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회사로 복귀한 이래로 줄곧 바빴다. 1년 3개월 만에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코로나 초기 무렵, 쉬는 날에 한국에 물건 가지러 갔다가 말 그대로 한국에 갇혔다. 카타르에서 한국에 거주 중인 사람들을 입국 금지 조치하기 시작하면서 1년 3개월간 한국에 있었다.) 한 달 가까이 되는 트레이닝과 연이어 몰아치는 비행들에 적응하기 바빴다.
비행기의 손님은 늘어가고, 크루는 모자란 판에 연이어 몰아닥치는 비행들을 정말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모두의 진급이 막혀있던 시기였기에, 자꾸 병가를 냈다가는 갑자기 진급이 열릴 경우, 순차가 밀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이 악물고 비행을 했다.
연이은 비행기 내의 부엌 일로 허리가 약해져서 요통이 심해져도, 발목을 다쳤을 때도, 체하거나 배탈이 나도, 몸살에 걸려도 그냥 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고 비행을 했다. 나중에는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안구 대상포진까지 왔지만, 이것도 오프에 잠깐 쉬고, 눈에 약을 넣어가면서 비행을 했다.
올해 초부터 벌여놓은 일들도 있는 데다가, 그토록 원하던 진급으로 인해 이어진 트레이닝과 새로운 일들에 적응하느라 참 바빴다. 그 좋아하는 잠을 줄여가면서도,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기어이 모든 일들을 짊어지고 오다가... 결국 병이 났다.
사실 며칠 전부터 집중도 잘 안되고, 뇌에 구름이 낀 것 마냥 멍할 때도 있고, 몸도 살짝 피곤했는데, 결국에는 몸살이 제대로 나고야 말았다.
병가로 드러누워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게 참 좋다가도, 벌써 정신 상태가 해이해진 건가... 스스로 다그치게 되고, 수많은 할 일 목록들이 누워있는 내 머리 위로 동동동 떠다녀 결국은 노트북을 붙잡고 뭐라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그래도 정말 오래간만에 알람 없이 푹 잘 수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했고, 몇 시에 잠들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여유롭게 한국 라디오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파서 누워있다는 나의 말에 가족들은 잘 챙겨 먹으라며 걱정을 하던데 가족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아프면 더 잘 챙겨 먹는다. (그리고 원래 잘 챙겨 먹는다. 먹는 것에 아주 민감하다.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게, 맛있게 먹자.라는 주의이다.)
타국에서 아픈 것도 서러운데, 먹는 것도 부실하면 더 슬플 것 같아서, 나는 몸이 아플 때는 나 스스로에게 VIP 대접을 해준다.
보양식을 해 먹거나, 먹고 싶었던 것이 있으면 칼로리 생각 안 하고 다 주문해서 먹는다. 과일과 야채도 더욱 꼬박꼬박 챙겨 먹고, 그간 참으며 보지 않았던 한국 프로그램들도 보면서 기분을 업 시키려 노력한다.
귀찮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으면 더 아프고 결국에는 마음까지 병이 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탓이다. 고로 이번에도 아픈 나를 위해 아주 초호화 식단을 챙겨 먹었다.
과카몰리 오픈 샌드위치, 과일 팬케이크, 양고기 오븐구이, 해물 똠얌꿍 등을 만들어 먹었고, 샐러리, 사과, 자몽, 오렌지, 키위, 수박 한 통을 다 먹고, 그동안 너무 먹고 싶었던 한국 양념치킨과 떡볶이, 김말이도 사 먹었다.
아직 씻은 듯이 나은 건 아니지만, 또 비행하다가 보면 나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내일은 자리를 털고 움직여보려 한다. 당장 내일 밤부터 비행이 잡혀서 다시 움직여야 하는 현실이기에...
이번 병가는 이렇게 마무리하는 걸로:)
안 아플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꼭 아프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영양제 잘 챙겨 먹어야지! 운동 더 열심히 해야지! 물 많이 마셔야지! 몇 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반성과 다짐을 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