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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킴 마케터 Aug 09. 2024

과연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트렌디한 것과 스타일리시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옷을 꼭 잘 입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모두 옷을 잘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패션 디자이너처럼 창의적이고 세련된 옷을 입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며, 그것이 옷을 잘 입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옷을 잘 입기 위해 거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나의 정체성이 온전히 반영된 스타일을 확립했을 때, 많은 이점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 시즌마다 바뀌는 패션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쫓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나의 장단점을 파악해 나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만족을 넘어, 나를 표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내가 다양한 브랜드들을 마케팅하면서 느낀 것은, 아무리 훌륭한 퀄리티의 제품이 출시되었다 해도, 이 제품 소식이 최종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어필되지 않는다면 제품 출시를 위해 준비한 모든 노력들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매니저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제품만의 특장점을 잘 파악하여 하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매력적인 스토리로 소비자들에게 풀어내는 것이다.

    옷을 잘 입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성격, 철학, 가치관, 취향을 반영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곧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를 시각적으로 매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과 행복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내면이 훌륭한 사람이라도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으로 그 내면의 빛나는 매력을 가린다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낮아져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외적인 요소 역시 중요한 부분임을 간과할 수 없다.

패션은 인간을 재단해서 새로운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우리 안에 세상을 보는 눈과 아름다움의 기준을 넓혀주고, 욕망을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준다.   - <옷장 속 인문학>, 김홍기 지음
나라는 사람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나는 브랜드 매니저로서 직장 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자주 하고, 외부 사람들과의 미팅도 빈번하게 가졌다. 브랜드 매니저는 종종 "브랜드의 얼굴"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브랜드의 대표이자 리더로서 브랜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를 더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표현해 달라며 광고 에이전시에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었지만, 정작 내 자신을 제대로 브랜딩 하지 못했다.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믿고 다른 브랜드를 브랜딩 하는 직업을 가진 내가, 정작 본인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브랜딩 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적으로 나를 잘 꾸미고 있고, 심지어 옷을 잘 입는다고 착각했다. 여러 쇼핑 사이트에서 인기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패션을 내 취향이 아닌 돈으로 사고 있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내 체형과 장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어떤 날은 프릴이 가득한 공주님 스타일의 원피스를, 또 다른 날은 빈티지 셔츠와 카고 팬츠를 입고 다녔다. 차라리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이었다면 괜찮았겠지만, 나는 '마케터는 트렌드를 선도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화려한 옷들을 사서 입기에 급급했다. 그때 나는 옷을 잘 입는 사람을 유행을 따르고 어디서든 눈에 띄는 화려한 옷을 입는 사람으로 정의했던 것 같다.


       마케팅의 바이블로 불리는 책 <포지셔닝>에서는,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좋은 상품'이나 '색다른 상품'만이 해결책이라는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 사회는 정보 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에, 상품이 고객의 머릿속에 하나의 ‘포지션’을 확립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한다. 즉, 새로운 정보를 계속해서 주입하기보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옷을 입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매일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는 사람보다는, 일관된 취향의 옷을 고수하는 사람이 주는 고유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포지셔닝'되어 기억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각인된다는 것은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패션 스타일까지 갖춘다면 이는 결코 피상적으로 볼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다. 성격이나 성품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외적으로도 일관된 패션 스타일이 그 내면과 조화를 이루어 각인된다면, 이는 퍼스널 브랜딩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PARISIAN의 대표적인 인물, Jeanne Damas

