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답을 못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단박에 파악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물어보는 질문 몇 가지.
첫째, 전공이 뭐예요?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시기에 결정했던 인생 첫 경로. 스스로 정했든 조언을 듣고 선택했든 간에 어른이 되어 제일 먼저 탐색해보고 싶은 길이었을 것이다. 고향이 어디냐, 어느 학교를 나왔냐 보다 상대방의 젊은 역사의 갈피를 확 열어볼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저는 건축학과를 들어갔다가요, 너무 어렵고 성향에 안 맞아서 간호대학으로 전과했어요." 같은 말. 아버님의 직업을 따랐지만 결국은 본인의 성격에 맞춰 실용적인 길을 택했던 이의 야무진 청춘이 그려진다. 참고로 나는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내 현재 좌표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유추하려 한다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모습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짧아도 5분짜리 자기소개가 이어져야 한다.
다음은, 결혼하셨어요?
요즘 시대, 30대에 주효한 질문이다. 인생의 외양을 가늠해보고자 할 때 두드려보는 노크 문장.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습니다."라고 하면 '저는 늘 챙겨야 할 가족이 있고요,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이 소중합니다.'로 해석이 된다.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라는 대답은, 독립은 했으나 생활에 여지가 있어 근무가 끝난 시간이나 주말에 부르면 오롯이 자의로 외출가능 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결혼 안 했습니다. 그리고, 사귀는 사람 없습니다."까지 어필하는 문장이 따라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질문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잠시 내 주변에 좋은 사람 있나 생각해 보지만, 이 나이에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결혼은 좋은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춰줄 마음이 생기면 하는 것이므로. 결혼을 일부러 안 하고 있는 것인지,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인지는 대답을 꼼꼼히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인생관과 가치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헤아려볼 수 있는 단순하고도 깊은 질문이다.
최근에는, 어릴 때부터 운동 좋아했어요?
이 질문을 자주 한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배드민턴 동호인들이 많아져서다. 70프로 정도는 내 눈에 타고나길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 같았다. 축구, 농구, 야구, 골프, 달리기, 수영, 댄스... 종목 불문, 그냥 까라면 까지는 운동신경을 숨길 수 없는 것 마냥, 공이나 리듬에 반응하는 몸을 보면 그랬다.
그들은 체육관에 입장하면서부터 이미 땀을 흘린 채로 온다. 집에서부터 체육관까지 뛰어 왔다거나 헬스장에서 이미 한 차례 운동을 하고 온 사람, 몸을 풀기 위해 필라테스를 하고 온 사람, 오전에는 배드민턴을 치고 저녁에는 골프를 치러 간다는 사람. 만년 배친자 선배는 오전에도 배드민턴 저녁에도 배드민턴이란다. 가지각색의 직업을 가진 동호인들이 체육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이쯤 되면 운동이 사람을 따라다니며 좋아해 좋아해 하는 것 아닌가. (헤어져 이제 그만해.)
나는,
일단 열심히 하니까 곧 잘할 사람처럼 보인다. 첫 달부터 "아린 씨는 금방 늘겠다."라는 말로 관심을 받았고 이후로 꽤 오랜 기간 "아린 씨 처음에는 잘했는데."로 더 큰 관심을 유지했다. 무대체질인가 사람들이 봐주니까 능력치보다 120프로 노력하게 된다. 신체조건이 좋지는 않고 신경이 예민하고 빠른 편이다. 눈썰미 덕에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할 때도 있다. 그러나, 체력이 달려서 숨이 금세 가빠진다. 많이 헐떡거려서 괜찮냐는 말도 종종 듣는다. 장거리보다 단거리에 유리하다. 이것은 모두 유전의 영향이다.
진실로 나는,
쓸데없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반감을 느끼는 동시에, 내 마음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흐름을 멈추고 싶은 수동공격으로 늘 5분 10분 지각하는 똘끼심리를 인정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나의 오랜 성격이다.
그러니까 나는,
짧게 설명하자면 내적으로는 늘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외적으로는 변화와 도전을 찾는 전생애주기적 변태형 인간이다. 가만히 있고 싶으면서 가만히 있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은데 늘 사람들과 함께 있는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지 하면서도 끝을 보고도 계속한다. 설령 상대방이 나 싫어서 그만 만나고 싶다고 말하면 모를까 한번 인연을 맺으면 다음 생에도 보자고 하는 편. 16개 부류로 쉽게 구분되는 것은 싫지만 혈액형보다는 체계적인 성격 유형 검사 결과로는 INFJ다. 그 해석 중 예수와 히틀러가 공존하는 성격이라고 한 부분이 와닿기도 했다.
고백 건데, 불혹의 나이에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운동을 만났다.
이 귀한 인연을 쉽게 놓치지 않도록, 변하지 않을 유전성과 고치기 힘든 성격을 잘 매만져야 했다.
아린: 야, 나 너 좋아해.
배드민턴: 응?
아린: 너 인기 많은 거 알아. 내 마음도 봐주라.
배드민턴: 음... 난 시간이 필요해. 우리 천천히 알아가도 될까?
아린: 응!! (좋아해 좋아해 다음 생에도 만나자)
배드민턴에 빠져든 지 9개월 차. 무릎, 발목 다음으로 팔꿈치 통증이 생겼다. 날아오는 콕에 대한 거리감각이 완전하지 않아 (이제는 바보인가 싶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굽는 팔로 힘껏 치는 동작으로 인한 결과다. 조금씩 깨닫고 있으니 아프지 않게 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극복하리라. 대신, 쉬는 날 통증을 다스리며 배드민턴 치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민턴앓이 중이지만, 뜨거운 썸 타기 시기를 끝내고 이제는 안정적으로 밀당을 하고 있달까.
예전보다 차분해진 몸과 머리 위로, 훅-
지금 그 실력으로 쉴 때냐고 묻는듯한 도전장이 날아든다.
듣고도 귀를 의심했는데, 분명 이런 말이었다.
"이번 주 배드민턴 대회에 혼복 나갈 수 있어요?"
변태를 겪고 있는 초심자에게
한 광기의 배친자가 재차 제안을 한다.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