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회사 근처의 이자카야에서 선배들과 모듬 꼬치에 사케를 마시던 날. 종종 이렇게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면서 회사에서 있었던, 혹은 있을지도 모를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하는데, 그날따라 계기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왠지 면도라는, 조금 엉뚱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면도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브라운이니 필립스니, 혹은 전동이니 수동이니 해도 나는 그렇게 면도기를 다양하게 써본 적이 없으니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특히 셰이빙 크림이라던가 전혀 써본 적이 없으니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까.
항상 비누나 클렌징 폼을 셰이빙 크림과 겸해서 사용하고 있는 내겐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는데, 애초에 면도를 위해 따로 크림을 발라야 한다니,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만한 정성을 들일만큼 면도라는 게 가치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내게 면도란, 굉장히 귀찮으면서도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것이랄까. 학생 때는 면도 같은 건 귀찮으니 한동안 하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은 회사에서 조직생활을 하며 타인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생겨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그렇다고 뭐, 학생 시절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러나 여전히 ‘차라리 이렇게 매번 면도를 하느니 발모억제제 같은 걸 턱이나 코 주변에 바르는 걸로 귀찮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그러나 아직 그런 부분에서는 이런 저런 부작용이 걱정되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 아니──, 역시 농담이다.
술을 앞에 두고 너무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걸까.
멍하니 술잔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남자에게 면도라는 건 단순히 털을 제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거야, 신성한 의식같은 그런 것.”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뭐──, 면도를 하며 새롭게 다지게 되는 각오라도 있는 걸까 싶으면서도 직접적으로 이런 걸 물어봤다가는 대답대신 다른 게(예를 들면 주먹이라거나) 돌아올지도 모르니 일단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성들의 화장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 확실히 누군가에겐 특별할지도 모른다고 납득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아침에 면도가 깔끔하게 되지 않은 날에는 하루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는데, 가끔 아침부터 선배 표정이 어두운 건 그래서일까. 앞으로는 유심히 관찰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