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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유민 Sep 27. 2024

겨울 궤도 센터

<우주의 삼차원> 1부 제1우주. 3장

 19살. 이별을 경험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그것이 이 세상 어느 것과의 이별이라도 말이다.


 나의 첫 이별은 부모님과의 이별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였기 때문에 다행히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테다. 사람들의 궤도 센터 우편함 속에 가족의 편지가 있는 걸 보면 심장에 텁텁한 먼지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슬픔이 뒤늦게 쌓이나 보다.


 두 번째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열 살의 나는 평생의 보금자리라고 당연시 여겨왔던 지구를 떠나야만 했다. 우주선에 들어가기 전, 우주복 신발 바닥을 통해 마지막으로 느꼈던 지구의 단단한 따뜻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감정에 메마른 나에게 지구의 마지막은 '슬픔'을 알려주었다. 그 슬픔은 내 발을 타고 올라와 심장 벽을 거칠게 감쌌다.


 더 이상의 이별은 없었으면 했는데. 스무 살이 되기 한 달 전 찾아오고야 말았다. 지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십 년간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공간과 사람들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토미 양은 내일부터 겨울 궤도 센터에서 일할 겁니다.”


 센터장의 마지막 말은 내 심장을 강하게 쥐어짰다. 오랫동안 잔잔했던 심장 속의 먼지바람이 또다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먼지 돌풍은 거친 심장 벽을 따라 동맥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심장 박동을 하나하나 느꼈다.




 겨울 센터로 가는 우주선이 출발하기 전, 센터장은 내게 짐을 챙길 시간을 주었다. 내가 챙겨야 할 것이라고는 방에 있던 옷과 생필품 정도밖에 없었다.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창틀 위에 올려놓았던 목걸이가 반짝였다. 나는 목걸이를 손목에 차고 나왔다.


 미랑 언니는 잠시 눈물을 보였다. 내가 꽤나 의지가 되었나 보다. 나는 언니를 약하게 안아주었다.


 “언니,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꺼낸 몇 안 되는 진심 중 하나였다. 미랑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여기서 더 일찍 쫓겨났을 것이다.


 “토미야, 목걸이 챙겼어?”


 울음을 그친 언니가 내게 꺼낸 첫마디였다.


 “응, 여기.”


 나는 손목에 찬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미랑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목걸이 잃어버리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토미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언니와의 작별인사 후 나는 우주선에 탑승했다. 지구의 공전 궤도면에 있는 네 개의 궤도 센터를 따라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우주선이었다. 네 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았다.


 우주선은 단 하나의 아쉬움도 없이 출발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속도였다. 우주선의 빠른 속도만큼 나의 우울함도 빨리 씻겨 면 좋을 텐데. 나는 우주선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지구가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지구를 따라잡고 지나쳐 겨울 센터가 보였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이렇게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미웠다.




 겨울 센터에 도착한 나를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또 다른 인공지능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나를 방으로 안내한 후 곧바로 센터장실로 데리고 갔다. 오자마자 센터장과 면담을 갖다니.


 걱정과 불안함을 안고 센터장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나는 문을 조심히 열었다.


 “안녕하세요, 가을 센터에서 겨울 센터로 새로 오게 된 토미입니다.”


 인사를 한 후 센터장을 처음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겨울 궤도 센터장 리나라고 해요.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어요! 앉으세요.”


 가을 궤도 센터장은 거대한 체구에 무섭고 단호한 목소리를 가진 아저씨였는데 내 눈앞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분이 계셨다.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되어 보였다.


 “토미 씨, 방 안내는 받았죠?”

 “네, 오자마자 안내받았습니다.”


 센터장은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가을 센터와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토미 씨가 전에 계셨던 가을 센터는 시설이 아주 좋다고 들었어요. 너무 죄송하지만 여기 겨울 센터는 그렇지 않아요... 저도 노력해보고 있는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가 않네요.”


 확실히 가을 센터보다 겨울 센터가 시설이 안 좋아 보였다. 센터장실만 봐도 크기가 훨씬 작고 가구가 온통 낡은 것들뿐이었다.


 “아,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센터장의 아름다운 미소가 오늘 내게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버리게 했다.


 “토미 씨는 어떤 걸 좋아하나요?”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내게 그런 걸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 그게...”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말해 봐요. 아무거나!”


 그동안 가을 센터에서는 항상 혼나기만 했었는데 리나 센터장이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먼저 물어보았다.


 “어... 딱히 좋아하는 것은 없습니다. 대신 싫어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다니.


 “아, 그거 참 좋은 말이네요! 저는 토미 씨 같은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요. 싫어하는 것이 없으면 아무거나 다 잘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

 “토미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리나 센터장은 쉬지도 않고 질문을 다.


 “혹시 저와 함께 일해보지 않을래요?”


 네? 이제 처음 왔는데 나의 어떤 것을 보고 같이 일해보겠다는 말인가. 후회 말씀을 하시는군.


 “아, 어떤 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리나 센터장은 대답 없이 싱긋 웃었다.


 “일단 좋다는 얘기죠? 다행이에요! 분명 토미 씨도 좋아할 거예요. 엄청 흥미로운 프로젝트거든요.”


 이상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프로젝트를 같이 하다니.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분명 못할 것이 뻔하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저기, 혹시 어떤 프로젝트인지...”

 “아, 그건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방에 가서 쉬시면 됩니다. 토미 씨 내일 만나요!”


 지금까지 센터장과 수많은 면담을 해보았지만 이번 면담은 정말 새로웠다. 리나 센터장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정체 모를 설렘을 안고 방으로 가고 있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혹시 가을 센터에서 새로 오신 분가요?”


 벌써 소문이 다 났나 보다. 내가 가을 센터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는 이 창피했다.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토미입니다.”


 카이라는 남자는 상냥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제 또래 같아 보이는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처음 보는데 바로 나이를 묻다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쫓겨난 신세에 착해 보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대답했다.


 “19살입니다.”

 “오, 저랑 동갑이네요! 우리 친구 할까요?”


 동갑이라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갑 친구였다. 말도 안 된다.


 “아... 네, 좋아요.”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반말해도 되죠?”


 이번에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와 다르게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것 같았다.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갔다. 식당도 가을 센터보다 좁고 음식의 양도 적었다. 그래도 가을 센터가 그립지는 않았다. 미랑 언니 빼고.


 “토미, 네가 있었던 가을 센터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지만 여기도 나름 살기 좋아. 그렇지 않아?”


 카이는 밥을 먹으며 내게 자꾸 말을 걸었다. 카이도 리나 센터장처럼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어, 맞아. 여기도 좋은 것 같아.”


 나는 처음 해보는 반말이 어색했지만 동갑내기 친구의 존재에 점점 익숙해졌다.


 “사실은 말이야, 나는 우리 겨울 센터가 왜 다른 센터들에 비해 지원을 못 받는지 이해가 돼.”


 무슨 말이지? 나는 밥 먹는 것을 멈추고 카이를 바라보았다.


 “다른 센터들과 거리가 동떨어져서만이 아니야.”

 “그럼 뭔데?”


 궁금했다.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음, 그게 말이지... 뭐, 어차피 너도 알게 될 거니까.”


 카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우리는 다른 궤도 센터들과 다른 목적을 갖고 있어.”

 “...”


 “평행 우주,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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