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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22. 2022

사랑의 온도차

내 사랑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2년여 만의 연애였다.


 최악이라 여겼던 직전의 연애 후, 이젠 정말 신중하게 사람을 만나겠단 야심 찬 다짐과 함께 솔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쉴 틈 없이 연애하던 20대 때와 달리, 이젠 정말 남녀가 많이 모이는 곳에 굳이 나를 쑤셔 넣지 않는 이상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었으므로, 반은 내 의지로, 반은 강제인 솔로였다. 주변엔 다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데 나만 혼자인 게 좀 억울하기도 하면서,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기엔 대시해 오는 이성이 너무 개차반인 관계로 굳이 사람을 만나야겠단 생각 없이 나름대로 혼자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 시기에 다가온 사람들은 누가 봐도 별로인 센스 꽝에 눈치 제로였고 그런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오빠에게 받은 소개로 오랜만에 연애를 하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나에게 온 관심을 쏟는 사람을 만나니 죽었다 생각했던 연애세포도 살아나고 내가 이렇게 부드러웠나 싶을 정도로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였다. 이 애틋한 기분을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무드가 깨져버렸다. 만난 지 사십여 일이 되던 날, 나를 데리러 온 그의 모습은 면도도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했고, 괴상한 모자에 괴상한 차림이었다. 말 그대로 '갑자기'였다.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익숙해져서 온 편안함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그 혼자 편해진 것이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 뭐, 귀찮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해진 건 그의 차림뿐이 아니었다. 항상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지던 그는 자기 이야기하기 바빴고 대화를 하다 뜬금없는 단어를 남발하거나 나와의 약속도 쉽게 잊기 시작했다. 편해져서 그렇다기엔 나와 속도가 너무나 달랐다. 마치 3년은 만난 듯한 태도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나는 아직 그를 잘 알지 못했고, 그와 함께하며 알아가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그는 나에 대해 다 안다 생각했고 당연히 함께하는 존재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와 이 문제에 대해 하루는 진지하게 대화를 했고 우리 사이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는 듯보였다. 그러나 이틀 뒤, 또다시 그는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고 나는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초 감정적인 여자가 되어버렸다. 이성적이라고 자부했던 내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감정의 널뛰기를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섬세하고 예민한 나에 비해 그는 감각만 섬세하고 예민할 뿐 정서는 너무나 무뎠다. 생각 없이 말을 뱉기 일쑤였고 점점 그의 의미 없는 말이 듣기 싫어졌다. 생각 없이 뱉은 말은 감정을 상하게 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앵무새처럼 해명할 말을 왜 그렇게 툭툭 뱉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끓어오르는 화를 잠재웠다.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쓸데 있는 대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와 사귀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던 그는 나와 사귄 지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고려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처럼 나를 알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이 모든 걸 감내하기에 내 사랑은 말 그대로 두 달짜리였다. 더 이상의 감정 소모도 하기 싫었고 말하기도 입이 아파 꾹 다물어버렸다. 그의 헛소리가 시작되면 말없이 미소를 짓게 되었다. 배려 없는 대화 속에 우리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 되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속상했다. 간만의 연앤데 또다시 이별이라는 결말이라니, 정말 이번만은 잘해보고 싶었는데, 내 사랑은 왜 이런 것일까. 평범한 대화, 평범한 배려,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나에게 또다시 사랑이 찾아올까.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한 친구 같은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좀 두려워지려고 한다. 남자 보는 눈이 없다고 했던 전 남자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물론 그 말을 내게 한 전 남자 친구도 결국 보는 눈 없어서 만난 X가 되었단 게 웃음 포인트다.) 정말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나이가 들 수록 멀쩡한 솔로를 찾기 어려운 걸까. 어릴 땐 꽤나 당연하게 이어가던 사랑이 나이가 드니 왜 이렇게 이어나가기 어려운 것인지 속상하다. 내가 바라는 건 지극히 평범한 대화인데, 직업이나 돈 따위가 아닌데, 생각이 많은 밤이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 차근차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데 이제 그만 쌓고 성공하고 싶다. 작고 반짝이는 윤슬 같은 사랑이여,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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