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을,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간 뒤로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가벼운 바람은 습윤했던 여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스팔트 위로 시야를 왜곡하며 길게 오르는 아지랑이와 녹음 속 깊은 울림이 있던 매미 소리. 그것들을 대신해 선선한 바람과 귀뚜라미의 저녁 울음 소리가 어느덧 저녁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 전 집 근처의 대형 마트로 장을 보러 갔을 때 수박 코너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폭염도 폭염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은 비가 정말 많이 왔구나, 하고는 덕분에 수박 값이 너무 많이 올랐었다는 걸 다시금 떠올렸다. 그래서 올 여름은 거의 수박을 먹지 못했다. 유일하게 여름의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이번 여름은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했지만 그래도 정신차리고보니 시간은 흘러있었다, 라는 걸까. 여름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커다란 태풍이 불었었다. 연필만한 굵기의 빗방울이 사정없이 내리쳤고 서울 한복판에서는 건물과 도로가 침수되고 산사태가 나기도 했다. 퇴근길에 도로에서 고립되었던 사람들은 자동차를 빗속에 버려두고 제각각 갈 길을 가버렸다. 뉴스에서는 100년만에 내린 폭우라고 하니 애초에 미리 대비하는 게 불가능했을테지. 실제로 100년에 한 번 올지도 혹은 안올지도 모르는 재앙을 위해 비용을 들여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겐 비현실적인 이야기일테니까.
태풍 피해를 뉴스에서 듣게 되었지만, 실상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비가 살인적으로 오진 않았다. 여느때의 여름처럼 검은 장우산 하나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람도 잔잔했고 빗방울도 힘이 없었다.
태풍 한가운데의 어느 공간, 이른바 태풍의 눈이라고 부르는 곳은 굉장히 맑고 잔잔한 바람이 부는 상태라고 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태풍을 실감할 수 없는 곳은 의외로 태풍의 중심부.
그건 비단 태풍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건 문제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일수도 있다는 말이 굉장히 와닿았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너무 깊숙하게 들어갔거나 혹은 아직 문제에 제대로 접근조차 못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황 속으로 파고드는 노력보다는 멀리 떨어져 관조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최근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쉴틈없이 몰아쳤다.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몇 가지 늘어난 것 뿐이었는데 선선하다고 느껴졌던 산들바람이 어느새 커다란 태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었다는 걸, 태풍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피해는 크지 않았다. 만족스럽지 않게 처리해버린 일들도 있지만 나름대로 적당히 타협해서 잘 처리한 일들도 있다.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버린 일들도 있는가 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기쁨으로 다가왔던 일들도 있다. 올해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항상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보라는 건 적절한 조언이었다고 생각한다. 태풍의 눈 속에서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맑은 하늘과 고요한 평온을 만끽하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던 어느 여름날. 자연적으로 저기압으로 인해 발생하는 태풍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만, 일상 속 태풍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으니까.
언젠가 스스로 썼던 에세이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그 때. 망각 속에 미화되버린 추억으로 산화한 기억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건넬 수 없도록 기록하겠다고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여름이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좋아하는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지 못했고 출근길은 평소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가을은 여름 속으로 스며들어 번지기 시작해 어느새 반 이상 물들였고 이제 날씨는 제법 선선해졌다. 점점 더 추워지기 전에, 수습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는 적막한 새벽. 한 쌍의 형광등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