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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Aug 16. 2024

오늘도 나는 합리화하며 나를 달랜다

                             

한 아이가 미술심리 수업을 받으러 온 적 있었다. 아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이것저것 만지면서 눈은 다음은 무엇을 만질까 하며 이리저리 관심 있는 데로 옮겨 다니기 바빴다. 첫날은 초등학교 1학년 치곤 말이 많이 어둔하기에 ‘처음이라 낯가림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한주 수업을 더 하고는 정상과 지적장애의 경계인 IQ 70 ~ 85 사이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또 몇 주 수업을 더 해보고는 ‘ADHD가 심하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ADHD는 집중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산만하여 잠시도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심할 땐 본인의 얼굴을 손으로 때리는 자학행동과 무의식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틱 증상’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이 아이는 이 모든 행동을 보였다.  

ADHD는 호르몬의 이상으로 전두엽에 문제가 발생하여 나타나게 되는데, 이 자체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산만한 증상이 원인이 되어 주위의 계속 적인 지적과 비난을 받게 되면 자존감 저하, 우울, 불안, 부정적 정서감의 증가 등을 가져오게 된다. 이는 청소년 시기에 행동장애나 품행장애 혹은 우울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ADHD는 약을 먹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차분하게 되어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기에 청소년 이전에 치료하면 좋다.  

   

나는 몇 번을 미술수업만 하고 그냥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이 아이의 심한 ADHD 증상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혹 지금 받고 있는 상담 수업을 그만둘까 두려워 그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아이 엄마에게 얘길 했다.

“어머니, 제가 볼 때 현준이가 ADHD가 심한 것 같아요. 병원 가서 진단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내 눈을 피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 엄마로부터 방학이라 8월에 행사가 많기에 쉰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과제에 충실했으면 잘한 것이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줘야지. 어쩔 수 없지. 아이 엄마가 오지 않겠다고 하는데, 별 수 있나’ 하며 나를 달랬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10월 첫 주부터 다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몇 달 만에 만났는데 이상하게 아이가 기가 축 처져 온 것이 아닌가? 평소 까불까불 하며 들어오는 아인데 말이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만 나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고 말았다. 

“어머, 어머니! 전엔 기가 위로 톡 올랐었는데. 모처럼만에 봐서 그런가? 왜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기가 촉 처졌네요. 호호호”

그러고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아뿔싸! 실수했구나’를 깨달았다. 그날 이후 다시 그 아이에게서 소금에 절인 배추 같은 모습은 보질 못했다. 늘 그랬듯 까불까불 하며 산만한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센터를 오지 않는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고 약을 먹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왔는데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기가 죽은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놀라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ADHD 약 복용 후유증이라 생각되어 다시 약을 끊게 되지 않았을까? 엄마들 사이에서 약 복용 후유증에 관한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성격은 에너지 방향에 따라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는 외향과 안으로 향하는 내향이 있다. 밖으로 향하는 최악의 극단은 살인이고 안으로 향하는 최악의 극단은 자살이다. 물론 이 두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지만 말이다. 이처럼 내향과 외향은 모든 면에서 확연하게 차이를 나타낸다.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성격에 따라 다른 방어기제를 선택한다. 주로 에너지 방향이 밖으로 향하는 사람은 남의 탓으로, 에너지 방향이 안으로 향하는 사람은 자기 탓으로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외향인 나는 ‘병원을 갔으면 갔다고, 약을 먹으면 먹는다고 말을 해줘야 알지. 말을 하지 않는데 내가 우찌 알겠나’ 

이렇게 나는 합리화하는 걸로 나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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