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색하늘 Oct 01. 2022

그곳이 사라졌다

  입사를 하고 부서에 배치된 직후에, 모든 게 어색하고 어리숙했던 그 시절. 일을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일단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며 가장 바쁜 시기에 곧바로 개발에 투입되었었다. 매일 새벽에 하루가 끝났고 원래 이런 일이구나, 자연스럽게 순응해가고 있을 때, 지도선배와 막창을 먹으러 회사에서 꽤 거리가 있는 맛집까지 갔었던 기억이 났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회식처럼 업무의 연장선 위에서 술을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몇몇 가까운 선배들과 마음편하게 알콜을 입에 댈 수 있었던 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고소한 냄새와 함께 탱탱하게 속이 가득 차있는 막창과 대창을 맛있게 먹었다. 맛집이라고 얘기했던 건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하며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도 모른 채로 고기와 술을 반복해서 입 속에 털어넣었다.


  모두가 힘들어했던 시기였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역대급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그런 과제를 나는 입사하고 처음으로 마주친 탓에, ‘아아, 뭐, 이 정도가 보통이겠지’ 라며 정말 여기서 잘해나갈 수 있을지 입사하고 일 년도 채 되지 않는 무렵부터 고민이 많았었다.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표정이든 말투에서든 미묘하게 흘러나온 탓에, 선배들이 눈치를 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가 정말 운이 없었다거나, 일복이 터졌다거나 하며 아하하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 때를 회상해보면 정신적인 위기가 꽤나 일찍 찾아와 한 고비를 넘긴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내성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본제로 돌아와, 그 이후에도 그 막창집은 종종 들르곤 했다. 언제나 같은 멤버로(애초에 부서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몇 없으므로), 같은 시간에 가면, 사장님이 굉장히 친절하게 잘해주셨다. 고기도 물론 항상 맛있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막창과 돌판에 살짝 매콤한 양념에 볶은 곱창은 정말 일품이었다. 언젠가 메뉴에 ‘사장님 술’이라는 신기한 것도 있어, 언젠가 꼭 마셔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금요일ㅡ.


또다시 역대급 태풍같은 과제에 매일 새벽 퇴근과 살인적인 스케줄을 반복하며 쓰러지기 직전에, 모두들 못하겠다며 훌훌 털어버리고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일찍이라고 해봐야 아홉시였다) 선배들을 하나 둘씩 보내고, 아직 남은 업무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오니 어느덧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어, 터벅터벅 걸어나오는데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그 막창집 영업 마지막 날이래. 문 닫으신단다.’


  원래는 여느 금요일처럼 자주 가는 펍에 갈 생각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발길을 돌렸다.


도착하니 선배들은 이미 한 병 정도 비우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사장님과도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며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있는 채였다.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다시 영업을 시작하시면 연락을 달라고, 그런 진심어린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요 몇 년간, 신입사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나름 이런 저런 추억이 있었는데, 하물며 나보다도 더 오랜시간, 더 자주 이 곳에서 퇴근 후에 한 잔씩 술잔을 기울였던 선배들의 그 아쉬움을 어떻게 내가 말이나 글로 담아낼 수 있겠냐만은. 


  사장님이 다른 단골들에게 인사를 하러 자리를 뜨고, 우리는 우리대로 이야기들을 나눴다. 말 그대로 일상이 업무가 대부분인 시점에서 일상 이야기는 더 이상 회사 밖으로 벗어나기 힘들어 졌지만, 그 와중에 선배 아들이 건강히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라던가, 다른 선배는 결혼을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요즘은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나의 일상이 어떤 영감이라거나 자극을 얻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기에, 부족한 나의 일상을 타인의 일상으로 간접 경험으로써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지만 확실히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꽤 그리울 것 같은 추억이 있는, 자주 찾던 가게 하나가 사라진다는 건 꽤나 슬픈 일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같이 동고동락해왔던 동료 하나가 떠나간 느낌이랄까. 이런 부분에서는 무언가에 별로 연연하는 일이 없어서, 스스로도 꽤나 냉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산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