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의 나들이 풍경 속, 우리는 도시락을 싸고 돗자리 하나를 들고 바람개비 언덕에 나들이를 다녀왔었다. 시원스러운 흰색 스니커즈에 데님 남방의 소매를 팔꿈치 근처까지 걷어 올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언덕길을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공복에 못 이겨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매미울음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청했던 그 날의 풍경들을, 마치 어제 다녀온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냐는 말에 그 날이 떠올랐던 건, 역시 지금 나는 그다지 잘 지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까.
안녕,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언젠가의 짧은 통화에서, 아무런 확신도 없이,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내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일에 몰두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기 시작할 때면 마무리를 짓고 짐을 챙겨서 퇴근을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맥주 한 캔, 과자를 한 봉지를 산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거실의 불을 켜고 라디오를 켜고, 오전에 다 읽지 못한 신문을 읽거나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기도 한다. 잠들기 전까지 영어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하다가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이정도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설령 잘 지내고 있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어쩌면 저건 실제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보단, 잘 지내야만 한다는, 스스로에게 거는 강력한 암시 혹은 주문 같은 이야기에 가까운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추적추적 새벽비가 내렸다. 날씨는 완벽히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아닌, 여름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가을날. 어느 라디오의 제목으로 이 말을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되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든 그리운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든 고요한 마음속을 잔잔하게 울리는 묘한 한 마디.
안녕, 나는 잘 지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