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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유민 Oct 14. 2024

메이그린, 토미

<우주의 삼차원> 2부 제2우주. 1장

 "메이그린 님, 곧 회의에 참석하실 시간입니다."

 

 켄은 회의 자료를 주며 말했다.


 "네, 나갈게요. 고마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속 갑옷을 꺼내 어깨에 둘렀다. 전신 거울 속 나는 참 거대했다. 고강도 단열 소재로 만든 갑옷은 여린 몸을 숨기는 데 적합했다.


 방문을 열자 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갔다. 바깥공기에 가까워질수록 갑옷 속 몸이 조금씩 떨렸다. 회의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손끝이 얼어있었다. 켄은 회의실 문을 열었다.


 "메이그린 님이 들어오십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들은 얇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몇몇은 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쓴 채 몸을 떨었다. 나는 가장 가운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우리 제2우주의 기온이 나날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평균 기온은 적정 기온 5도보다 한참 낮은 영하 10도를 기록했습니다. 이상 기온 현상이 발생한 지 여섯 달 만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낮아질지 모릅니다."


 환경부 캡틴이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제는 정말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건 이상 기온 현상으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제2우주는 계속해서 더 추워질 것이고, 우리도 머지않아 제1우주처럼 종말할 수도 있어요!"


 복지부 캡틴의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내가 말했다.


 "제1우주는 종말하지 않았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기술부 캡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후한랭화에 맞서 진행하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들도 조금씩 빈틈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는 시간보다 더 빨리 기온이 하강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메이그린 님,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의 마지막 희망은..."

 "또 그 소리 하시려고 합니까?"


 고용부 캡틴이 기술부 캡틴의 말을 끊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누가 그 프로젝트에 지원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제3우주에 가라고요? 그건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어떻게든 이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제1우주는 우리보다 가망이 없고, 남은 것은 제3우주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빨리 연구를 시작해야..."


 "네, 알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더 이상 그들의 언쟁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번 주 안에 제가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그때까지 각 부서 캡틴 여러분들은 현 정책을 잘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켄이 뒤따라왔다. 그가 말했다.


 "메이그린 님, 이번 주는 무리입니다. 저희도 시간이 필요..."

 "알아요. 나도 안다고요."


 나는 계단을 올라 방문을 쾅 닫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무거운 몸을 침대로 보내 눈을 감았다.




 제1우주를 떠나 제2우주로 넘어온 첫날이 떠올랐다. 불타기 일보 직전인 지구에서는 도저히 삶을 이어갈 수 없었다. 우주 연구팀 사람들과 비밀리에 진행했던 평행우주 찾기 프로젝트가 우연히 성공할 줄은 몰랐다. 아니,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평행우주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제1우주는 여러 별들의 집합체이지만, 여기는 정반대다. 이 우주는 스스로 빛을 내는 오직 하나의 , 그 자체다. 내가 이전에 살던 우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평행우주" 대신 "제2우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어떤 점은 제1우주의 지구와 굉장히 닮았다. 제2우주는 지구의 시간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여기 인류도 지구의 인류와 비슷한 생활을 한다. 다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사계절이 있었던 지구에 반해, 제2우주는 계절 없이 평균 기온 5도를 내내 유지하는 추운 곳이다. 하지만 여기 인류는 원래부터 이 온도에서 살았기 때문에 추위에 강하다. 그들의 피부는 추운 기온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특이한 장벽을 갖고 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로 향했다. 나는 태연하게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켄이었다.


 "메이그린 님, 제1우주에서 제2우주로 차원문을 통과한 생명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보나 마나 우리 연구팀 일원이겠죠. 내버려 두세요."

 "저, 그게 아니라..."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팔짱을 풀고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그들 신원이 파악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제1우주 인류인 것 같습니다."

 "네?"


 지금까지 제1우주에서 제2우주로 오는 차원문을 통과한 이들은 십오 년 전 나를 포함한 우리 연구팀뿐이었다. 우주 간 차원문은 아무나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오 년 전에는 내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게다가 네 명이나 됩니다."

 "네 명이라고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충격적이었다. 말도 안 돼, 무슨 일이지? 제1우주에서 제2우주로 넘어올 수 있는 자가 나 말고 또 있단 말인가.


 나는 서둘러 책장을 뒤졌다. 수많은 책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주의 삼차원"이라는 제목이 유독 빛났다. 나는 그 책을 꺼내 후다닥 펼쳤다.


 "우주의 차원문은 두 개 존재한다."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소리 내 읽었다.


 "제1우주와 제2우주, 그리고 제2우주와 제3우주를 연결하는 차원문이 있다. 각 차원문을 통과하려면 가고자 하는 우주에서 생성된 물질 또는 그 우주의 생명체가 필요하다."


 그렇다. 제1우주에서 제2우주로의 차원문은 제2우주에서 만들어진 물질 또는 제2우주 인류만이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단, 특수인류의 혈통은 모든 차원문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그린즈'라고 부른다."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이름을 지었길래 '그린즈'라고 했는지. 그래도 '메이그린'을 떠올릴 만하겠다.


 나, 메이그린은 세 개의 우주에서 최초로 발견된 특수인류다. 십오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내가 지구에서 살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우주 연구팀과 함께 비밀리에 우주여행을 나갔다. 그때 정체 모를 차원문을 발견했고, 우리 우주선은 그 문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눈을 떠보니 우리는 다른 세상에 와 있었고, 여기 인류는 이곳을 제2우주라고 불렀다. 그들은 매우 뛰어난 신체 감각을 갖고 있어 이 거대한 세상이 세 개의 우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몸의 털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세 개의 우주 인류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제1우주에서 여기로 들어왔을 때 나를 경계 대상으로 잡아갔다.


 하지만 우리 연구 팀 일원 중 제2우주 인류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고 어떻게 차원문을 통과했는지가 미지수였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를 대상으로 온갖 검사를 했고 그 결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제1우주 인류가 제2우주로 향하는 차원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내가 바로 특수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특수인류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또 그것이 나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내 정체를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에 그들은 나를 제2우주의 캡틴으로 세웠다. 그리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다. 내 인생은 우연 같은 운명으로 인해 완전히 바뀌었다.


 "특수인류의 혈통..."


 글자를 쓸어내리던 검지 손가락이 멈췄다. 나의 혈통이라.


 "그린즈의 능력은 성인이 되고 나서 발현된다. 성인 이전에는 그린즈의 힘만으로 차원문을 통과할 수 없다."


 태어나고 19년이 완전히 지난날부터 그린즈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책을 덮었다.


 "2981년 1월 1일..."


 잊고 있었던 날짜가 생각났다. 오늘은 2999년 12월 7일. 아직 19년이 지나지 않았을 텐데. 머리가 하얘졌다.


 "똑똑."


 그때 또 다른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켄과 네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노란 원피스의 여자, 갈색 정장의 남자, 해맑아 보이는 어린 남자, 그리고 그 옆의 앳되어 보이는 여자.


 마지막으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여자의 팔찌였다.


 아니, 목걸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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