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 롤 모델, 나의 시어머니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미대 전공자이시다. 그 누구보다 색감과 디자인에 탁월한 감각을 지니셨으며, 아직까지도 옷을 직접 만들어 입으신다. 오른쪽 사진의 트위드 자켓은, 나의 몸 치수에 맞춰 한 달 동안 손수 만들어 주신 어머님의 작품이다.
어머님은 젊은 시절, 옷 잘 입기로 유명하셨다. 아버님이 군인이셨던 시절, 군대 내에서 종종 열리는 칵테일 파티에서 어머님은 항상 특별한 드레스를 선택하셨다. ‘위대한 게츠비’에 나올 법한 코발트블루 색상의 실크 드레스에 보석이 박힌 바이올렛 하이힐을 신고 등장하면, 파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감탄사와 여자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으셨다고 한다. 내 남편은 어렸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머니가 옷을 참 잘 입으신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어머님이 입은 옷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유심히 살펴보았기에, 지금도 엄마가 입었던 옷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님은 초등학생인 남편에게 여러 개의 액세서리를 보여주며,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귀걸이를 맞춰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왜 그 귀걸이가 다른 것들보다 가장 예쁜지 디자인과 색감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통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배우며 미적 감각을 키우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각적으로 민감한 남편이 내 소개팅 첫날 의상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된다 (ep.1편 참조).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시어머니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지금도 어머님과 만나면 몇 시간씩 옷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어머님께서 하신 말들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어머님이 전수해주신 '옷 잘 입는 법'에 관한 이야기 중,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옷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리는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공개하려 한다.
1. 청바지가 아닌 흰색 바지가 필수 아이템이다
청바지는 나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모든 옷에 잘 어울리고, 어떤 하의를 입을지 고민할 때마다 청바지가 해답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청바지의 청색이 상의 색상과 충돌할 때가 많고, 청바지의 재질이 전체 룩을 캐주얼하게 만들어버린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청바지의 기원은 19세기 중반 금광에서 일하는 미국 광부들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라고 한다. 광부들이 입을 튼튼한 작업복으로 사용되다가 디자이너 청바지들이 등장하면서 현재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고급스러운 옷을 입더라도 청바지를 입는 순간 캐주얼한 느낌으로 변모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코디에 고급스럽게 어울리는 하의는 청바지가 아닌 흰색 바지인 것이다. 흰색은 기본 색이라서 흰색 하의를 입으면 웬만하면 모든 스타일의 상의와 잘 어울리는 마법 같은 아이템이라고 하셨다.
왼쪽 사진처럼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경우 안정감은 있지만 오른쪽 사진 경우 상하의 색상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훨씬 발랄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다리가 두꺼운 편이라 밝은 색 계열의 하의는 입지 않았다. 스스로 화이트 색상의 바지를 입는 것을 금기시했다. 그러던 중 어머님 말씀을 듣고 인생 처음으로 흰색 바지 입는 것을 시도해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예상외로 흰색 바지는 내 허벅지 면적을 덜 부각시켰다. 청바지는 잘 못 선택할 경우, 워싱에서 오는 그라데이션 색감이 내 허벅지를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시킬 때가 많았다. 반면 흰색 바지는 단색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입체감을 더하지 않았고, 상의까지 밝게 입는 경우 위아래로 몸 전체가 길어 보여 날씬해 보이는 효과까지 주었다. 흰색 바지만 입고, 상의에 아무 색상이나 걸쳐 입을 때면 즉각적으로 세련되어 보이는 느낌까지 주었다.
상의보다 하의를 더 밝은 색상으로 입게 되면, 특유의 섹시하고 세련된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럽 남자들 하의 색상을 밝게 입을 때 왜 세련된 분위기가 나는지 알아보니, 색상 원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의를 밝게, 하의를 어둡게 입는 경향이 있다. 어두운 색상, 특히 검은색을 하의에 배치하면, 무거운 것이 아래로 향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게 된다. 그래서 면접이나 비즈니스 룩에서 화이트 셔츠와 검은색 하의가 선호되는 것이다.
반대로, 밝은 색을 하의에 배치하면 색의 무게중심이 역전되어 우리가 익숙한 격식을 깨뜨린다. 이런 색의 역전 코디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함, 경쾌함, 젊음’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스타일인데, 상의는 짙은 회색이나 네이비색을 입고, 하의는 흰색이나 밝은 베이지색의 바지로 매치한다. 이렇게 입으면 격식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하며, ‘세련된’ 인상을 준다. 이들은 노출이 과감한 디자인을 입지 않아도 색의 역전 덕분에 섹시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청바지가 아닌 흰색 바지로 코디해본 나의 사진들. 흰색 바지는 전체 코디를 훨씬 세련되고 정돈된 스타일로 완성시켜주었다. 이 깨달음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만 같았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청바지를 입을 때마다 원하는 핏과 예쁜 코디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작심삼일 다이어트를 하면서, 흰 티에 청바지를 멋지게 입는 모습을 꿈꿔왔다. 다이어트는 늘 실패했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불만족스러웠다. 청바지가 맞지 않거나 원하는 핏이 나오지 않으면, 왜 그 전날 치킨을 먹었는지 자책하면서 기분이 우울한 적도 있다. 이제는 청바지 핏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흰색 바지로 훨씬 더 세련된 연출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흰색 바지를 입을 때마다 신이 나고, 흰색은 다양한 색과 잘 어울려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경쾌한 색의 옷들과 조화롭게 입을 수 있었다. 흰색 바지는 청바지처럼 몸에 달라붙지 않고 약간 여유 있는 스트레이트나 와이드 팬츠로 입으면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과거에 청바지에만 집착하던 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루엣에 도전할 기회도 생겼다. 지금 내 옷장에는 스트레스를 주던 청바지는 모두 사라지고, 계절별로 입을 수 있는 두세 벌의 청바지만 남아 있다. 대신 흰색, 아이보리색, 베이지색 같은 화사하고 밝은 색상의 바지들로 가득 차 있다.
