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 그러니까 내가 독립해서 따로 나와 살기 2년 전에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그 녀석이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말 오후에 메신저백보다 조금 큰 가방에 담겨와, 바닥에 내려놓자 마자 폴짝폴짝 토끼처럼 뛰던 모습을.
약 2개월 정도 된 새하얀 말티즈 여아였다. 처음에는 1kg이 채 되지 않는 무게에 손바닥에 네 발바닥이 전부 놓일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처음 안아 들었을 때는 학생 시절에 똑같이 품에 안아 들고 다니던 전공 서적보다도 가벼운 무게에 순수하게 가볍다는 느낌보다도 먼저 안쓰럽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앞으로 이런 체격으로, 심지어 거실 테이블 옆의 작은 휴지통도 밀어서 치우지 못할 정도로 작고 힘이 없는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낯선 환경에서도 녀석은 상당히 밝고 명랑했다. 방 하나에 작은 울타리를 둘러 뛰어놀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주고는 이따금씩 들여다볼 뿐이었지만,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두 발로 서서 앞발을 울타리에 걸친 채로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그런 모든 게 재롱처럼 보였다. 영락없이 아기가 하나 생긴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동생까지 모두가 성인이 된 이후 그다지 웃을 일이 없었던 집안에 다시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타리 밖으로 꺼내 주었고, 녀석은 온 집안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가끔씩 옆에 딱 붙어서 따라다니다가 발에 치이는 탓에 이제는 바닥을 살피며 걷게 되었지만, 작고 새하얀 털뭉치가 아무 걱정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힐링이 되었다. 배변패드는 TV옆 거실 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놓아두었는데, 아무래도 처음이라 여기저기 실수할 것 같다는 걱정과는 달리 기특하게도 배변 실수는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도 더 예민한 녀석이라, 처음부터 정확하게 화장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가끔 혼자 집에 놔두고 외출을 하거나 하면 거실 중앙에 심술을 부려 놓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심술을 부린 날이면 어김없이 안방으로 끌려가 엄마에게 혼이 났고, 그렇게 한 번 혼나고 나면 다른 가족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게 영락없이 아이의 모습이었다.
뭐랄까──, 나는 그런 부분조차도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사람이었다면 사고를 쳤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이라면 다시 생각해보고 얼마든지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심술을 보며 후회를 한들 혼나게 될 걸 깨닫게 된다 한들 되돌릴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꼬리치며 격하게 반기다가도, 심술을 발견한 엄마의 표정을 보는 순간 혼날 걸 직감했는지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사고 친 아이의 모습이었다.
이름은 사랑이로 아빠가 지어 주셨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수 있도록. 녀석도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자기 이름이라도 나오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는 귀를 쫑긋 세운다.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할 무렵──, 생일 선물로 이런 저런 장난감들을 사주었지만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한결같이 같았다. 처음 분양 받을 당시 같이 온 토끼인형. 장난을 칠 때면 항상 그 인형을 입에 물고 왔다. 그럼에도 소유라는 개념은 있는지, 한 번 선물로 준 것들은 평소에 관심이 없더라도 누군가 집어 들면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계속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의 녀석은 눕는 걸 참 좋아했다. 거실 창문 아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푹신한 쿠션이라도 놓아두면 그 위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가끔 거실에서 두 다리를 나란히 뻗고 앉으면 다리 사이에 등을 끼우고 누워 그대로 잠들어 버릴 때도 있었다.
첫 번째 생리를 할 때는 가족 모두 여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어느 날 퇴근해서 가장 먼저 집에 도착하니 불 꺼진 어두운 거실 바닥에 작은 핏자국이 있었다. 정말 깜짝 놀라서 녀석을 들고 이리저리 다친 곳이 있는지 몸을 살펴보고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녀석은 끽 소리도 내지 않고 품에 안겼다. 하얀 티셔츠에 어느 새 다시 맺힌 핏방울이 스며들었지만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했다. 얼마나 예민한지 새로운 집 안에서는 일주일 정도 배변을 하지 않았다. 꾹 참고 있다가 산책을 나가면 밖에서 전부 해결을 하고 들어왔다.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 봐, 배변 때문이라도 정기적으로 산책을 데리고 나가다 보니 새로운 집에도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녀석은 집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산책을 끝내는 건 내가 아니라 언제나 녀석이었다. 자기가 지칠 즈음 정확하게 현관문 앞으로 나를 끌고 갔다. 아파트 현관이 동 마다 전부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정확하게 찾아냈다. 심지어 그 안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것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우측으로 돌아야 한다는 것 까지도 알고 있었다. 빨리 문을 열라고 현관문 앞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정말이지 강아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는──, 따로 독립해 나와서 부모님 댁에 가면 잠깐 보는 정도지만 녀석은 언제나 꼬리치며 반겨준다. 지금은 세 살이 되었는데, 예전에 비해 의사표현이 매우 확실해졌고 적극적이게 되었다.
동생을 제외하고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애완동물을 기르는 걸 반대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동생의 고집으로 데려온 그 녀석이 집에 웃음을 가져온 것 같아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독립한 지금 내게 강아지를 키우는 게 어떻냐고 묻는다면, 역시 나는 여전히 반대인 입장이다. 거실에 있는 화초 하나 조차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데, 굳이 신경 써야 할 걸 하나 더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아직 나 이외에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지 않을 뿐 더러 마지막에 보내야 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솔직히 말해 무척 겁이 난다.
뭐──, 그저 게으른 것뿐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