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무얼 했냐고 물으면 쌍권총을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대답하던 지인들이 있었다. TV 리모콘 하나와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비디오플레이어 리모콘 하나가 권총 두 개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주말을 지켜주었었다. 우리 집에도 그 쌍권총이 있었지만 그때 TV의 어떤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아파트 단지나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어떤 비디오 테이프를 대여해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물가물한 기억은 동토의 땅에서 무궁화 위성으로 열심히 보던 20세기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이나, 적도를 건너가 발 디뎠던 도시의, 건강식품 가게를 겸한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머문다. 조립한 이케아 하늘색 소파 위에서 시한부 인생을 맞는 도로 위의 주인공을 보며 크리넥스를 여러 장 뽑아 서로에게 주었었지 ……
귀국 후의 드라마는 ‘미생’과 ‘응답하라 1988’ 두 편이다. ‘미생’은 역시 가족이 모여서 정주행했는데 남편이 특히 더 공감하였고, ‘응답하라 1988’은 주말을 기다리며 한 회씩 보았고 시험을 준비 중이던 큰아이는 나중에 몰아보았다고 한다.
그가 TV 리모콘을 잡으면 ADHD가 아닌가 하여 불안해진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리모콘으로 1번부터 몇 번까지인지 숫자가 큰 쪽 위로 올리며 돌리다가, 또 아래로 내려오며 돌리기를 두세 번 하면
“하나를 정해서 보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곤 했는데, 짜증을 눈치 챈 그가 어느 날
“자기가 한 번 찾아서 봅시다.”
한다.
그런데 웬걸? 보자고 멈출 만한 채널이 없다. 그의 눈과 손목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방송 프로그램이다. 채널 수만 많을 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나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높으나 어두운 스토리와 이미지로 가득한 화면 보는 것을 즐기지 않기에 머물 수 있는 화면이 없었다. 결국 내 시선과 손목도 바쁘고 불안하게 채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그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료 사이트에서 선택한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우리는 독립투사가 되었다. 시력이 좋은 그는 군대에서 특등 사격수였단다. 지금은 한쪽 눈의 시력이 나빠졌지만 그 덕분에 한쪽 눈은 먼 곳을, 한쪽 눈은 가까운 곳을 잘 볼 수 있으며 실력은 녹슬지 않았을 거라며 나라와 민족을, 아니 온 우주를 지킬 태세를 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커서 사회인이 된 아이들이 이제는 같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기죽지 않는다. 나 역시 만만치 않다. 한복을 입고 넓은 치맛자락 휘날리면서, 혹은 남자의 양복차림을 하고 장총을 든 채 지붕 위를 날아다닌다.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악한 자들은 물러가라~!!“
회차를 거듭하면서 다른 인물들에게도 몰입돼서 ’운명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인가?‘ 물으며 이 나이 돼서야 철학을 한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고 매국노의 딸로 태어나는 것을 누가 선택하겠는가? 작금의 상황과 시대에 우리는 정의의 편에 설 것임을 짐작하며 서로 바리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대는 그대의 길을 걸어가시오.“
드라마를 본 후 청결 활동과 점검을 위해 양쪽의 욕실로 가면서 가능한 뒤는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든다. 그런데 드라마 보는 내내 지압 슬리퍼를 신고 서 있던 그가 앞으로 기우뚱하며 소리를 낸다.
”아~ㅅ“
”괜찮소,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시오.“
지압 슬리퍼만 신고 서 있는 게 아니라 턱을 들고 무릎 위치를 고정하며 의자 없이 의자에 앉은 자세와 서기를 반복하여, 드라마 보기와 운동을 병행하는, 멀티플레이어의 길을 가는 그는 또 말한다.
”나는 그대보다 좀 앞에 서서 가겠소, 할 일이 많소.“
”내일 아침, 가배(커피)는 내가 준비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