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 다스리기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by 오아린

배드민턴 클럽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월례회가 열린다. 임원진들의 클럽 운영에 대한 최근 회의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 제안 등의 시간을 먼저 갖는다. 회장님 말씀이 끝나면 전날까지 참석 의사를 표시한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급수별 대진표가 공개된다. 실제 대회 형식으로 게임이 진행되기도 하고, 아직 서로의 실력을 모르는 사람들과 경쟁해 볼 수 있는 안전하고도 긴장되는 분위기였다.


우리 클럽은 오전 팀과 오후 팀으로 나뉘어 한 체육관을 사용하고 있는데, 오전에만 시간이 되는 사람과 저녁에만 시간이 되는 사람은 월례회가 아니면 서로 볼 기회가 없다. 그래서 월례회를 통해 오전 오후 팀의 단합이 다져진다고도 할 수 있었다. 모두 단체복을 입고 오므로 얼굴은 몰라도 한 팀처럼 느껴져서 인사도 쉽게 주고받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낯선데, 왕초냐)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왕초다. 나도 낯설다)


토너먼트식으로 이루어지는 급수별 대진은 3-4번의 게임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1등 자리는 넘보지도 않았다. 발목 부상으로 3주 동안 쉬었던 것을 알고 있는 오전반 회원분들과 근황을 들어서 아는 오후반 회원들은 아픈데 왜 왔냐는 표정이기는 했다. 아직 발등이 시큰거리는 통증이 있어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월례회를 빠진 이후에 몰려올 더 큰 아쉬움을 막는 예방주사라 생각했다.


-아직 아픈 거 아니에요?(열정 대단하노)

-병원보다 체육관 오면 빨리 나아요.(알잖아 이 마음)


왕왕초시절 뭣도 모르고 참석해 봤던 첫 월례회에서는 운 좋게 세 게임 모두 이겨서 역시 나는 대회 체질이야,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더 잘하고 싶어지는 무대 체질이라고 여겼는데, 그것도 컨디션이 온전할 때의 얘기다. 불안한 시선들도 관심이긴 마찬가지나, 걱정을 끼치는 것 같아 나에게 응원이 되지는 못했다. 다치지 않도록 최선보다 차선을 하는 것이 이번 월례회 참석의 목표가 되었다.




전력을 다하면 죽는다. 70프로만 쓴다.


이런 말을 누가 했었는데, 백 프로 동의한다. 지금까지는 주 3일 빠지지 않고 2-3시간을 운동을 했다. 체력이 낮은 편에 무리하면 두통부터 오는 체질인 나는, 초반 3개월간 운동 후 두통약을 먹었다. 견디다 보면 좋아지겠지 했는데, 정말로 3개월 이후부터는 약 없이 휴식만 취하면 나머지 일상도 무리가 없어졌다. 체력이 올라왔구나 느꼈고, 뿌듯했었다. 쓸 수 있는 기술이 하나씩 늘었고, 그것들이 잘 안되는 날은 운동이 없는 다음 날도, 주말 오전에도, 당일 오후에 한 번 더 운동에 욕심을 냈었다. 더 건강해지자고 운동을 시작한 마음이 더 잘하고 싶은 승부욕으로 물들었다. 무릎이 아픈 이유, 발목을 다친 이유에는 '연속된 무리'가 팔 할은 차지했 터.


유산소 운동은 몸을 '쓰는' 운동이다. 소모품인 관절, 연골, 힘줄을 '사용하는' 것이다. 과격한 움직임으로 달아오른 소모품들은 식는 데 시간이 즉,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번에 과사용되지 않는다. 이 사용과 휴식을 번갈아 가며 운동을 해야 기본 3년이든 5년이든 10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철모르고 날뛴 왕왕초보 시절을 왕초는 회상하며 쓴웃음 짓곤 한다. 하루 뛰었으면 하루는 쉬어야 한다. 지금은, 운동이 없는 날은 필라테스로 짧고 굵어진 근육들을 길게 늘여주고, 아픈 곳은 냉찜질하며 되도록 아껴 쓰고 있다. 이토록 재밌는 배드민턴을 오래도록 하고 싶어서다.



한 팀이 된 파트너는 조금 늦게 도착해서 같이 합을 맞춰볼 시간은 없었다. 허둥지둥 서둘러 몸을 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뿔싸, 이분은 업무로 밤을 새우고 와서 나보다 더 피곤한 상태였다. 당장 팀원에게 의지할 마음을 내려놓았다. 구력이 다양한 왕초들이 이번 월례회에 참석을 많이 해서인지, 팀 구성이 다양했다. 구력이 긴 사람과 짧은 사람이 한 팀이 된 그룹도 있었고, 비슷한 구력의 동지들이 한 팀이 된 그룹도 있었다. 우리는 잠 오는 사람과 한 발을 제대로 못 쓰는 사람 콘셉트이었다. 다치면 안 되지만 최선은 다합시다,라고 의기투합했다. 나는 오른발을 최대한 아끼면서 대신 왼발과 양손을 120퍼센트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잘 될 리 없었다.


더 뛰지 못한 만큼 팔을 더 뻗었으나...실점.

내가 못 가서 파트너에게 쳐 달라고 외쳤지만...놓침.

상대적으로 구력이 짧은 상대방에게 공격하는...비겁함.


다리가 불편해 답답해서 짜증이 올라왔다. 한 게임이라도 이기고 싶었다. 승부욕이라는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겨야 할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셔틀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이브가 얼굴 쪽으로 빠르게 날아올 때, (한 번)

스매싱이 허벅지 쪽으로 세차게 꽂히려 할 때, (두 번)

왼쪽 어깨 쪽으로 푸시를 당했을 때, (세 번)


나는 그것들을 낚아챘다.

날아오는 셔틀콕을 왼손으로 잡아버렸다. 사람들은 당황했고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쓸데없는 민첩성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오른발 대신 왼손이 나서는 것이었다. 기본 규칙도 잊을 만큼 통제욕까지 합세한 모양이다. 민망함에 손으로 잡은 공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님아, 그 공을 잡지 마소


심판을 하겠다며 와 있던 한 남자 아이가 보다 못해 한 마디 날렸다.

"그냥 이모는 야구를 하는 게 어때요?"

"......!"


이판사판. 종목을 헷갈리기 시작한 이 몸은 이제 끌려 나간대도 할 말이 없었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