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에 집착한 나의 스무살

대학 입학 후 찾아온 박탈감, 나는 왜 쇼핑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by 지나킴 마케터

<특별해지고 싶었다>


나는 20대와 30대 초반까지, 수도 없이 쇼핑백을 들고 집에 돌아오면서도 정작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옷을 잘 입는다는 건 단순히 새 옷을 많이 갖추는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백화점과 의류 매장에 계절마다 새로 등장하는 반짝거리는 옷들을 보면, 마치 옷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때의 나는 눈에 띄는 것을 좋아했고, 특별한 존재로 보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화려한 옷 한 벌이면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휘어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학창 시절, 나는 늘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반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았고, 그 성취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결국 ‘남다른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러나 정작 꿈꾸던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그곳에는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탁월한 학생들이 많았다.


첫 학기 시험을 위해 며칠 밤을 새워가며 달려들었건만, 성적표에 찍힌 건 B학점. 그 순간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교수님을 따라다니며 질문을 퍼붓고, 온 힘을 다해 공부한 결과가 겨우 ‘평균’이라니! 스무 살까지 나를 지탱해 온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은 단숨에 산산조각이 났다.


대학교 2학년 무렵, 나는 깊은 방황의 시기를 맞았다. 한 학기 동안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완전히 단절된 채 지냈다. 사실상 우울증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이토록 절망과 우울에 빠져 헤매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껍질이 벗겨진 뒤 찾아온 공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게다가 대학 친구들은 나보다 똑똑할 뿐 아니라, 외모도 뛰어나고 옷차림까지 세련되어 보였다.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 출신인 경우가 많아, 지방에서 올라온 나와는 애초에 다른 세계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마다, 상대적 박탈감에 짓눌렸다.

그러다 긴 동굴 같은 시간을 지나 ‘정상적인’ 대학 생활로 복귀했을 때, 나는 온 힘을 옷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특별하고 잘 보이고 싶다면? 그렇다면 옷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우울증을 털어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내 속에서는 여전히 ‘특별한 존재’ 임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그 집착은 엉뚱한 방향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를테면, 절친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면서 신부보다 더 주목받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만 핫핑크 미니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의 신부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정도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지인 중에 그 장면의 목격자가 있다면, 부디 철없던 내 20대를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진지하게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훨씬 나중이었다. 결혼 후, 남편의 솔직하다 못해 가차 없는 지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신, 옷을 너무 못 입어.”


그 한마디는 마치 스무 살에 받은 B학점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무너졌을 때, 나는 ‘옷 잘 입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붙잡으려 했는데, 그마저도 남편의 칼 같은 한마디 앞에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옷을 잘 입는 방법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옷을 잘 입는 법>


옷을 잘 입는 법은 학교에서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댁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미대 출신에 탁월한 미적 감각을 지닌 어머님은 손수 옷을 지어 입으실 정도였다. 나는 자연스레 어머님께 옷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시간이 어느새 어머님께 옷 입는 법을 배우는 ‘옷장 수업’이 되었다.

어머님과의 대화가 끝나면 복습이라도 하듯 패션 서적을 무작정 찾아 읽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읽은 패션 관련 책만 100권이 넘었고, 유튜브에서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보며 하나씩 따라 배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새로운 옷을 끝없이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정작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의 옷장은 화려한 패턴이나 유행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단정한 셔츠, 블랙 팬츠, 잘 맞는 재킷처럼 기본에 충실한 옷들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순함 안에서 오히려 그들만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렵다: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고를 정리해야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곳에 다다르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단순함의 미학’은 비단 기술이나 디자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하게 입는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입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행과 화려한 선택지 속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을 남기는 과정이다. 애플의 제품이 불필요한 버튼을 덜어내며 결국 손끝 하나로 세상을 바꾸었듯, 패션 또한 본질을 지키는 단순함 속에서 진짜 나다운 매력이 드러난다.


결국 옷을 잘 입는 방법은 내 옷장 속의 ‘채워 넣기’가 아니라 ‘비워내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가장 나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나의 스무 살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남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려한 옷만을 걸쳤던 그 시절의 나는, 사실 ‘나다워지는 법’을 몰라 방황하며 헤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는 옷을 잘 입는 것이 단순히 멋을 내는 차원을 넘어, 나를 이해하고 정리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옷 입는 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내 일상 속에 차근차근 적용해보려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 혹은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타이틀을 벗어나, 단순함 속에서 진짜 나다움을 찾고, 덜어냄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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