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유민 Oct 04. 2024

우주여행

<우주의 삼차원> 1부 제1우주. 5장

 센터의 의미 없는 달력은 2999년 12월 1일을 가리키고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지난 사흘 동안 내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조용히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나는 오늘 우주여행을 떠난다.


 리나 센터장에게서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서 근무 첫날부터 우주로 나가라고? 아, 어떡하지. 나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때 옆에 있던 카이가 물었다.


 "토미야, 그건 뭐야?"

 "뭐가?"


 나는 되물었다. 카이는 눈짓으로 내 오른 손목에 있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오늘따라 유난히 빛났다.


 "아, 이거 내 팔찌야."


 '목걸이'라는 말이 턱끝까지 나왔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미랑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아하, 그렇구나. 되게 빛나길래 신기해서 물어봤어.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것 같아. 멋지다."


 나는 살짝 웃어 보이고 오른팔을 내렸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방을 나서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리라고 해요. 토미 씨 맞으시죠?"


 제리라는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키가 크고 갈색 머리를 한 청년이었다. 갈색 정장에다가 옥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안경 때문에 그의 조그만 눈이 더 작아 보였다. 꽤나 갑갑해 보였다.


 "네, 저는 토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이가 말했다.


 "제리 형, 토미는 나와 동갑이야. 어제 우연히 만나서 벌써 친해졌어!"

 "그렇구나. 첫날부터 임무를 맡게 되어서 당황스러우실 텐데.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물어봐요, 토미 씨."

 

 제리는 내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의 구두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제리 형은 여기에서 인정받는 엔지니어야. 나보다 한참 선배지만 내가 자꾸 말을 걸어서 친해졌어."

 

 제리의 등을 보고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카이가 말했다.


 "그리고 저 형, 처음에는 좀 딱딱해도 마음은 여린 사람이니까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제리를 경계하는 것을 들켰나 보다. 낯선 곳의 낯선 사람은 나를 돌처럼 굳게 만든다. 게다가 정장, 구두, 넥타이, 그리고 안경의 조합에서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져 조금 두려웠다.


 얼마 후 카이, 제리와 함께 우주선에 탑승했다. 어제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조금씩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처음 떠나보는 우주여행에 두렵고 설레기도 하여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출발하기 직전 누군가 우주선에 탑승했다. 리나 센터장이었다.


 "센터장님!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저희 곧 출발해요!"


 카이가 외쳤다. 하지만 리나 센터장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저도 같이 갈 거랍니다. 자, 출발하시죠!"


 카이와 나는 동그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우주선이 힘차게 출발했다.


 두근거렸다. 눈이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사람이 아니라 천장이 보였다. 나는 어디일까.


 "센터장님, 토미가 일어났어요! 토미야, 괜찮아?"


 카이가 내게 달려오며 말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어라, 내가 왜 누워 있었지? 여기는 어디야?"

 "이제 곧 우리 은하를 벗어날 거예요! 토미 양, 괜찮아요?"


 아, 맞다. 우주여행 중이었지.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혹시 우주여행이 처음이신가요?"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리였다.


 "아, 네."

 "첫 여행에 이 정도 속도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잠시 기절한 모양이네요. 다른 센터들은 이만큼 빠른 우주선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곧 익숙해지실 거예요."


 출발하자마자 눈이 감긴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아무래도 기절한 모양이다. 가을 센터에서 했던 우주 훈련은 실전에서 아무 의미 없었. 가을 센터장 아저씨가 훈련은 뒤로 미루고 공부만 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여러분, 이 쪽으로 모두 와 보실래요?"


 줄곧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있던 리나 센터장이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휴게실을 나서서 조종실로 뛰어갔다.


 거기에는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멋지네요, 언제 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안드로메다 은하입니다. 정말 아름답죠!"


 새까만 배경을 듬성듬성 채운 별들 사이의 커다란 보랏빛 은하. 나선형으로 뻗은 가늘고도 긴 팔은 주변 별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노랗게 빛나는 은하핵은 특유의 찬란함을 방출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우리 은하를 벗어났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내 눈앞에 안드로메다 은하가 보였다. 고개를 돌려 뒤쪽 창문을 보니 막대나선은하가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은하였다.


 "슬프지만 미래에는 이 아름다운 두 은하 모두 못 보게 될 겁니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가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죠."


 제리가 조종을 하며 말했다.


 "형, 그게 정말이야?"

 "제리 님, 이 좋은 광경을 두고 그런 말을 하시면 어떡해요!"


 리나 센터장은 충격을 받은 카이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제리는 뒤이어 말했다.


 "충돌하려면 아직 몇십 억 년은 남았습니다."

 "에이 뭐야, 깜짝 놀랐잖아! 형도 참."

 "그때쯤이면 지구는 사라진 지 오래겠죠. 인간은 물론이고."


 제리가 조종석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제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정장 재킷을 정리했다. 그는 조종실을 나가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우리가 곧 새로운 지구를 찾을 것 같습니다."


 제리의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조종실에 남은 세 명에게 안드로메다 은하는 더 이상 아름답기만 한 광경이 아니었다. 나의 첫 우주여행에 자꾸만 찬물을 끼얹는 제리가 불편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깬 것은 리나 센터장이었다. 그녀가 자신 있게 말했다.


 "당연하죠! 우리가 새로운 고향을 찾을 거예요. 지금 우주여행을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죠."

 "네, 맞아요!"


 카이도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를 감쌌던 불안과 무기력이 설렘과 기대로 변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다. 십 년 동안 가을 센터에 살았던 때와 전혀 다른 내가 된 것 같았다. 나도 어느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 참, 토미 씨! 우주여행이 처음이라고 했죠?"


 리나 센터장이 내게 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노란 귀걸이와 함께 반짝였다.

 

 "네, 처음이에요."

 "부럽다, 토미야. 오늘이 최고의 날이 될 거야."


 뭔가 알고 있는 듯이 카이가 말했다.

 불한 예감이 다시 조금씩 올라오려고 한 그때, 카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내 팔을 살짝 잡아당기며 나를 조종석으로 앉혔다.


 리나 센터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활기차게 외쳤다.


 "좋아요! 같이 조종해 보는 거예요, 토미 씨!"

 "네? 제가 조종을 어떻게..."

 "걱정 마, 토미야. 할 수 있어!"


 옆을 보니 나를 가운데에 두고 어느새 리나 센터장과 카이가 앉아있었다. 리나 센터장이 내 오른손을 잡아 조종 스틱으로 끌어당겼다.


 "자, 갑니다! 더 빠르게!"


 리나 센터장은 내 오른손을 움켜쥐며 조종 스틱을 당겼다.


 "으앗!"


 처음 느끼는 속도감에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 나의 왼손을 꽉 잡았다.

 카이였다.


 "꽉 잡아!"


  나의 세상은 별들의 환한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전 04화 겨울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