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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Oct 04. 2022

책갈피에 대하여

  언제부턴지 주기적으로 서점에 들르는 버릇이 생긴 후로, 항상 신간 서적을 확인하면서 옆에 같이 진열된 문구나 팬시류도 같이 둘러보게 되는 것 같다.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필통과 연필, 그리고 지우개. 옆의 다른 한 칸에는 형형색색의 펜들이 스펙트럼을 그리며 진열되어 있다. 그러면 보통 펜 한두 개 정도는 집어들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바다색 미츠비시 펜 한두 개씩은 반드시 같이 구매하게 되는 것 같다. 딱히 가지고 있던 펜의 잉크가 바닥난 건 아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필기구를 조금씩 자주 사는 걸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실제로 달라지는 건 없을지라도 기분의 변화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새롭게 환기 시킨다고 생각한다. 조금 핑계같지만, 어쨌든 새로운 펜으로 이런 저런 메모를 해가며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상쾌해지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나는 새로운 책을 집어들 때,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로운 독서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데, 그런 면에서 새로운 책과 함께 필기구를 사는 것은 꽤나 효과적인 나름의 암시같은 역할을 한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채우는 노트가 별로 없는 것도 비슷하 맥락이랄까.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면, 그저 다음 장으로 넘겨 쓰는 것만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시원치 않은 부분이 있다.(단순한 강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서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보면, 다양한 독서용품도 볼 수 있다. 앤티크한 무늬가 테두리에 둘러진 독서대라거나 아기자기하게 반짝이는 책갈피들을 볼 수 있는데, 왠지 모르게 어릴 적에 단풍잎과 은행잎을 앨범 사이에 끼워 두고 바싹 말려 코팅까지 해서 책갈피를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하고 살짝 웃었다.


   그러고 보면 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드는 책갈피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자신만의 특별한 책갈피 하나 정도는 욕심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책갈피가 없다고 해서 독서를 할 수 없다거나 할 정도로 중요하고 긴급한 건 아니었기에,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발견할 때까지 뒤로 미뤄둔 것 뿐으로,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도 대충 가름 끈이나 명함으로 책갈피 대신 사용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책갈피라는 건, 생각했던 것 보다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여하튼 책갈피에 대해서, 그러니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책의 어떤 페이지를 손쉽게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페이지 사이에 끼워 놓는 얇은 물건으로, 가장 최근까지 읽었던 페이지에 끼워 놓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나는 인상깊은 부분이 있거나 다른 특이사항이 있는 페이지가 나올 때마다 끼워 놓기 때문에 한 권을 읽는 데도 책갈피가 많게는 수십개 정도나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런 제멋대로인 독서를 얘기하다 보면 누군가는 '외도'라고 하지만(실제로 몇 번인가 들었다) 뭐어──, 이런 건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게, 요즘은 정말 다양한 책갈피들이 있어서 가끔 서점의 계산대 앞에서 무료로 주기도 하는데, 이런 책갈피에는 저자의 서명이나 좋은 글귀들과 사진들, 길이를 재는 눈금표시, 심지어 삼각자와 빗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좁은 홈이 촘촘하게 파여 있는 것도 몇번인가 본 적이 있어, 책갈피라는 건 이미 이곳 저곳에서,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책갈피들도 실용성 면에서 책갈피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무료로 지급되는 보급형 책갈피에는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고 할까. 어쩌면 끼워 놓은 책까지 덩달아 마음이 가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도 있다.


   조금은 사치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책갈피에 디자인이라는 건.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500년대에는 청동으로 얇고 엉성하게 주조로 뜬 걸 책갈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만약 지금 그런 걸 책 사이에 끼워 두면, 누군가 책을 펴는 순간 손가락만한 벌레가 책 사이에서 튀어나왔다며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아무튼 현대에 들어서고 여러모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책갈피도 영향을 받아 지금처럼 다양해진 모양이다.

   어째서 갑자기 책갈피의 디자인에 신경을 쓰게 된 건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보편적으로 어떤 물건에 기능성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때는 디자인을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되는 걸로 봐서, 책갈피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독서가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책갈피의 디자인에 대해 신경쓰기 시작한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시절의 책갈피는 독서가들의 명함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어 자체의 기원으로 보면, 사실 책갈피라는 말은 책과 갈피로 갈라져, 갈피라는 말은 ‘겹치거나 포갠 물건 사이 또는 그 틈’ 이라는 의미로, 책갈피는 ‘책과 책 사이, 책장과 책장 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갈피에 단풍잎을 끼워 두다’ 또는 ‘남편의 비상금을 책갈피에서 발견했다’ 라는 식의 단어 사용이 이루어졌고, 지금의 책갈피의 의미로는 서표, 갈피표 등의 어휘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책갈피를 서표의 의미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 되어버려, 2009년부터 책갈피라는 단어에 서표의 의미를 포함시키는 걸로 표준어 개정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뭐──, 무지함이 보편화되어 표준이 되어버린 경우가 이런 걸까.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언어라는 것의 본질이 의사소통에 있다면, 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의미(설령 틀린 것일지라도)를 따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몇몇 지인들은 책 사이에 얇은 꽃을 끼워 두고 오랜 시간 말려서 사용하는데, 얼마 전에 실제로 봤던 꽃갈피는 운치가 있긴 했지만 역시 내구성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형상이 일그러진다는 이유로 코팅 해놓지 않은 꽃갈피는 한 달을 채 못 가서 금방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내가 찾고 있는 책갈피라고 한다면, 역시 근본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다 편리한 독서를 돕는다’ 는 본질. 거기에 조금 더 사견을 보태자면, 책갈피가 정확히 언제 책 사이에 끼워졌는지, 그런 이력들이 기록되고, 인상깊었던 페이지들의 위치나 문구 자체를 메모해둘 수 있다면, 다 읽고 독후감을 쓸 때 조금은 편리하려나. 매번 포스트잇으로 메모해 붙이거나 책의 모서리를 접어 두자니, 나중에 일일이 찾아 떼거나 접힌 부분을 펴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책갈피의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는 꽤나 관대한 편인데, 그저 소박한 디자인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러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장식 같은 것도 구석에 단순한 도형 같은 걸 겹쳐 놓는 선에서, 일반적인 책의 페이지 하나의 3할 정도 되는 크기면 적당할 것 같다.


   그렇게 혹시라도 나중에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찾게 되면, 서브와 메인으로 분리해서 사용할 생각인데, 서브는 책 한 권을 읽으며, 메모가 필요한 부분에 메모하여 바로바로 끼워 둘 수 있는 용도로, 메인은 스스로의 독서 진도를 확인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한다. 써놓고 보니──, 이쯤 되면 찾는 것보다 만드는 게 빠를 것 같다는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현실은 아직도 적당한 파트너(여러가지 의미로)를 찾지 못한 채로, 책장에 책이 한 권 씩 늘어갈 때마다 명함만 하나 둘 씩 소진하고 있다(한 번 책 사이에 끼워 놓은 명함은 다시 회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전에 명함 두 갑을 더 주문했는데, 선배들로부터 도대체 얼마나 싸돌아 다니길래 명함을 또 주문하냐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소진하는 명함만큼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책 사이에 하나 둘 씩 끼워 두고 잊어버리다 보니 어느새 명함이 전부 사라져 버렸더라고 까지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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