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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Sep 30. 2022

원산지에 대하여

  언젠가 친구들과 이름 모를 정종을 마시다가 뜬금없이 원산지에 대한 것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마시고 있는 술이며 앞에 놓인 짭조름한 닭모래집에 곁들여 있는 채소들의 원산지라거나, 솔직히 신경쓴 적이 없는데 메뉴판을 보면 원산지에 따라 가격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

  하기야 여태껏 원산지에 대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심하게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신경쓰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런 종류의 거슬림은 한 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궁금함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이럴 때 필요한 걸까. 원산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두 손에 가득 담고도 틈 사이로 끝 없이 넘쳐 흘러 나왔다.


  재료 자체의 원산지는 사실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쓰여져 있는 걸 믿을 수 밖에 없겠지만(그래서 애초에 믿지 않기로 했지만), 무형물의 원산지라는 건 꽤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떤 하나의 흐름을 설명한다고 해야할까. 예를 들면, 여태까지 게임은 꽤 많은 종류를 즐겨왔고 지금도 즐기고 있지만, 그 중에서 국산 게임은 거의 없었다. 뭐, 있었다고 해도 이렇다 할만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다지 애정을 갖고 오래 즐긴 게임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에 대해서도,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들을 마지막으로, 국산 문학이라고 할만한 것들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았다. 이런 부분들을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니 그랬구나, 하면서 떠오른 것 뿐이다.

  어째서냐, 라고 물어도 사실 이렇다 할만한 이유는 없다. 뭐, 그래도 간단히 말하자면 즐길만 했기에 즐겼고, 읽을만 했기에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중에 정리해보니 결과적으로 국산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하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너무 문화사대주의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결과론적으로는 사대주의가 맞지만, 국산은 정말 국산인걸까?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순혈 국산이라는 게 정말로 있기는 한걸까, 라는 의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순간부터 사대주의를 논하는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지금같은 글로벌 시대에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보다는 어디에서 소비되는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 절대로 가 국산을 잘 안써서 변명하려는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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