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나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스며든다는 것>
옷을 잘 입는 사람을 보면 흔히 “스타일리시하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값비싼 로고와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했다고 해서 스타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행이나 명품으로 무장한 모습은 보는 이에게 피로감을 줄 때가 있다. 진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자기만의 결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프렌치 시크(French Chic)’라는 말이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프랑스 여성을 떠올리면 무심히 바른 레드 립스틱, 주근깨가 드러난 맨 얼굴, 자다 일어난 듯 헝클어진 머리까지도 모두 스타일의 일부가 된다. 과한 장식 없이 담백한 실루엣 속에 담긴 여유와 자연스러움. 옷과 태도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보는 이에게도 편안함을 전한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옷을 입는 태도. 그 속에 담긴 취향과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올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든다. 옷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내면의 태도와 개성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그 표현이 솔직하고 단단할수록 옷과 사람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 그 사람의 매력은 더욱 빛난다.
“나는 건강한 차림새가 좋다. 브랜드 로고 대신 취향, 안목, 교양이 드러나는 차림이 좋다.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스며드는 옷차림이 좋다.”
— 밀라논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대학 시절, 파리에서 마주한 한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일흔쯤 되어 보이는 한 할머니.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도트무늬 스카프, 카멜색 가죽 토트백을 멘 채 홀로 작품을 감상하던 모습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근사했다.
그 할머니처럼, 진정한 스타일은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그만큼 더 멋스러워지는 게 아닐까. 옷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성격, 라이프스타일, 가치관까지 옷차림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순간, 밀라논나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만의 은은한 매력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스며드는 것 같다.
<나만의 색, 나만의 향기>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옷 입는 스타일이 매번 변화무쌍하게 달라진다면 어떨까?
잠시 눈길을 사로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만의 뚜렷한 취향이나 고유한 색이 없기에 쉽게 잊혀지고 만다. 결국 ‘그 사람만의 이미지’는 흐릿해지고, 기억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러했다. 매일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며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하루는 공주풍 원피스를, 또 하루는 찢어진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빈티지 룩을 선보였다. 이런 변신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선명한 인상이나 분위기를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만의 뚜렷한 향기를 남기지 못한 채, 오히려 혼란스러움만 남겼던 것 같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예전에 한 회사 동료가 마지막 인사로 나에게 이런 글귀를 남겼다.
“어딜 가나 늘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를.”
그 말이 참 좋았는지,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아마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담고 있는 말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청량한 바람 같은 향기를, 또 어떤 이는 달콤한 시트러스처럼 따스한 향기를 풍긴다. 그런데 나는 매일 다른 향기를 품으려다 보니, 나만의 고유한 향기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싶었지만, 되려 무색무취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상하리만큼, 나는 그동안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옷을 통해 나만의 색과 향기를 쌓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옷 입는 법을 배워가며,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내 안의 색과 향기를 입혀가고,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싶어졌다.
<시그니처 스타일>
그렇다면, 자신만의 색채와 향기를 옷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일 아이콘’이 아닌가 싶다.
블랙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의 오드리 헵번,
우아한 레이디 룩의 그레이스 켈리,
청바지와 블랙 터틀넥의 스티브 잡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옷을 통해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 생활 방식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사람과 옷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모습. 그 모습이 점차 그들만의 ‘시그니처 스타일(Signature Style)’로 자리 잡는 것이다.
시그니처 스타일이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일관된 메시지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특정한 스타일과 상징을 함께 연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인물을 꼽자면, 나는 배우 윤여정을 떠올린다. 그녀는 화려함보다 클래식의 우아함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자주 입는 블랙 원피스는, 코코 샤넬이 여성의 자유를 위해 만든 ‘리틀 블랙 드레스’를 윤여정다운 담백함으로 해석한 것이다. 작은 체구, 담백한 성격, 늘 도전하는 삶의 철학이 심플하고 모던한 옷차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결국, 태도와 가치관이 옷으로 표출될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자연스레 “멋지다”라는 감탄을 내뱉게 된다. 자기 확신이 옷으로 명확히, 자신 있게 드러날 때, 그 사람만의 매력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일관되게 다듬어 나간다면, 그것은 곧 나 자신을 ‘브랜딩’하는 일이 된다. 남들이 나를 떠올릴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옷을 잘 입는 것’의 완성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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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킴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