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수업 ep.2> 옷 입는 태도

옷 입는 법을 배울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by 지나킴 마케터

<어머님에게 배우는 옷 입는 태도>

나에게 옷 입는 법에 있어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시어머님이다. 내 글 속에 등장하실 만큼, 나는 어머님을 각별히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편한 사이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따르는 편이고, 어머님은 내가 본 중 가장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분이기에 특히 옷에 관해서만큼은 그분의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어머님께서 최근에는 직접 스케치를 하시며, 두 살이 된 손녀딸을 위해 예쁜 원피스를 손수 만들어주셨다. 가을빛과 어울리는 소공녀풍의 원피스가 딸아이에게 참 잘 어울렸다. 이런 세심한 감각을 지닌 어머님이시니, 내가 존경할 수밖에 없다.

소공녀 풍의 옷을 입은 두 살 딸 아이 모습

어머님과 첫 만남은 상견례 자리였다. 나는 체크 원피스에 시스루 긴팔 티를 레이어드 했는데, 어머님께서는 그날 내 차림새에 다소 실망하셨다고 훗날 솔직히 털어놓으셨다. 당시에는 꽤 신중하게 고민하고 고른 착장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캐주얼하고 무던했다.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에 충분히 단정하고 세련되지 못했던 것이다.


옷을 입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상황에 맞는 옷’이다. 친구를 만나는 일상적인 자리와는 달리, 상견례처럼 중요한 자리에서는 복장 또한 예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TPO의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고, 어떤 옷이 나를 더 빛나게 해 주는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음식은 레시피를 찾아보고, 재료를 고르며 순서를 지켜 만든다. 그런데 옷은 이상하리만치 ‘감’에만 의존해 왔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내 곁에는 탁월한 미적 감각과 깊은 통찰을 지닌 시어머님이 계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머님께 배우는 1:1 옷장 수업이 시작되었다.


진지하게 옷 입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자 변화는 눈에 띄게 찾아왔다. 내 체형과 분위기에 맞는 옷을 고르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단정하면서도 나다운 스타일이 점차 자리 잡았다. 그 모습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 역시 어머님이었다. 타고난 미적 감각을 지닌 어머님은, ‘옷 입는 감각’이 학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놀라워하셨다.


어머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배우는 과정은 뭐든 필요한데, 사람들은 그걸 무시하고 자기 취향만 고집하더라. 그래서 다습다작도 중요한 것 같아. 너는 학습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그리고 나를 내려놓고 배우려는 겸손함 없이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얻을 수 없는 법이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옷차림이 점점 정돈되어 가면서, 주변 사람들은 내게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인들의 옷 스타일링을 도와주기도 하고, 작은 팁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똑같은 조언이어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겸손하게 배우려는 사람은 작은 말에도 큰 변화를 만들어냈고, 어떤 이들은 결국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차이는 결국 겸손한 배움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옷은 내 살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물건이다. 매일 아침 무심코 고르는 선택 속에는 내 취향과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다른 물건들보다 옷에 유독 강한 애착을 보이는 이들이 많고, 심지어 ‘내 옷 = 나의 모습’으로 동일시되기도 한다. 누구나 ‘옷 입기’에 관한 자신만의 경험을 갖고 있기에 그 속에는 각자의 견해와 감정이 얽혀 있다.


그렇다 보니 옷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쉽게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만의 방식을 지키려 한다. 결국 ‘옷 입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거나, 누군가의 조언이나 평가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남편에게서 “옷을 참 못 입는다”는 냉정한 평가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 말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남편 안목에 문제가 있군’ 하며 속으로 빈정이 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찜찜함이 남았고, 결국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보게 됐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남편의 말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을 때, 나는 비로소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옷을 잘 입는 법을 배우는 건, 공부하는 원리와 닮아 있어서 ‘이미 잘 안다’는 자만이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겸손한 태도로 배울 때에만, 익숙한 내용 속에서도 낯선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미 옷을 잘 입는다고 믿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객관성을 잃게 되고, 결국 진짜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과는 점점 멀어져 간다. 실제로 디자이너들조차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도하고, 감각을 발전해 나간다. 정체된 감각은 결국 퇴색되기 마련이니까.


<여전한 패션 실수, 그래도 지금이 더 예쁜 이유>


나 역시 옷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습한 시간이 벌써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실수를 한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을 고르거나, 체형에 맞지 않는 바지를 고를 때면 어김없이 남편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이어진다.


옷 입는 법을 공부했다더니 아직 멀었구먼.”


기분이 살짝 상하긴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내 옷장을 돌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조차 인정하는 사실 하나는 있다.


“예전보다는 훨씬 세련돼졌지.”


그 말 한마디가 은근히 뿌듯하게 다가온다.


최근 나는 마흔을 바라보며, 문득 나의 30대 초반을 떠올렸다. 열정도 넘쳤고, 싱그럽고 맑은 에너지가 넘치던 서른 살. 그때를 그리워하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서른 살엔 나도 꽤 예뻤던 것 같은데… 요즘은 흰머리까지 나네. 좀 서럽다.”


그말에 남편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내가 볼 땐 지금이 훨씬 예뻐.”


평소 로맨틱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 말이 더욱 진지하게 느껴졌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예전에는 나에게 어울리는 화장도, 옷도 잘 몰라서 오히려 촌스러웠다고. 지금은 색, 실루엣, 분위기까지 고민하며 나에게 맞게 다듬어진 모습이기에, 진짜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과거의 ‘예쁨’이 타고난 청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금의 ‘예쁨’은 내가 직접 배우고 가꾼 세련됨에서 온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고, 더 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 옷 스타일도 인생도 결국은 겸손하게 나를 알아가고, 다듬어가는 여정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바지를 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소심한 후회를 곱씹는 중이다. 하지만 그 역시 배움의 일부다. 옷 입는 법도, 나를 아는 법도— 어쩌면 평생 겸손한 태도로 배워나가야 하는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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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킴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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