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딩크부부

엽편소설

by 이수아

결혼식 당일 해야 하는 헤어와 메이크업, 가봉해 놓은 드레스를 최종 점검하는 데만 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집에서 결혼식장이 멀어 나는 오전 7시부터 서둘러야 했다. 6개월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결혼을 위해 준비할 게 많았는데, 결혼식 당일에도 정해진 시간에 예식을 치러야 했다.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1월의 어느 날, 나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작은 꽃다발을 들었다.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삼중주에 맞춰 훈에게로 걸어갔다. 개인 촬영과 단체촬영을 차례로 마쳤다. 곧바로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을 드렸다. 테이블마다 돌며 새 출발을 축복해 주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친척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둘 다 어린 나이가 아니니 아이를 빨리 낳는 게 좋겠다는 그런 뻔한 말.


정말 결혼식을 올린 게 맞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훈의 친구가 준비한 웨딩카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면서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연애 14년간 3년이나 동거를 하면서도 훈이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아 몹시 불안했었다. 드디어 결혼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고 그만큼 피로감이 들었다. 우리는 한 시간을 달려 공항으로 갔다.




점심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제주에 도착하면 밥부터 먹을 생각이었다. 배고픔 보다 참을 수 없는 건 피곤이었다. 몸이 고단해 일단 숙소로 갔다. 짐을 풀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유부녀가 됐다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훈이 말했다.


“아이 낳지 않는다는 거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말자. 괜히 충격받으셔.”


훈과 결혼 하기 전부터 아이를 낳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살다가 아이가 생기면 낳을 생각이었던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키우는 건 자신의 삶을 포기 해야 하는 거라고 했던 훈의 말이 떠올랐다. 먼저 결혼한 친구 Y가 아이 키우는 모습을 보며 육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시간과 체력을 장기간 쏟아부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Y는 아이가 주는 행복은 고된 육아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내 것을 내어놓을 자신은 없었지만, Y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해서 육아에 자신은 없지만, 훈처럼 출산에 부정적이지는 않다. 훈은 아빠가 되기보다는 삶을 우선시 하는 듯했다.



결혼 전 동거를 해서인지 딱히 신혼생활이랄게 없었다. 게다가 신혼집은 동거하던 투룸에 차려 새롭지 않았다. 나는 평일에 회사-요가-집을 오갔다. 훈의 생활패턴도 다르지 않았다. 회사-수영-집. 주말엔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카페에 가거나 독립서점에 갔다. 가끔 훈이 즐기는 수영장에서 함께 자유 수영을 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야식에 맥주를 마시며 토요일에 훈과 어딜 가면 좋을지 검색했다. 회사 동료로부터 집 근처에 새로운 브런치 카페가 생겼다고 전해 들었다. 이번 주는 검색해 볼 필요 없이 거기에 가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평일에 부족한 잠을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니 오전 11시 30분이었다. 나는 훈에게 대충 씻고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자고 했다. 훈은 이만 닦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왔다. 브런치 카페는 2층으로 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노키즈존’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1층은 테이블 간격이 넓고 창이 컸지만, 2층은 테이블 간격이 좁고 창도 작았다.


“훈아, 우리 1층에 앉을까?”

“2층으로 가자.”


2층으로 가자는 말에 내심 훈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층에 갓 돌이 지나 보이는 아가와 미

취학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를 보며 나는 말했다.


“아무래도 노키즈존이 조용하고 좋겠어. 주문하고 올라가자.”



브런치가 나오기 전부터 브런치를 먹으면서도 훈은 내내 일한 만큼 월급을 못 받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연애할 때부터 줄곧 들어왔던 말이었다. 또 그 소리야, 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삭혔다. 내 월급도 평균치가 안 되지만 훈의 월급은 더 적었다. 훈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 보탰다.


“그래도 다녀야지. 내년이면 마흔인데 이직도 어렵고 지금 회사보다 더 못한 곳일지도 모르잖아.”


훈은 한숨을 푹 쉬고 브런치를 먹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브런치를 다 먹어갈 즈음 대학 친구 현주와의 약속이 기억났다.


“참! 내일 현주가 놀러 온다고 했는데 깜빡하고 말 못 했네.”

“아, 아기 낳았다는 친구? 몸조리는 끝났대?”

“몸조리 끝난 지가 언젠데. 애가 15개월이야.”

“시간 빠르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을 보니 H의 얼굴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음식을 하다 말고 현관으로 마중 나갔다. 현주는 양손 가득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뭘 이렇게 사 왔어.”

“빈손으로 올 수야 없지.”


나는 현주의 손에 들린 것을 한 손으로 받아들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곧 H의 남편이 아기띠를 하고 뒤따라 들어왔다. 서둘러 점심을 차려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상 차려.”




현주는 환하게 웃으며 집 구경 좀 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현주의 남편은 아기를 바닥에 눕혀놓았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가 얼마나 예쁜지 음식을 하는 와중에도 눈길이 갔다. 현주와 그녀의 남편이 좁은 집안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둘러보았다. 현주의 아기가 갑자기 칭얼거리는 듯 짜증을 냈다.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아직 우는 건 아니니 그냥 놔둬도 괜찮을 듯했다. 참기름이 떨어져 현주에게 집 근처 편의점에서 참기름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재빨리 손을 움직이며 음식을 하다 거실을 봤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기 어디 갔지? 나는 황급히 안방과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작은방에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이거 만지고 싶어? 만져볼래?”

“...”

“하하하”

“이건 너무 위험해서 안 돼요. 대신 인형 줄게. 내가 아끼는 건데 특별히 빌려주는 거야.”

“...”

“에이지지. 입에 넣으면 안 돼. 안돼. 하하하”


아기와 놀아주는 듯한 소리였다. 비스듬히 열려 있는 작은방 문틈 사이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현주의 남편인 줄 알았는데 훈이었다. 오래 연애 하면서도 훈이 이렇게나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가슴 졸였던 나날이 머릿속을 스쳤다. 훈이 나와의 결혼을 미루는 이유가 평생 같이 살 자신이 없어서라고 여겼던 그 날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아이를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던 그 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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