2. 검은색은 중요한 날에만 입는 옷이다
내 옷장의 절반 이상은 검은색이었다. 특히 바지와 겨울 코트는 대부분 어두운 색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검은색은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날씬해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어서 가장 무난한 색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머님은 검은색이 매우 특별한 색이라고 하셨다. 검은색은 데일리 룩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입는 색이라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장례식이나 파티 같은 특별한 행사에서 주로 검은색을 입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특히 겨울철에 많은 사람들이 검은색 옷만 입는다고 하셨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살펴보니, 80% 이상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양에서 검은색은 주로 장례식에 착용하는 색상으로 인식된다. 한국에서는 점점 개성과 개인주의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집단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집단적인 사고는 일상적인 패션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2017-2018년 겨울에는 젊은이들이 검은색 롱패딩을 입는 현상이 있었는데, 이는 무채색을 선호하고 대세를 따르는 흐름을 보여준다.
징례식장에 올블랙(All Black)으로 차려입은 착장들 영화 "금발이 너무해" 주인공인 할리우드 스타 리즈 위더스푼은 자신의 탁월한 스타일링 비결을 컬러풀한 디테일에 두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사람들은 장례식에서 블랙 옷을 입는다. 나는 어렸을 때 블랙을 전혀 입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블랙은 네이비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드레스 제임스'라는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블랙 아이템은 취급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블랙을 '슬픔(Sorrow)'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어 장례식에서 입는 색상으로 인식된다. 어머님께서는 장례식이 아닌 자리에서 블랙을 입을 경우, 특별히 우아하게 단장해야 한다고 하셨다. 검은색은 다른 색상과 달리 고급스러운 소재인 캐시미어나 실크를 사용해야 가장 멋스럽게 표현될 수 있다고 하셨다. 일상에서는 밝은 컬러로 유쾌한 에너지를, 특별한 날에는 블랙으로 우아하고 진중한 분위기를 표현할 때 진정 블랙의 진정한 멋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3. 색의 조합만으로도 명품처럼 세련되게 입을 수 있다
시어머니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색상'의 조합이다. 옷을 입을 때 상의, 하의, 가방, 신발 등 모든 액세서리가 하나의 조화로운 배색으로 어우러질 때, 그 사람이 입은 옷이 특별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싼 명품을 입더라도 색상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 나는 그제야 '색'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건물의 배경적인 요소인 나무들의 초록색까지도 감안하여 총 세가지 색상 이내로 제한되어 사용되고 있다. 건축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이상의 색상을 사용하는 것을 피한다. 그 이유는 주로 시각적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각적 혼란 방지: 너무 많은 색상을 사용하면 시각적으로 혼란을 줄 수 있다. 색상이 많으면 각 요소가 서로 경쟁하게 되어 전체 디자인이 복잡하거나 산만해질 수 있다.
조화와 통일감: 색상은 건축물의 조화와 통일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제한된 색상 팔레트를 사용하면 디자인의 각 요소가 잘 어울리고, 전체적으로 일관된 느낌을 줄 수 있다.
강조와 집중: 특정 요소를 강조하거나 주목받게 하려면, 제한된 색상 사용이 효과적이다. 두세 가지 기본 색상과 대비되는 색상을 사용하면 시각적 초점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공간의 감정적 영향: 색상은 사람의 감정과 공간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도한 색상 사용은 감정적으로 피로감을 줄 수 있으며, 공간의 기능성이나 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건축학에서 세 가지 이상의 색상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디자인의 일관성과 시각적 편안함을 위해 색상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각적 스트레스(Visual Stress)'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는 특정 시각적 자극이나 환경에서 발생하는 피로감, 불편함, 긴장감을 의미하며, 이러한 스트레스는 눈의 피로뿐만 아니라 두통, 집중력 저하, 전반적인 불쾌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름다운 사물이나 사람을 보면 시각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색채 덕분에 '시각적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시어머니가 말씀해 주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색상'의 조합이라고 하셨다. 옷을 입을 때, 상하의, 가방, 신발 등의 액세서리까지 모든 것들이 하나의 조화로운 배색으로 어우러질 때, 그 사람이 입은 옷은 기억에 남게 될 정도로 특별해 보이는 비결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비싼 명품으로 휘감고 있어도, 입고 있는 색상들이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색'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패션에서도 세 가지 이상의 색채 사용을 피하는 이유는 건축학과 유사하다. 패션에서 여러 색상을 사용하면 조화롭지 않거나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다. 세 가지 이하의 색상을 사용하면 색상 간의 균형이 더 쉽게 유지되어 깔끔하고 정돈된 인상을 줄 수 있다. 너무 많은 색상이 섞이면 스타일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제한된 색상 내에서 코디하면 특정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는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건축학과 마찬가지로 패션에서도 과도한 색상은 시각적 피로를 유발하고 사람에게 불편함이나 혼란을 줄 수 있다. 물론 패션은 개인의 취향과 창의성을 표현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색채 사용이 창의적인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살펴보면, 그들 대부분이 세 가지 이내의 색상으로 고급스럽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 작품에서도 색상을 세 가지 이내로 사용할 때 더 안정감 있고 균형 잡힌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건축물과 미술 작품이 단순히 감각적으로 아름답다고만 여겨졌던 것이 아니라, 매우 이성적인 원칙들이 적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새로운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