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 나비
"솟아오르는 게 있으면 가라앉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재밌게 본 소설의 한 대사다.
여기서 이 대사를 말한 레이즈라는 인물은 부활의 왼손이라고 불린다.
왜 하필 부활의 왼손인가?
기본적으로 몸에 있는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는데, 다리가 없고 팔이 잘리는 그런 심각한 외상은 고치지 못한다.
하지만, 왼손에 한 해 서는 어떤 심각한 외상이 있어도 고칠 수 있었다.
그러기에 부활의 왼손, 대륙의 귀빈으로 칭송받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경외했다.
역사와 더불어 사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나는 알았다고 말한 뒤 그의 손을 놓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기 전 레이즈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레이즈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내 말에 레이즈는 표정 없이 말했다.
"감사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솟아오르는 게 있으면 가라앉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치료를 받고 환자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 레이즈는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솟아오르는 게 있다면 가라앉는 것도 있기 마련이죠”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레이즈가 아무리 놀라운 치료사라 해도 결국 치료사일 뿐이다.
이미 없어진 팔다리를 다시 만들어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 레이즈가 입을 열었다.
"치료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뭔가가 담긴 목소리였다.
"왼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런데, 그에게 왼손을 치료받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치료를 받기 전과 후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가치관이 달라졌다든가,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생겼다든가, 초능력이 발현한다든가.
좋아하는 사람을 잊거나, 시간을 돌릴 수 있거나.
로맨틱한 장르의 글을 쓰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호러물 작가가 되는 그런 이상한 변화가 시작된다.
왼손의 치료 전에는 환자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치료 후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환자들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 동시에, 왼팔이 다시 생긴다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 밀담의 기억은 치료 후에 완전히 잊혀진다.
"끝났습니다"
그때 나는 그 문장의 주어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하고
즉시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왜 그 문장의 주어를 물어보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그것은 치료가 끝났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치료가 끝났다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으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것일까?
치료를 받고 난 전과 후는 분명 달라지는데, 처음에는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화재에 관해 설명해 줬다.
저택이 완전히 타올라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살아남은 사람 중에 백작 부인과 두 딸, 레이즈의 모습은 없었다고.
모든 이야기를 한 후에 나는 알드레의 눈치를 살폈다.
"그것참 큰일이군"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그 집 지하에서 온디러스의 개를 키운다던데, 그 희귀종이 죽어버렸다니 큰일인걸. 가뜩이나 멸종 위기인데...."
나는 얼이 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변화는 이미 스며들었다.
위 인물의 경우는 사람보다 개를 중요시하는데, 인간성이 달라진 것.
물론 처음에는 그런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 하지만 그 치료 후의 결과가 저것이다.
"기에르 루틴"
그리고 그는 말한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까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을,
그리고 내 뇌가 썩어 이 세계의 흙으로 돌아갈 그 순간까지 잊히지 않을 그 말을.
"기에르 루틴이 누구지?"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작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도 했다.
왼팔의 대가. 하지만 가라앉는 것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성과 가치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잃는 대신에 [아름다운 필체, 훌륭한 집필 능력, 왼손]을 얻는다.
저울질을 했을 경우 어디가 더 대가가 큰 것인가.
하지만 치료 전에는 일일이 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손이 없는데 그걸 고쳐준다고 하니까 누가 거절을 할 수 있을까.
인상적인 대사인 만큼 조금 생각에 들게 한다.
단순하게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는 세속적인 말일까.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른 이론일까.
대가 없는 사랑은 없다는 걸까.
무언가를 포기하는 만큼, 또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는 걸까.
시력이 없는 시각장애인이 청각에 더 예민해 진다는 류의 이야기일까.
독자인 내 입장에서 살펴보면, 저 말버릇은 일종의 자조적인 의미를 두고 있는 거 같다.
그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환자들은 그를 찾는다.
맹목적인 선의에 기대는 건지도 모른다.
황제의 은총을 받고 수십, 수백 년의 역사와 함께한 전설 속사람이니, 많은 사람들께 추앙받는 사람이니 나한테 해코지하지 않을 테지.
마치 신에게 기대는 것처럼.
글귀만 본다면 희망을 선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힘든 일, 가라앉는 것이 있으면.
좋은 일, 솟아오르는 것도 있는 법이니.
하지만 상반되는 전개로 인해 독자들에게 신선한 미로를 만들어준다.
그 속 뜻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유희일 것이다.
신인 동시에 악마 같은 능력을 가진, 그를 중심으로 풀어지는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옴니버스 구성.
오랫동안 애정 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 책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갑각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