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거사 연대기: 이동수단 편

by 크리스틴

운전 경력 수십 년째이지만 그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목적지가 멀 경우는 가능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저기 도보로 걸어다니며 세상을 헤집고, 기차로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음악을 듣다보면 슈~ㅇ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 자신은 탐구와 사색의 시간이라고 한다. 걸으면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구상되고 기차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거주 지역에 따라 좌우의 핸들을 번갈아 다루었음에도 상대편 과실의 접촉사고 2회만이 기억에 남는다. 한 번은 시드니 하버브리지에서였는데 큰 사고가 아니어서 바다를 바라보며 뒷차 운전자와 잠시 대화하는 사이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했다. 깔끔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매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좋으나 뭐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클락션만 자주 울리지 않으면 좋은 운전자인 그는 이전부터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티셔츠가 흥건히 젖은 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자주 만나게 된다. 한번은 둘레길에서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찾는, 시력이 좋지 않은 젊은이를 만났더란다. 근처를 지나던 남자분이 “무얼 잃어 버렸나?”고 물으며 근처의 화장실을 뒤졌고, 그는 예리한 시력으로 좌우 길을 살펴 열쇠 꾸러미를 찾아 주었단다.

“감사합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라는 젊은이의 말뜻은 모르겠지만 은인이 되었다며 웃음이 가득했다.


많은 항공편과 기차편을 이용했으나 또렷이 보이고 들리는 것 같은 기억의 파편은 러시아에서의 것들이다.

네 명으로 완성된 가족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VVO에서 하바롭스크에 갔던 것은 특별하다. 출발 시간이 몇 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석양 무렵에 탄 기차는 달리고 달리고 한참을 달려도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다고 했고, 아침이 되어서야 하바롭스크에 닿았었다. 자도 자도 끝없이 펼쳐지던 대륙의 풍경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도 긴 시간이었는데 16 시간이나 기차를 타다니! (여행 블로그에 따라서는 14시간이라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간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20 세기 그 시절엔 정말 꼬박 16시간이었던 것 같다.) 기차에서 밤새 뒤척이던 그때의 용감한 가족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전쟁으로 예전보다 훨씬 접근이 어렵지만 모스크바까지 200 시간 대륙횡단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분들에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다음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이다. 시베리아로 출장을 갔다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로 한 날이었다.

“오늘 비행기를 못 탑니다.”

“왜요?” “일이 안 끝났어요?”

“지금 공항인데 비행기가 안 뜬데요.”

“비행기에 문제가 있대요?”

“ 아니요, 연료가 없대요. 연료를 싣고 와서 넣어야 이륙할 수 있대요.” ……

공항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추위에 떨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고 모르지만,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수화기를 보면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러시아 항공기인 아에로플루트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갔을 때 일이다. VVO에는 마땅히 옷을 사입을 곳이 없어서 굼 백화점이나 후따라야 레치카 바자르를 도는 것이 거의 헛수고였다. 어차피 질이 낮은 옷을 사기보다는 세련된 문명의 거리에 가서 쇼핑의 욕구를 맘껏 펼칠 계획이었다. 아에로플루트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했을 때 승객들은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쳤는데 러시아 비행기가 가끔 떨어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살아서 하늘을 날아 도착했다는 것에 모두들 기뻐하고 감사해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가려는 데, 자주 보던 러시아 군복과 비슷한 제복을 입은 큰 체격의 여자가 우리 가족을 한쪽에 세우며 기다리게 했다. 그리곤 다른 이들이 다 내린 후에 “무엇 때문에 독일에 입국하려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우리는 뒤늦은 휴가 일정으로 여행을 왔다고 대답하며, 아마도 해맑은 눈으로 어리둥절해 했을 것이다. 그녀와 동료가 여권을 샅샅이 살펴 남편의 미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후에야 약 30 분 정도의 억류(?)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좋은 시간 보내라면서 배웅해 주었다. 우리가 즉시 깨달은 바로는 낡고 초라한 행색의, 아이를 포함한 가족이 수상해 보였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가 될까 봐 불러세워 수색을 했던 것이다. 아이참~ 그렇게 말이 아닌 모습이었던가? 우리는 곧장 프랑크푸르트의 중앙역 근처로 가서 깨끗한 옷을 사 입고 즐거운 여정을 보냈는데, 지금도 그때의 30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가족을 데리고 몇 개의 대륙을 누비고 다니던 그가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손짓하며 와 보란다. “마술을 보여드립니다, 하하하.” 어르신 교통카드를 찍으며 그가 호기롭게 걸어간다. “난 이제 지하철 더 많이 탈 겁니다.”

가지고 싶던 비싼 자전거 대신 사서 꽤 오랫동안 타다가 앞 발코니에 둔 소형의 오렌지색 자전거가 떠올라 쬐금 맘이 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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