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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Sep 26. 2022

리프레시에 대하여

  고요한 새벽, 형광등의 차가운 불빛 아래 앉아 라디오를 작게 틀어놓고 좋아하는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생각이 많아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간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해서, 해가 떠있는 대낮의 밝음 아래서는 도무지 감정의 변화라거나 생각의 전개라던가 이런 것이 활발하지 않은데 비해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는 확실히 느낌부터 다른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소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애잔한 발라드의 한 소절 한 소절이 전부 나름대로의 파도를 만들어 마음의 방파제를 때렸다. 한 번 한 번의 작은 부딪힘은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새벽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 다음날 오전에 출근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부터 항상 잠들기 직전에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수선화의 녹색 잎사귀와는 다르게, 내 감정세포는 대부분 햇빛이 아니라 달빛을 양분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 같다. 딱 한 가지, 새벽 독서나 글쓰기를 하면서는 담배를 태울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뭐, 평소에는 담배를 태울 일이 많지 않아도,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할 때는 종종 담배가 필요하다. 그건 생각의 환기를 돕고, 지나치게 몰입했거나 멀어졌거나 싶으면 나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는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소면사리를 툭툭 씹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흡연으로 채운다, 라는 것. 물론 더 좋은 방법이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누군가는 생각의 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마스크팩을 한다고 하는데)


  생각의 환기라는 건 어떤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컨대 업무 중의 환기는 하나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시야가 좁아지는 걸 막아주기도 한다. 독서에서의 환기는 지나친 몰입으로부터 발생하는 과도한 주관적 해석을 막는다. 글쓰기에서의 환기는 논제로부터 샛길로 새버려 일관성을 잃는 걸 방지해준다. 그러나 이런 환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해도 그 경중에 대한 체감은 제각각이라, 그 중요성에 대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말 그 정도인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종종 글쓰기 모임에 나가 지인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면, 환기에 대해서는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굉장하기까지 한 방법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말 다양한 각자의 방법들이 있지만 환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한 숨 자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될 지 모르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만큼 나아가려면 좀 더 강제적인 방법이 필요해. 요컨대 이런 일은 바이러스를 들이키는 것과 같아서, 호흡을 멈추고 자연 치유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할일이 있으니 주기적으로 백신을 맞으며 해나갈 수밖에 없는거라고."


  그때 들었던 인상적인 이야기여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환기라는 건, 적당한 휴식 정도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아무튼 이 말을 계기로 내게도 나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니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찾아낸 방법이라고는, 펜을 잠시 내려두고 약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소면 가닥 하나를 톡톡 부러뜨려 먹으며 잠시 생각해보는 것과(이건 예전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앞에 두고 새벽 내내 고민할 때부터 사용하던 방법이다.) 커피나 녹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 그리고 담배를 태우는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커피나 녹차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는 것만으로는 어느새부턴가 좀처럼 생각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자극이 약하다는 걸까, 실제로 언제부턴가 절대적인 역치 값이 올라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환기의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가장 먼저,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의 기준은 대략적으로 삼십분 내외 정도일까. 짧으면 짧을 수록 좋지만 삼십분을 넘기는 건 작업의 흐름이 끊어져버릴 수 있다. 시간낭비도 크고. 소면 한 가닥을 톡톡 씹어먹는데는 고작해야 일 분 정도. 담배 한 대를 태우는 시간은 길어야 십분 남짓. 마스크팩은 뭐, 조금 오래걸릴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각설탕 하나를 입에 넣고 녹이는 일도 오래걸리는 방법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수면은 환기 방법으로는 약간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그 다음으로, 환기 전 상태로, 혹은 그보다 더 나은 상태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마스크팩은 솔직히 감탄스럽다.(팩 이후의 상쾌함은 꽤 오래 지속되니까.) 그러나 이런 면에서 와인같은 알콜의 도움을 받는 것은 꽤 위험하다. 예전에 와인을 마시면서 일기를 쓴 적이 있는데, 다음날 다시 읽어봤을 때 정말 경악했었던 기억이 있다. 정신적으로 서서히 무장해제되어 어떤 솔직섬뜩한 글이 나올지 모른다.(물론 지인중에는 와인이 없으면 펜을 손에 잡지 않는 분도 있지만)

  마지막으로 준비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의 물구나무서기는 이런 면에서 인상적이었는데, 사적인 공간 한정이라는게 조금 아쉽다.(공공장소에서 할 용기가 있다면 약간 다를지도 모른다.)


  사실 기준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수치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서 사람마다 각자에 맞는 방법이 다 다른 모양이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다양하고 신박한 방법들이 많아 듣는 내내 감탄을 하게 된다. 뭐 어떤 방법이든, 자신에게 효과만 좋으면 그만, 이라는 마음으로 하나쯤은 확실히 해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밀가루 소면을 먹는 방법은 약간 비추천으로, 아무래도 살찌는 원인 중에 하나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뭔가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여담이지만──, 어떤 분은 간이 테이블을 옆에 두고 트럼프 피라미드를 만든다고 하셨는데, 한 번이라도 완성된 적이 있냐는 물음에, 20년동안 완성은 커녕 3단 조차 가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걸 듣고, 그건 완성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게, 완성되어버리면 그 다음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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