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부끄럽지만, 생각해보니 기구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한지도 어느새 2년이 넘었다. 물론 이 말은 할 만큼 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어떤 면에서는 익숙함이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돌기 시작하기 전에 이 주제에 대해 한 번쯤 글을 쓰는 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치기위해 미로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매듭을 감아놓은 것과 의미가 비슷하다고 할까. 뭐──, 말하고 보니 그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지만.
평소 글을 쓸 때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연구개발에 대한 걸 써보는 건 어떨지, 거기까지는 생각만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이건 ‘신선할 수밖에 없는 주제’일 것이라는 말에 조금 흥미가 생겨버렸다.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고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버렸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글을 쓰는 사람 중에 연구개발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반대로 주변 연구원 중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이건 어쩌면 기대 이상의 신선함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 참 다시 생각해봐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그럼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펜을 집어 들었지만, 글쎄. 과연 연구개발이라는 건 뭘까,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서부터 막혀버렸다. 사실 무언가를 연구하고 개발한다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정체성 같은 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숨막힐 듯 조여오는 그날의 할 일에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밤이 되어버렸다는 재미없는 이야기. 계속 고민하다보니 역설적이게도, 하고 있는 일의 본질에 대한 건, 사실 연구원이 되기 전에 정리가 되어있었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과학자를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닐곱 살 정도 되었을 때였을까, 유치원 가을 소풍 때 흰색 티셔츠 위에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야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과 그 발사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 명의 과학자를 그렸었다. 잘 그리고 싶었지만 그림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서 당시 미술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와 함께 소풍 전날 밤에 열심히 그렸던 것이 기억이 났다.(실은 앨범을 찾아보고서야 기억이 났다.)
그 당시의 나는 과학자라는 직업에 대해, 정확히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을 리가 없으니──, 아마도 그림책에서 본 적이 있는, 녹색 액체로 반쯤 채워진 실린더를 흔들며 이것 저것 혼합하고 있는 과학자의 모습 그대로를 상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모습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이때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 ‘정리가 되어있었어야 하는 본질’에 가장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정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그 본질이었고, 그건 티셔츠 위에 그려진 로켓의 모습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아──, 지금은 그게 로켓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되어버렸지만.(당시에는 스마트폰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내가 생각하는 연구개발이라는 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건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선명하게 긋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무엇을 언제까지 개발할 것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찾아내, 그것들이 각각 얼마나 빠르게 어디까지 가능한지 명확하게 확인하는 일. 물론 그 과정 속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패와 고민이 있겠지만. 뭐──, 아주 요약해버리면 이정도일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점이, 좀 더 정확히 말해 실패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점이 연구개발의 매력적인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다른 연구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실패라는 건, 필연적인 것이긴 해도 되도록 적은 편이 좋은 것이고, 실제로 거듭되는 실패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막상 연구개발에 대해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여서, 이거 괜히 쓴다고 한건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드는데, 뭐, 이미 다 썼으니 이젠 어쩔 수 없나.
그러고 보니 다 쓰고 나서야 생각이 났는데──, 전공이나 직무에 대한 주제에 대해 자세히 파고드는 걸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일단 지루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주제에 대해 무언가를 떠올리려 하면, 수많은 수학 공식들과 실패와 고민의 흔적들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리고 만다. 게다가 글재주도 없어서, 솔직히 그것들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큰 난관으로 느껴진다. 동료 연구원들이 왜 글 쓰는 취미가 없는지 갑자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어쨌든,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선명하게 긋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뉴스기사에서 미래의 모습에 대해 이런 저런 예측을 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건 정말로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연도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면서 “이쯤에는 요정도 모습이 되어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하기야 뭐 미래에 대한 이야기니까, 동전 던지기 같은 생각으로 말하는 걸까. ‘틀리면 어쩔 수 없지만 맞으면 대박’이라는 느낌으로. 아니면 뭐, 전 세계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납기와 목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주는 큰 그림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