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작작 쿵다다닥

더 가야지 아니 덜 가야지

by 오아린

무슨 일이든 평균치를 넘기 위해서는 기본 자질에 한 두 스푼의 소양이 더 필요한 법이다.


모든 운동에 있어서 기본 자질은 무엇일까. 평균 이상의 체력, 평균 이상의 운동 신경이 먼저 떠오르긴 하나, 뭐니 뭐니 해도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자질이 부족한 내 경우는, 레슨을 받기 전에 게임 몇 판을 뛰고 오면 10분간 이뤄지는 고강도 수업 중에 손사래를 치며 흐름을 끊거나 몸을 기역자로 구부려 허락 없이 자체 휴식을 취하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선수 출신 코치님은 나를 정말 의아한 표정으로 살핀다.


국가대표들이 평소에 훈련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대표들의 종목을 알고 봐서였는지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의외였다. 가령, 스피드 스케이트의 여왕 이상화 선수가 얼음판이 아닌 체육관에서 허벅지에 밴드를 걸고 런지 자세로 운동하는 모습이라든지, 배드민턴의 신 안세영 선수가 마루 코트가 아닌 씨름판 모래밭에서 허리에 밴드를 착용한 채 날아오는 공을 받으려 애쓰는 장면이었다. 왜 저들은 홈그라운드가 아닌 다른 바닥에서 몸을 혹사시키는가. 의문이 들었다.


가까운 동네지인만 해도 그랬다. 산이 좋아서 이 산 저 산 봉우리에 오르며 도장 깨기를 하는 친구는, 등산을 더 잘 타기 위해 헬스장에서 그룹피티를 받는다고 했다. 산을 잘 타려면 산에 가야지 왜 헬스장을 끊어?라는 내 우매한 질문에, 체력이 좋아야 더 높은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그것을 모를 리 없었을 대답이 돌아왔다. 아, 언젠가 친구 뒤를 따르며 등반을 할 때 부릉부릉 잘 나아가는 친구는 대형 세단, 쌕쌕거리며 중간에 쉬기만을 원했던 내 심장은 오래된 소형차의 엔진을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이상화와 안세영 선수에게 같은 질문으로 물어볼 수는 없지만 천재 같은 얼굴로 아마 이 친구와 비슷한 답을 할 것이다. 비로소, 둔재는 납득한다.


나는 아직 평균치 이하의 체력을 가지고 배드민턴 연습에 임하고 있다. 티는 못 내도 동지들의 에너지가 반 정도 쓰였을 때 나는 얼마 없는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쥐어짜 가쁜 숨을 숨기며 게임을 한다. 사실 부상의 여파보다 체력의 바닥이 더 빨리 나를 흔들어댔다. 운동을 시작하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되면서부터 상, 하의가 홀랑 땀으로 젖을 만큼 운동을 하고 오는 귀갓길에는 머리가 띵- 하게 아파와서 참다가 두통약을 먹었던 기간이 3개월 정도 있었다. 그나마 이제는 약 없이 휴식으로 체력을 보전할 수 있을 만큼 좋아진 것이나, 부상을 입은 것도 체력이 모자라 균형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을 터. 운동의 기본 베이스는 체력. 그것이 국력으로 이어진다고 몸소 보여주는 국가대표들의 이구동성이 내 뒤통수를 왕왕 울리는 듯하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래도 그렇지. 체력의 빈 곳을 메운답시고 얼굴로 날아오는 셔틀콕을 세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이나 손으로 잡아버린 것은 왕초보라고 해도 망신스러운 일이다. 이-모-는-야-구-를-하-는-게-어-때-요-?라는 꼬맹이의 말이 일주일이나 귓전을 맴돌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물론, 이 애물단지 같은 반응속도를 수비에 사용했을 때 놀라며 칭찬해 주는 동지들도 있긴 하다. 한 번은 상급자들과 혼복으로 게임을 했을 때, 내가 전위를 맡으며 들어오는 공격을 힘주어 잽싸게 여러 번 받아냈더니, 한 사람이 "와- 동물적인 반사신경이다!"라고 감탄했다. 기분 묘했다. 왕초보가 실력은 없는데 신경만은 좋은 것이 내 스스로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당장 체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간과 꾸준함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그럼 한정자원인 체력 말고 어떤 변용자원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야구 선수 중 포수는 대포처럼 날아오는 빠른 공을 받아낼 두둑한 깡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수영은 쓰-파, 쓰-파하는 일정한 호흡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점수로 승패가 갈리는 피겨스케이팅의 꽃은 단연 연기력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올림픽이었던가, 본인 생각에 훌륭하게 연기를 마친 아사다 마오가 자만하는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김연아 선수가 똥까고 있네 느낌으로 무시하고 바로 다음 본인의 무대를 신들린 듯이 보여줬을 때.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멘털 역시 신의 한 스푼이라 느꼈다.


자, 그렇다면 왕초보 배드민턴의 한 스푼에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제일 구멍이 많은 스텝을 떠올려본다. 발을 많이 안 움직인다고 해서 재빨리 가서 공을 기다리면 너무 미리 가면 스윙을 다 할 수 없다고 혼났다. 발을 적당히 가면 덜 움직인다고 해서 또 혼났다. 어쩌란 말이지. 공을 보고 나서 출발하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공도 박자를 타고 넘어온다. 처음에 포르테로 강하게 튀어 오르다 떨어질 때는 안단테로 속도가 줄어든다. 공을 놓치지 않으려고 포르테 시점에 마구 뛰어들면 정확한 타점 구간을 놓쳐 공을 제대로 칠 수 없다. 그렇다고 느릿느릿 이동할 수도 없다. 포르테-안단테로 오는 공을 얕은 스텝- 긴 스텝으로 대응해야 한다. 얕게 다가가서 크고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것은 내 몸이 해석하기에 쿵-짝(왼발-오른발)이 될 때도 있고, 쿠-웅-짝(오른발-왼발-오른발), 또는 쿵쿵-짝(왼발-왼발-오른발)하는 리듬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음악적 감각이 배드민턴 실력을 키우는 열쇠였다.


배드민턴에 강약조절이 필요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깨닫고 보니 고수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스텝은 물론이며 스트로크 종류를 바꾸는 것도 강약조절을 함으로써 상대팀을 흔들어놓기 위함이었다. 빵-! 날렸다가 톡! 떨어뜨리거나, 빵- 날리는 척하면서 톡 떨어뜨리는 그런 속임수까지. 이제 왕초보 눈에도 현란한 박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타공음을 내어 연주하듯, 아는 사람만 보이는 박자공식이 담긴 배드민턴은 그 자체로 악기가 되었다.


그러니 설령 동물적인 반응속도를 가졌다 해도 나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잘 꺼내 써야 했다. 고등학교 때 제일 덩치 큰 친구 빼고 반에서 팔씨름 일등을 했다며 팔힘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강약조절을 하며 배운 기술들을 정확히 쓰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발이 빠르다 해서 무조건 달려들면 팔을 뻗어낼 공간이 없어진다(일명 굽은팔증후군이 발생함). 원래 빠른 발도 박자에 맞춰 덜 쓸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을 덜 가졌고, 무엇을 더 가졌는지 파악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요령 있게 쓸 지어다. 강-약-중간-약. 쓰-파, 쓰-파. 강단 있는 심장과 겸손한 표정으로-.


이렇게 또 한 스푼 나를 알아간다.


그러니, 내 앞에 떨어진 건 음표들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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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