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시작하는 하루 일과 중 요일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아마도 눈을 뜨고 한두 시간 안에 진한 아메리카노를 찾게 된다는 점이다. 적어도 표정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쓴 맛이 아니면, 잠이 반쯤 덜 깬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아침의 나는 모든 무기를 내려놓은 채로 성문을 활짝 열어놓은 요새 같아서, 화살이든 돌덩이든 뭐라도 하나 날아오면 한 방에 그대로 함락되어버릴 정도로 빈틈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침의 커피는 많은 부분을 도와주고 있으니 고개 숙여 감사해도 부족하지 않다. 뭐──, 처음에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느새 없으면 안 되는 정도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여하튼 지금은 커피에 아침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게 되어버렸다.
언젠가 중독과 습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신촌의 어느 이자카야였다. 둘은 포장지만 다를 뿐, 의미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시시한 이야기. 실제로 중독과 습관은 많은 부분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반복적으로 지속하게 된다는 점에서. 반면 둘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역시 금단증상일까, 당연히 습관에 금단증상 같은 건 없다. 하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눈 밑이 파르르 떨린다거나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되어버리는 일은 아직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진지하게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독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다양한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나타나기 전까진 본인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잘 모르겠다. 다만 종종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커피를 마실 수 없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내 경우에는 조금만 틈을 줘도 병든 닭처럼 고개를 꾸벅꾸벅 하며 졸면서 오전을 보내야 했다. 뭐──, 써놓고 보니 이건 금단증상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전날 밤에 늦게 자고서, 부족한 잠을 보상하려는 몸의 생리적인 반응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요컨대 습관에 의존하는 일은 없지만, 중독은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의존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다만 습관이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면 중독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걸 요리 레시피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 우습지만, 습관에 강박관념을 조금 섞여버리면 진짜로 중독 비슷한 것이 짠하고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자전거의 보조바퀴에 의존하는 걸 보고 중독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아이들은 보조바퀴를 장착한 자전거로 연습하다가, 처음으로 양쪽의 작은 두 바퀴를 떼려고 하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하는데, 현상이라면 꽤나 닮았다고 할까. 뭐, 사실 나에게서 아침 커피를 뺏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써놓고 보니 증상이 상당히 비슷하여 혹시나 하고는).
왜 중독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가. 그건 가끔씩 게임 중독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게임을 무슨 약물처럼 취급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안쓰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다. 살아온 세월만큼,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쁜 것, 쓸모없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이다. 고전을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신세대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독의 본질은 현재 처한 상황이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의존해야 할 정도’ 라는 것에 있다. 뭔가를 극복해야할 상황일수도 있고 단순히 쾌락을 위해 사치를 부리고 있는 상황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아이들이 게임 중독이라고 생각한다면, 상황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본인 혹은 타인)의 잘못이다. 잘못은 언제나 인간만이 저지른다.
이쯤 하고보니 상당히 여과 없이 드러내 버리고 말았지만, 뭐 요점은 간단하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 언젠가 이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그 기준이야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