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long have you...

그, 몇 살이세요?

by 오아린

첫째 때 못 해봤던 유치원 엄마들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장소는 주차 아홉 대가 가능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 아마 대화 주제는 유치원 내 분위기, 자녀의 발달 사항, 사교육 정보, 그리고 더 이야기할 내용이 없으면 엄마에 대한 것일까.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되어 아이들 이야기로 끝나는 매니저들끼리의 대화 자리가 싫었다. 이왕 어른끼리 만났으면 누구의 엄마로 통성명 되는 것보다, 엄마 자신의 이름과 소개가 먼저 되는 게 좋았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아이들 얼굴 말고 본인임을 알 수 있는 본인 등판 이미지가 제일 알기가 쉽다. 아이=나는 아니고, 엄마라 해서 아이만 키우는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찐 아줌마의 대명사, 꽃 사진이 차라리 더 명확하다. '저는 꽃을 좋아해요.'가 어필되므로 최소 꽃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내 요즘 카톡 대문 사진은 산 정상에 올라 정경을 보고 있는 뒷모습이다.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11월의 가을 끝자락을 어떻게라도 만끽하고 싶어 기어가듯 올랐던 바위 가득했던 산꼭대기였다. 첫째 아이의 엄마들 프로필을 보면 이제 아이들 얼굴을 내건 경우는 거의 없다. 곧 사춘기이거나 이미 그 시기인 자녀들 초상권을 구하는 게 예전보다 쉽지 않을 뿐더러, '아이=나'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본인의 일이나 취미에 관심을 쏟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향한 꿈과 희망에 젖어있기보다 나를 위한 시간과 가치를 좇는 주변 엄마들이 많은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더 빨리 아이에게서 (역으로) 자립할 수 있었다. 만학도의 기분으로 후레시맨들 사이에 끼어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인데 엄하게 대한다는 선생님 이야기(험담이다), 하원 스케줄 조정을 기사님에게 허락받아야 한다는 고충(험담이지), 학원 체인점인데 우리 동네는 상대적으로 별로라는 아쉬움(험담같고), 우리 애는 숙제 준비할 때마다 울고 힘들어한다는 고민(험담인가). 대화의 빈틈을 찾아 흐름을 끊고 싶었다. 나는 원초적이고도 한국적인 질문을 골랐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 질문이 결례가 되는 국가도 있단다. Why not? 되레 묻고 싶다. 나이를 모른 채 대화의 기준을 잡을 수 있는 걸까. 그것은 오히려 자기중심적으로 대화를 하겠다는 태도다. 일시적인 만남에 거국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상대방의 세대를 알고 싶은 것은 그만큼 더 친밀하게 소통하고 싶은 배려다. 태어난 연도의 앞자리만 바뀌어도 대화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최소 한국인들은 알고 있다. 나는 80년대생이고 90년대생과 대화를 시작할 때 90년대 이후의 감성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한다. 70년대 언니 오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내가 모르는 그들의 문화를 살펴 듣기 위해 안테나 한두 개 정도 더 펼쳐본다. 80년대생끼리는 대충 말해도 눈매와 입꼬리로 통하는 You know식 공감대가 이미 깔려있다.

첫째 아이 나이가 고학년인데 유치원에 입학한 둘째 아이의 학부모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 자녀 교육을 시작한 90년대생 엄마들에게 현실 고증 가득 담아 찬물 끼얹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한글을 어떻게 떼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꽃이 피고 있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선배 맘의 조언을 새겨듣는 시간은 공기의 질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믿기지 않는 내 전생의 이야기를 듣는 만큼, 흥미가 없지 않은 척 들어주는 것 또한 매너이리라. 보살님들이 고통의 굴레 속에서 고민과 험담을 늘어놓을 때 온화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스님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을까. 잠시 딴생각으로 나만의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아린 씨 몇 살이에요?"

첫 배드민턴 대회 제안을 하기 위해 클럽 회장이 물어본 말이었다. 40대 초반인 나는 40대 중반인 파트너 언니와 한 팀이 되어 초심자로 지원했었다. 대회 전날 연습 중에 발을 접질려 결국 참가는 못 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절뚝거리며 경기장에 구경하러 갔었다. 보통 대회는 양일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날은 초심자들만 모아서 경기를 하고 뒷날은 나머지 급수들이 대상이다.


