"


 맞다. 나도 십 년째 답답한 궤도 센터에만 있는 중이지.


 "그때 처음으로 태양계 밖을 나가봤어. 정말... 정말 근사했어."


 카이는 잠시 추억에 빠진 듯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조금 부러웠다.


 "드넓은 새까만 공간 속에서 불쑥불쑥 보이는 화려한 별들! 그 잠시 동안만 볼 수 있는 찬란한 광경을 잊을 수가 없어."


 나도 최선을 다해 그 광경을 상상해 보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검정 배경뿐이다.


 "그런데 그때였어."


 카이가 다시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나를 보았다.


 "태양계 밖을 한참 지나 여행하고 있었는데, 저기 먼 곳에서 작고 움직이는 무언가가 여러 개 보이는 거야."

 "움직이는 것은 행성 아니야?"

 "맞아, 나도 그런 줄 알았어. 더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니 우주선의 전자기파 탐지기가 갑자기 경보를 울리는 거야. 정체 모를 전자기파를 탐지한 거였어. 그래도 우리는 계속 다가갔지. 리나 센터장님이 가만히 계실 리가 없기도 하고."


 나였으면 무서워서 바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 모를 힘 때문에 더 다가갈 수 없었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걸 봤어."


 카이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눈이 점점 동그래졌다. 그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물체였어."

 "생물체?"

 "인간이 아니었어."


 외계인? 인간이 아니면 외계인이다.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몇 천년 동안 외계인에 대한 여러 추측과 관찰 기록이 있었지만, 신뢰성 있는 자료로 남지는 못했다. 그런데 실제로 봤다니. 그것도 내 앞에 있는 이 친구가.


 "확실해? 인간이 아닌 생명체라고?"

 "응. 두 다리가 있었지만 얼굴 형태도 다르고 키도 훨씬 컸어.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우주복을 안 입고 있었어."


 그럼 인간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우주복을 입지 않고는 절대로 우주에 나갈 수 없으니까.


 "너무 무서워서 빨리 돌아가자고 했는데, 리나 센터장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지. 센터장님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이상한 생물체를 계속 관찰하셨어. 그것들에게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진짜."

 "그래서? 빨리 말해줘. 어떻게 됐는데?"

 "그것들은 막 떠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딘가로 직접 들어갔어. 그러고는 사라졌어."

 "어디로 들어간 거야?"

 "그건 나도 몰라.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서부터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어."

 "음... 그렇구나. 좀 무서운 걸."


 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카이는 그런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 맞다. 우리 오늘 처음 봤는데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네. 많이 놀랐지?"


 그렇다. 생각해 보니 카이와 만난 지는 한 시간도 안 되었다. 동갑이어서 금방 친해진 걸까.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덕분에 첫날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되어서 적응 잘할 수 있겠는걸!"


 나는 살짝 웃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한 적이 있었던가. 전에 미랑 언니가 실없는 소리 할 때 조금 미소를 보이며 반응해 준 것 말고는 없었다. 내 인생에서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인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걸 친구라고 하나?


 "그럼 다행이다! 아무튼 리나 센터장님이 말씀하신 프로젝트라는 게 바로 이거야. 우주여행을 핑계로 한 평행 우주 탐사! 그 이상한 생물체는 분명 새로운 우주 세계로 들어간 걸 거야. 새로운 전자기파도 발견했고, 그때 이후로 우리 센터가 추가로 연구한 증거도 있고. 이제는 센터장님 뿐만 아니라 여기 모든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우주탐사를 하고 있거든."


 카이는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마치 우주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리나 센터장님이 계속 우주여행을 가시니까, 사실 비밀리에 연구하는 것이지만, 지구 본부는 우리 센터에게 지원을 점점 줄이고 있어. 그래도 센터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셔.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시긴 하지만."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리나 센터장님을 싫어하지는 않아? 지원이 줄어들면 시설도 안 좋고 센터 개발도 느릴 텐데."

 "전혀! 감사하게도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을 갖고 있어. 언제까지 지구 궤도 센터에서 일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리고 우리 센터 사람들 모두 우주여행을 할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해하고 있지. 이게 바로 도전 정신이야!"


 카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평행 우주라...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보는 세상은 정말 좁구나. 오늘 가을 센터에서 겨울 센터로 온 것은 우주의 발톱만 한 사건이겠지. 그때는 서럽고 우울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별일 아니었다. 누구는 아예 새로운 세상으로 가려고 우주여행까지 하는데 나는 고작 지구 궤도 내에서 이동한 것 가지고 슬퍼했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앞으로 참여할 프로젝트에 설렘을 안고 눈을 감았다.




 다음날, 리나 센터장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온통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근무 첫날부터 회의라니. 모두가 모인 회의실에서 누군가 내 옆에 앉았다.


 "안녕!"


 그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카이였다. 어제 하루 봤다고 내적 친밀감이 쌓였는지, 나도 모르게 반가웠다.


 "자, 여러분! 모두 잘 잤죠? 반가워요!"


 리나 센터장이 말을 시작했다. 그녀는 보석이 달린 샛노란 원피스에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우아했다.


 "이번에 탐사를 갈 사람들을 호명할게요! 곧 출발할 거니까 바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주여행을 나가나 보다. 신기했다.


 "나였으면 좋겠다!"


 카이는 나만 들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오늘도 그의 눈은 빛났다.


 "카이! 제리! 그리고..."

 "아싸!"


 카이가 작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제리로 보이는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리나 센터장이 마지막 사람을 호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온... 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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