    옷을 잘 입는 사람들에게 흔히 “스타일리시(Stylish) 하다”라는 찬사를 보낸다. 우리는 단순히 값비싼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있는 사람을 스타일리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매년 바뀌는 유행에 맞춰 변신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꾸민 티가 나는 사람은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오히려 자신만의 고유의 개성을 자연스럽게 뽐내는 여성들을 볼 때, 나도 모르게 계속 눈길이 가고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프렌치 시크(French Chic)’라는 용어가 고유명사가 되어버릴 정도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랑스 여성들을 살펴보면, 그녀들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와 옷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근깨가 보일 정도로 얇은 피부 화장에 빨간색 립스틱 하나만 무심하게 바른 듯한 수수한 얼굴, 자다 깬 듯한 부스스한 머리카락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것 같은 옷 차림새, 운동을 따로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늘씬하고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까지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옷을 입은 것 같은 그의 독특한 취향과 정체성이 옷으로 드러난다. 내면으로부터 차오르는 그녀의 확고한 정체성이 옷으로 고스란히 표출되어 그녀와 옷이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밀라논나 작가는 옷 잘 입는 기준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건강한 차림새가 좋다. 브랜드 로고가 크게 드러나는 옷차림이 아니라 취향, 안목, 교양이 드러나는 옷차림이 좋다.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스며드는 옷차림이 좋다.”
- 밀라논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내가 대학생 시절 파리 여행을 갔을 때, 인상 깊었던 70세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도트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홀로 미술 작품을 유유히 감상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스타일리시한 여성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취향이 확고해지기 때문에 그녀만의 기품과 존재감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아무리 예쁜 옷을 입고 있어도,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면 그 사람과 옷 사이의 이질감이 느껴져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흘러도 ‘스타일이 멋있다’고 대표되는 패션 아이콘들을 머릿속에 한두 명씩 떠올려보자. 블랙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의 오드리 헵번, 귀족적인 레이디 룩 그레이스 켈리, 청바지에 블랙 터틀넥을 입은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삶을 대하는 태도, 철학, 생활 방식이 옷으로 표출되어 그들만의 시그니처 룩(Signature Look)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스타일리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다. 그녀는 클래식이 주는 우아함을 그 누구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한다. 특히 격식을 갖춰 입어야 할 때 그녀는 무릎을 살짝 덮는 기장의 블랙 원피스를 입는다. 코코 샤넬이 진취적인 여성들을 위해 만든 ‘리틀 블랙 드레스’의 모던함을 윤여정 배우만의 스타일로 우아하게 소화한다. 체구가 작고 마른 몸매를 가졌기에 다른 여배우들처럼 화려한 컬러와 무늬, 요란한 레이스 장식으로 휘감긴 드레스를 입는다면 아마 옷에 몸이 파묻힌 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를 해도 가식 없이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 새로움을 향해 늘 도전하는 그녀의 철학이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모던한 옷 스타일로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가 삶을 대하는 철학과 가치관이 옷으로도 표출될 때, 우리는 그들의 시그니처 룩을 보면서 “멋지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스타일과 패션은 다르다


“Individuals can take hold of [style] and make it their own. Style is about an individual and fashion is about an industry and [fashion] runs on insecurity.”
 —Stacy London

    

    ‘스타일’과 ‘패션’이라는 개념이 혼돈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What not to wear>의 저자 스테이시 런던은 스타일과 패션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한다. 스타일은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개성’에 관한 것이라면, 패션은 유행을 따라가야 한다는 대중들의 불안한 심리로부터 조성된 ‘업계’에 관한 것이라고 평한다. 스타일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에, 확고한 자기 취향을 통해 엄선된 아이템들이 쌓여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스타일이 확고한 여성은 유행이나 인기에 구애받지 않고, 패션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컬렉션을 구경하더라도 그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흡수시킨다. 변화무쌍한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으며, 충동구매나 무분별한 쇼핑 유혹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반면 패션을 쫓는 경우, 패션 디자이너, 인플루언서, 모델이 입는 옷들은 무조건 멋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시대의 흐름만을 따라가려는 것이다. 패션업계는 매 시즌 유행을 만들어내고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전념한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코코 샤넬을 언급하였다. 코코 샤넬은 보육원에서 어렵게 성장하였기에 인간의 본성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질투심과 동경심을 자극하는 것을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자기 주관이 없다면 남들이 입는 옷을 내가 소유하지 못하면 뒤쳐지는 듯한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형편에 맞지 않는 쇼핑의 늪에 빠지기 쉽다. 스타일리시(Stylish)’하다는 것과 ‘패셔너블(Fashionable)’하다는 것이 엄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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