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결정되고 입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미니홈피’라는 것이 잠깐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게 뭐냐면, 인터넷 공간 안에서 할당된 방과 같은 것이랄까. 커다란 커뮤니티에 자신의 미니홈피를 공개, 일촌을 맺고 서로의 공간에 방문하여 방명록을 남긴다. 여기서의 소통은 크게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일촌이 늘어날수록 방문해야 할 곳이 많아지는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관심의 표현은 점점 얕고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게 정말 현실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일촌 대부분이 오프라인으로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이어서 더욱 현실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건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저 내가 유도리가 없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뭐,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일에는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비교적으로 귀찮을만한 일은 적었으니 상관없으려나.
아무튼 그 시절에는 나도 상당히 열심히 미니홈피를 관리하고는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블로그로 갈아타게 되었다. 미니홈피가 아닌 블로그를 선택했던 이유는, 원래 오프라인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일촌으로써 미니홈피에 방문해주는 것은(이유가 무엇이든) 그다지 인터넷 플랫폼으로써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나길 원하면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인터넷에 바랐던 커넥션은, 기존의 시야 안에서의 그것보다 더 넓고 개연성이 없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바로 새로운 커넥션을 위해 노력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아직 테마도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였으니까.(그건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남아있었다.)
글쎄, 그래서 처음에는 글쓰기 연습장 정도로 가볍게 블로그를 활용했었다. 딱히 글쓰기가 재미있었다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것이었고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연습이 필요했다. 이에 블로그는 지인들의 감시망으로부터 적당히 벗어나있어 부끄러움이 덜했고, 나를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진솔한 평가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럭저럭 목적에 알맞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습작을 남기던 블로그가 지금에는 어느새 초등학생의 나이만큼이나 되어있었으니, 그간 꽤 많은 기록이 쌓였고 가끔씩 되짚어 보면 상당히 주옥같은 글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언젠가 나의 20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날이 온다면 아마도 블로그를 빼고는 절반도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까지 이어오며, 아직도 습작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느냐면 그건 아니다. 꽤나 긴 시간동안 유지해오며 이런 저런 이유들이 덧붙여졌고, 오히려 지금은 습작이라는 근본적인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많이 생겨나 버렸다.
취미활동을 체계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정리공간이 되었고, 책 집필을 위해 이런 저런 소스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수첩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플랫폼으로써의 의미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과연 그것은 어디까지의 몇 명에게 닿을 수 있을까.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화 시대라는 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이렇게 블로그를 30년 정도, 혹은 그 이상 꾸준히 발전시키고 정보를 축적해 나가면 그간 쌓인 것들과 플랫폼의 크기에서 나는 어떤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그렇게 뚜렷한 비전같은 걸 같고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어렴풋이’ 정도다.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는 건, 요컨대 유아기에 가입하는 암 보험 같은 거라고 할까. 다. 가까운 미래라면 몰라도 먼 미래에 대한 확신이라니 역시 어불성설이다. 그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맞을지도 모르는 그런 막연한 것.
장기적인 운영 측면에서, 대학생 시절에 정한 테마를 계속 밀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 가끔 하게 된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오래 지속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잘 알고 있으며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일 것. 방문자 수는 아직 크게 상관없지만 긴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이 조금 더 필요할지도.
역시 직업적인 전문성과 뭔가를 연결시킬 수 있다던가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런 부분에서 나는 조금 불리한 게 아닐까. 도대체 기구분야의 연구원이라는 걸 무슨 수로 여기에 융합시킬 수 있을까. 심히 고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