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리타분함에 대하여

by 겨울색하늘

입사가 결정되고 부서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문득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이 전부 학생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이외의 그 어떤 신분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회사원스러운’ 옷을 사자고 다짐을 하고는 사뭇 진지하게 백화점을 배회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옷을 고르는 센스가 없어서,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자친구가 몇 가지 옷을 골라줬는데 아무리 봐도 화려함을 넘어서 지나치게 요란하다는 느낌이 들어 “음──, 이건 좀 입고 다니기 부끄럽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며 셔츠 몇 벌을 집어 들었다가, 고리타분한 정도가 거의 박물관 급이라며,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혼이 나야 했었다.
패션에 관해서는 항상 유행에 한 걸음 뒤처지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유행이 지난 옷이 가격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행하는 옷은 왠지 비싸다. 기능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크게 차이가 없는데도 유행하고 있는 옷들은 왠지 비싼 것이 일종의 ‘유행비용’ 이라는 것도 옷 가격에 포함되는 것 같아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소위 한 물 간 옷들을 잔뜩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어 오다보니, 다음에는 나팔바지까지 사오는 건 아니냐고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적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옷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주위에서 요즘 옷의 디자인이 이러쿵저러쿵해도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거기에는 ‘유행 같은 건 어차피 돌고 도는 거잖아?’ 라며 조금 얕보고 있었던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뭐, 비단 옷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는 거의 식물대백과 만큼이나 두꺼운 잡지를 서너 권 펼치며 요즘 유행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분명 실시간으로 보고 듣고 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저 휴지를 구기는 것처럼 머리카락을 다른 방향으로 구겨놓은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저마다 이름이 다를뿐더러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아마도 틀림없이 내가 예술적인 이해도가 부족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머리카락에 가위를 들이대기 전에, “이번에는 무슨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라고 매번 질문을 받으면 항상 “스타일은 그냥 놔두고 길이만 좀 어떻게 해주세요.” 라고 일관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한 번도 어떤 스타일을 도전해 본 적이 없으니 새삼스럽게 ‘이번엔’이고 뭐도 없을뿐더러, 내 머리모양을 세간에서는 무슨 스타일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노래도 보통 길게 거슬러 올라가면 클래식부터 짧게는 십여 년 전 유행했던 노래들을 즐겨듣는데, 번스타인이나 카라얀의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의 엄격한 음악과 밥 딜런의 부드러운 통기타 소리처럼 고전적인 음악을 듣고 있자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 요즘의 기계음 섞인 일렉이라거나 클럽뮤직은 들뜨고 신이 나긴 하지만 감상한다는 느낌은 조금 부족한 것 같고, 랩이나 힙합의 가사의 빠름이나 강도에는 거의 외국어 듣기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스트레스가 있어서 오래 듣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박물관 급 고리타분함에 아직까지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유행이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범 같은 것이 아니니까, 나 같은 사람 한두 명 쯤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로 이건 오히려 개성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황당한 생각도 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스스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그럴 때마다 한숨을 쉬며 “에휴──, 네가 그래서 여성한테 인기가 없는 거야.”라고 하지만 인기를 위해 유행에 템포를 맞춘다고 해서 매력이 정비례 상승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어느 정도는 상승하긴 하겠지만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학생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교복이라는 것은 참 편리했던 것 같다. 적당히 두세 벌 정도 같은 옷을 사두기만 하면 옷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제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입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엄격했던 고등학교의 두발 규정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편리했다. 신경쓸만한 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창의성과 개성의 부재니 뭐니 하며 학생운동으로 전부 느슨해져 버리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억눌려있던 개성과 창의성이 짠하고 발휘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화성에 이주해서 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야 어찌되었든, 회사에도 이런 게 있으면 좋았겠지만,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애매한 자유로 매일 아침마다 다른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이 참 귀찮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다시 복장 규제를 하자, 뭐 이런 얘기는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유라는 건 좋은 거니까요.(그럼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귀찮은 해바라기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