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줄지어 생긴다

뭘 구경하고 있어

by 오아린

나는 엄마다.

첫째 아이를 외동으로 키우려고 했던 칠 년 정도는 부모라는 역할을 가끔 벗어나 보려고 시도했던 적도 꽤 있었다.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마음 편히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다든가. 아들의 정서는 아빠의 몫이라고 생각해 애가 놀아달라고 할 때면 늘 남편을 찾는다든가. 그게 아이가 하나일 때는 가능했다. 당시에 30대였으므로, 혼기가 늦춰진 이 시대에 어울릴만한 질문인 결혼하셨냐는 물음이 흔하면서도 반가웠고,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대답할 때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늘 놀란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젊은 엄마에 속했고, 외동맘이라 조금만 용기를 내면 뭐든 가능했었다. 아이를 재우고 남은 체력으로 새벽까지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침 9시에 등원시키고 오후 4시에 하원하는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며, 남은 시간은 자기 계발을 했다. 나는 아이가 하나였던 7년간, 엄마의 역할을 적당히 수행하며 적당히 행복했고 적당한 피곤함을 감당하며 살았었다. 틈틈이 생기는 여유마다 나의 행적을,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조하거나 관망할 수 있었다.


나는 둘째를 낳고나서 조금 더 우직한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결혼하셨냐고 묻지 않는다. 아이가 둘 있다는 자기소개보다, 아들이 둘 있다는 멘트를 강조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들 둘 키우는 번잡함을 아는 자 나와 연대하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들 하나는 작은 사건이라고 친다면, 아들 둘은 중대한 사건이다. 이제 혼자서 아이 둘 손 잡고 집을 나서기도 버거우므로 친정 부모님께 맡기는 일도 없어졌다. 취향과 기질이 정반대인 두 아이를 챙기는 일은 온전히 내 시간을 할애해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게 되었다. 덧붙여, 빼놓고 생각하기 섭섭할 만큼 활발한 남편 또한 (시어머니의) '아들'이므로, 나는 아들 세 명과 함께 큰 사건의 연속선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엄마가 되었다. 방관하지 않으면 모를까 이제 여유라는 것은 증발하고 없다.


둘째가 기어다니던 시절 멘붕이었던 밤이 떠오른다.

아기가 장염에 걸려 돌아서면 기저귀를 갈던 날. 피부가 헐지 않도록 기저귀 교환대에 눕혀 똥 기저귀를 치우고 있는데 다른 방에서 숙제하던 첫째가 갑자기 코피를 쏟으며 달려왔다. 피에 놀랐지만 버둥거리는 아기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는 큰일이라고 판단했다. 아기를 안전한 곳에 눕혀놓고, 첫째의 코를 막아줬고, 그다음 둘째의 엉덩이도 마저 감싸주었다. 수도 없이 손을 씻다 손빨래가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기록으로 남기기에도 사소한 사건들. 예측불가능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이런 날 유독 지쳤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 남편이 보고 싶었다. 그날따라 연락도 없이 늦었는데, 집에 오지를 않고 자정이 다 되어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들으라는 남편의 목소리에 심장이 두 배로 커졌다. 사건의 연속, 오늘은 이것이 종점이라 예상했다. 일하다 손가락을 다쳐 긴급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 숨 돌릴까 하면 다음, 다음, 또 다음의 연속.



인생은 고통이라 했던가.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놓치고 말지만 분명 있었을 즐거움, 깨달음, 희열, 감사 그런 삶의 연료 덕이다. (앞 세 문단의 글에서도 나는 놓치고 말았다)


사건의 연속은 배드민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놈 해결하고 끝.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놈 해결할 때 다음 놈 오는 것까지 생각해서, 치고 바로 준비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공식이다. 한 사람이 연속해서 공격을 때릴 수도 있고, 계속해서 수비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가 랠리를 할 때 내가 넋 놓고 구경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재차 말하지만, 여유는 없다. 파트너에게 공이 올 때마다 내 발도 바닥에 완전히 붙여놓지 말고 어디든 튀어 나갈 흐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초심자들이 주로 하는 실수가 가만히 보고 있다가 공을 놓친다는 점이다.(구경은 금물) 그 공은 네트 가까이로 짧게 떨어질 때도 있고 머리 뒤로 한참이나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맡은 반코트의 중간 지점만 잘 찾아가 있으면 짧은 공이나 긴 공 모두 큰 스텝으로 커버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공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파트너 공인지 내공인지 애매할 때는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보고 빠르게 정해서 외쳐야 한다. "마이!"라고. 내가 해결할게! 하면 파트너는 비는 공간을 찾아서 다음 콕에 대한 대비를 해준다. 동호인으로서 다행인 것은 단식이 아닌 복식으로 게임을 한다는 점. 함께 싸우니 든든하다.


인생에서 겪는 연속성이 배드민턴에서도 이어진다.

긴장-안도-공격-수비-성공-실패-격려...(이하 생략)


그래도 놓치는 공이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미해결 사건이다.

그러나 분명, 실패를 통해 배우는 점은 있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장르를 불문하므로.


요오-넥-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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