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원인모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여느 때처럼 책을 읽다 새벽 즈음 되어 침대에 누워 조금 뒤척이다보면 이내 잠들거라 생각했지만 그 날부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새벽 같지 않은 맑고 총명한 상태로, 마치 아침에 두 번째 커피를 마시고 정신이 번쩍 든 느낌과 비슷했다. 스탠드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 집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밤바람 소리가 쉬익거렸다. 참을 수 없는 적막감이, 그러나 은은한 달빛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그것이 드뷔시의 선율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날로그 벽걸이 시계 초침의 째깍대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고, 아주 먼 곳에서의 풀벌레 소리가 바로 베갯머리 아래서 들려오는 듯 했다.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 이 시간에 들어본 적 없던 다양한 소리들이 들렸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작은 부스럭거림까지. 모든 소리가 선명하고 또렷했다. 어떤 방해도 간섭도 없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 원래라면 나도 잠든 채로, 이런 소리들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 어째서 잠들 수가 없는 걸까. 들려오는 속삭임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내내 스스로에게 되물었으나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겪는 불면증이라는 녀석은 그렇게 이유 없이 불시에 찾아왔다.
지금이라도 잠들지 못하면, 아침부터 고생 깨나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빠져들수록, 잠이라는 녀석은 한 걸음씩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당황스러움이 조금씩 식은땀을 흐르게 했고 오싹하게 만들어 조금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런 정신 상태는 조금 아까운 게 아닐까. 내일 모레 예정되어 있는 시험을 지금 당장 치룰 수 있다면 잭팟을 가볍게 터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 정도로 오히려 오전 열 시 쯤의 한껏 끌어올린 집중력보다도 더 정신이 맑은 상태로, 점점 더 총기가 돌기 시작해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얌전히 책상 앞에 앉았다.
상큼한 사과향이 도는 와인 대신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블랙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여느 동화의 청개구리처럼, 신체 리듬을 거슬러 잠들 수 없다면 잠들지 않겠다며 쓸데없는 오기를 부렸던 어느 새벽. 접어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 조금씩 읽다보니 창밖으로는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결국 조금도 잠을 채우지 못하고 꼼짝없이 하루를 시작해야 했던 어느 날.
... 아아──, 불면증이라는 거 말입니다.
생각 이상으로 상당히 성가신 것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