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 후선 Aug 16. 2024

갱년기는 왜 만들었을까?

50이 넘은 요즘 밤마다 방바닥을 뒹군다.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만큼 더위가 밀려와서다. 한여름에도 요를 깔지 않고는 냉기가 올라와 잠을 잘 수 없던 나였는데 이유가 뭘까?    

                                    

신은 우리 몸을 만들면서 쓰임새 없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 눈은 사물을 볼 수 있도록,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다리는 걸을 수 있도록, 장기들 또한 모두 나름의 역할을 주어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알 수 없는 하나가 있다. 맹장이다. 이 때문에 한때 맹장을 떼어내는 것이 유행인 적도 있었다. 아무런 역할은 없으면서 한번 잘 못 되면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기에 수술할 일이 생기면 이왕 배를 가른 김에 겸사겸사 맹장을 떼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엔 모두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맹장이 쓸모없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왜냐면 신은 모든 것에 저마다 자기의 쓰임새를 주었거든. 단지 아직 인간이 모를 뿐이지.    

 

언니네 가족은 명절을 지내러 부산에 갔다. 시부모님 두 분과 언니네 부부 모두 직장을 다녔기에 명절은 늘 부산했다. 그때는 대체공휴일이 없던 시기인 데다 하이패스도 없던 때라 명절 때마다 고속도로는 이름과는 달리 정체 도로였다. 이렇게 힘들게 큰집에 도착하는 것을 큰집 가족 모두 알기에 

“아이고!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제? 어서 들어와. 그래, 뭔 일은 없었구?” 하며 집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큰 아버님은 큰 형님에게 

“아가, 여 상 좀 내 와래이”하시며 싱글벙글 이셨다. 그러면 큰 형님은 반갑게 상을 차려서는

“작은아버님, 작은어머님, 뭔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죠? 시장 하실텐데 저녁 준비할 동안 먼저 좀 드시고 계세요. 동서도 많이 먹어” 하며 다정하게 상을 내밀었다.     

그날도 당연히 그렇게 맞아주리라 기대하며 들어갔는데 집 분위기가 싸한 게 이상했다. 그리고 큰아버님이 ‘찌짐상 차려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형님이 분란을 일으켰다. 

“아니! 어른이 왜 어른이고. 어른다워야 어른이지. 탱자탱자 차타고 온 사람들이 알아서 뭘 먹고 와야지. 종일 일한 사람한테 상차리라 카노…. 아이구! 내 팔자야…”

그리 참하던 사람이 180도 변해 있었다. 그런 형님의 태도에 아주버님은 입 다물라며 고성을 질러댔다. 그러고는 놀라서 멀뚱멀뚱한한 언니네한테 아내가 갱년기라서 그러니 이해하라며 죄송해했다. 그러고부터 언니네는 부산 큰집에 가지 않고 따로 대구에서 명절을 보냈다.  

    

읽는 순간 여러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나부터도 떠오르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50이 넘어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떨면 모두가 본인들의 승전보를 자랑한다. 지금부터 20~30년 전만 해도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살았기에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순종이 덕목이었다. 특히 신랑 쪽 집안이 좀 더 조건이 좋다고 판단될 땐 어김없이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강했다. 그러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독립전쟁을 벌였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모두 승리한 것이다.     


우리 몸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본인 성의 성호르몬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난소와 정소에서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나오고, 남성과 여성 모두 부신에서 여성은 소량의 남성호르몬, 남성은 소량의 여성호르몬이 나온다. 심리학에서 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양성이 한몸에 존재함을 얘기했다. 인간의 무의식 안에는 각자의 성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는 무의식 깊이 여성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아니마’라 하고, 여성에게는 남성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아니무스’라 한다. 여성스러운 남성은 아니마가 다른 남성에 비해서 좀 더 많아서이고, 남성스러운 여성은 아니무스가 좀 더 많아서이다.     


갱년기는 호르몬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요즘 ‘당신은 몇 살부터 노인이라 생각하시나요?’라는 설문조사를 자주 받는다. 이는 국민연금이 위태롭다는 이유와 생명과학과 경제 발달로 노인들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맞물려 65세 이상이던 ‘노인’의 정의를 다시 하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성 역할’에서는 노인을 50살 이상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유는 여성들이 폐경을 맞으면서 호르몬의 변화가 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경을 맞이하는 50대로 노인의 기준을 정한 것이다. 50이 넘으면 여성은 폐경을 맞으면서 여성호르몬은 중단되지만, 부신에서 남성호르몬은 계속 분비된다. 그러니 보드랍던 여성이 강한 남성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강하던 남성은 점점 드라마를 보며 눈물 흘리는 감성적인 남성으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점점 서로의 성이 가까워지면서 80쯤 되면 같은 성 역할을 하게 된다. 같은 커플 스웨터를 입은 노부부가 저만치 가면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아무리 생명과학이 발달했어도 우리 몸의 흐름은 막지 못하는구나! 


북한이 남한에 도발하지 않는 이유가 김일성 때는 새마을 운동으로 모두가 밖으로 나와 함께 모여 일을 해서고, 김정일 때는 민방위 훈련으로 중년의 아저씨들이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상의 단추를 풀어 젖혀 길거리를 활보해서고, 김정은 때는 중2들이 건들건들 길거리에 침을 찍찍 뱉으며 눈동자의 흰자를 들어내서라는 유머가 있다. 중2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런 유머가 나올까?

중2는 사춘기가 정점에 있는 나이다. 사춘기라는 게 갱년기처럼 호르몬의 변화로 오는 것이다. 사춘기는 아이의 몸에서 성인의 몸으로 바뀌는 시기다. 신이 사춘기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아이들아, 이제 너희는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니라. 이제부터는 수컷과 암컷으로서 최선을 다해 종의 번식에 임하도록 하라”

신은 우리에게 이토록 인자하게 신호를 알려 준다.  

    

그럼 갱년기는 왜 만들었을까? 

인자한 신은 인간이 안정적으로 잘 지내길 바랬다. 그래서 지금까지 열심히 종의 번식에 임한 남녀에게 이젠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인간은 언제 쉬어야 할지 몰라 헤매게 될까 봐. 신이 갱년기를 맞은 인간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수컷과 암컷으로서 역할을 열심히 했다. 그만하였으면 됐으니 이젠 수컷과 암컷이 아니라 친구로 평생 존중하며 너희의 삶을 살 것이야…….”

이런 신의 뜻으로 나이가 들수록 남자 여자가 아니라 친구처럼 닮아 가나 보다. 커플 스웨터를 입은 닮은 다정한 친구처럼.

신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전 11화 오늘도 나는 합리화하며 나를 달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