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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함에 대하여

by 겨울색하늘

적당함이라는 개념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게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여태까지 이 말을 꽤 많이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아주 가끔씩 예전에 써놓은 일기를 새삼스레 꺼내서 읽어볼 때가 있는데, 왠지 ‘적당함’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신경 쓰일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적당함이라는 건 한 마디로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정도로 해석되는데,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는 거지만 그건 상당히 난해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사람마다 너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번지점프에 적당한 높이를 묻는다면, 누군가는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괜찮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어도 구름을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고민하지도 않고 전자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일을, 심지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어쨌든, 요즘 적당함에 대해 조금 끄적거려 보려고 이런 저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새삼스럽게도 점심시간의 사내 식당에서는 밥공기를 적은 양과 보통 양 두 가지로 구분해 놓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의 ‘보통’이라는 것은 적당하다는 걸로 이해해도 되는 거겠지‘ 라고 멋대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복감이라는 건, 누군가는 밥 한 공기로도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두 공기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딱히 ‘밥 한 공기 정도면 부족한 양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귀찮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래서 항상 무심결에 보통 양의 밥공기를 집어 들면서, 언제부터 ‘한 끼에는 밥 한 공기 정도면 적당한 걸로.’ 라는 암묵적인 약속이 생겨나게 된 것인지 조금 흥미가 생겼다.

어쨌든 적당함이라는 개념은 꽤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 언젠가는 ‘너는 문화, 예술에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바로 그 다음 날, 하이든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화, 예술에 관심이 참 많으시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 단순히 분야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도대체 여기서의 적당한 관심이라는 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적당함은 수치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 대충 정규분포의 평균에서 적당한 범위 값 안쪽이려나.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의 적당함을 일관성 있게 계량하기 위해 ‘적당함 계측기’ 같은 것을 항상 들고 다닌다는 식의 방법은 상당히 귀찮으니까. 무엇보다도 적당함을 납득시키기 위해 일일이 통계적 결과 값을 산출하는 것도 번거로우니, 실제로 이렇게 하자고 제안하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데──, 대충 이 정도면 납득하고 넘어가는 게 어때?” 라며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차마 얘기를 꺼낼 수는 없겠다.

그래서 적당함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그건 결국 ‘누군가의 대충 이 정도’라는 걸로 납득해도 괜찮은 걸까? 가끔씩 그렇게 혼자 생각해보곤 한다.

으음──, 세상에는 참 ‘귀찮으니 대충 이 정도로.’ 라는 식의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어쩌면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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