나이와 실력은 별개 아닌가 싶었는데 나이가 실력이 되는 연령대도 있었다. 20대는 초심 코스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약간 반감이 생길 수 있겠으나, 현장을 가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초심자라도 20대는 모두가 선수처럼 보였다. 50대와 60대는 큰 움직임 대신 노련하고 센스 있게 움직여 배울 점이 많았다.


초심자는 알파벳으로 E등급으로 칭한다. 대회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해서 승급이 되면 차례대로 D, C, B, A등급으로 올라간다. 접수를 받을 때부터 20대는 D, C, B, A 중에 선택하여 지원하고, 30대부터 60대는 E, D, C, B, A 중에 고른다.


그러니까, 배드민턴 세계에서는 게임에 참여하려면 급수와 나이를 확인하기 마련이다.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가 결례가 아니라 Can I join you? 의 다른 표현이다. 가끔 E라고 해놓고 D 같은 사람도 있다. 초심자는 길어도 1년 반 정도의 구력 안에서 말하는 바닥 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이 넘도록 승급 기회가 없어 실력이 D에 가깝게 올라간 초심자도 있었던 것. 알고 보니 그랬구나! 내가 괜히 지는 게 아니었네라고 납득하는 것은 재미있게도 '빠른 OO년생'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동갑인데도 약간 언니 같았는데 '빠른'이었구나,라고 생각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듯 하다.


20, 30대와 50, 60대 사이에 낀 40대는 불혹에 더해 중용의 마음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중간 정도의 체력에 중간 정도의 열정. 한번 경험한 자로서 부상만 조심하면 맘껏 즐길 수 있는 잔치와도 같은 대회였다. 처음에 나를 30대로 착각한 분은, 배드민턴하면 진짜 재밌을 거라고 내내 추천하다가 후에 내가 40대인 것을 알고는 무릎 조심하고 부상 없이 안전하게 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40대에 그것도 취미로 하는 운동에 열정을 남발하면 부상이라는 회초리에 맞는 것이다. 적당히 몸에 눈치 보면서 하라고. 알았다고 이제. 그래서 밀당도 가능해진 배드민턴이었다.


"혼복이요? 저는 대회 경험이 없는데요."

"괜찮습니다."(내가 잘하니까 다 커버 가능할 듯)

"30대 아니세요? 저는 40대예요."(거절한다)

"괜찮아요. 30대로 지원하면 되지요."(누님이었구나)

"(손으로 대문자 엑스) 저는 자신이 없어요."(다시 한번 더 거절한다)


그렇게 실력 좋은 초심의 광기남은 본인 나이만 생각해서인지, 40대의 체력과 중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 몇 번 더 제안하더니 결국 다른 30대 파트너를 찾아 신나게 대회를 즐기고 왔다고 한다. 상대 팀 여자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스매시 공격을 해서 쉽게 점수를 올렸다는 후문. 무자비하다 생각되었지만 역시 대회에서는 봐주기 따위 없으니까. 나는 체력 좋았던 30대에 운동 같은 걸 흉내도 안 내고 뭐 했는지 생각에 생각을 더해본다. 나중에 광기남의 아내가 알려줬다. 평소에 아린님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좋게 본 것 같다고. 역시, 배친자는 배친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자녀 교육에 고민이 많은 90년대생들에게 광기의 80년대생 만학도맘이 떠나기 전에 제안한다.

"집에서 아이들 서포트해주고 싶으면 엄마들도 모여서 영어 스터디 할까요?"(앉아서 걱정만 하지 말고)

"모인 김에 하나 만들어 봅시다."(아이와 학원에만 바라면 안 된다고)

"어때요?"(엄마부터 배우자)


젊은 엄마들에게 또 보자고 인사하고, 나는 과외수업과 번역 일이 있어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고 이달 말에 열리는 지역대회에

다시 첫 마음으로 지원했다.

끼인 나이에 초심으로 운동하는 아줌마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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